로마史에서 敎訓 얻기 -Digest 25-
로마해군은 BC.260년 지중해상의 미랏조해전에서 카르타고를 제압함으로써 첫 해전서 승리하고 2년의 小康상태를 보낸 뒤 BC.257년 두번째 승리를 거둔다.
시칠리아 북쪽 해안 팔레르모 해역에서의 승리였다.
특히 이번 해전은 트라바니와 마르사라와 함께 카르타고의 거점 도시 팔레르모 가까운 해역서의 승리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로마해군의 작전반경이 많이 넓어진 것이다.
카르타고 측의 손실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지난 미랏조해전 때 만큼이었던 것으로 로마人에 자신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로마는 戰場을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 본국으로 옮겨갈 것을 결정했던 것이다.
아프리카 進攻作戰에는 해군이 불가결한데, 두 번의 戰勝으로 로마人은 일약 해운국이
되었다는 자만심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해 겨울 로마의 外港 오스티아에서, 나폴리에서, 레지오에서 그리고 메시나에서도
造船工들은 휴일도 없이 일했다. 지금까지의 2배나 많은 배를 건조해야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의도를 감지한 카르타고에서도 조선소는 활기가 넘쳤다.
해운국 카르타고의 명예를 걸고 로마兵 한 명도 아프리카 땅을 밟게해서는 안되었다.
BC.256년 봄이 찾아오자 로마는 230척의 신조선을 進水시켰다.
카르타고는 250척을 바다에 띄웠다.
거의가 5단층 軍船으로 이만한 戰力이 바다에 투입되는 것은 지중해 해전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때의 5단층선 1척의 승조원은 漕手 3백명에 戰鬪要員이 백 20명, 船員 백명해서 모두 5백명이 넘는다. 이것이 230척이면 12만명에 달하며 여기에 軍需船團이 가세한다.
로마는 2명의 집정관이 함께 해군을 지휘토록했다.
아프리카 첫 원정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로마함대는 조수와 선원만 태우고 메시나를 출항했다.
전투병은 육로로 행군해 갔다. 시칠리아 남단의 파치노 곶(岬)을 돌아 리카타에서 배와 전투요원이 합류하기로 했던 것이다.
로마군의 進攻을 저지할 목적으로 카르타군 함대는 그지음 마르사라를 출항해서 항로를 南東으로 잡았다. 리카타에서 로마 전투병이 승선하기 전 소수 승조원만을 상대로 로마함대를 격파한다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마측의 행동이 한발 앞섰다.
병사들을 태운 로마함대는 아프리카를 향해 남서로 항진하려는 시점에 이미 대형을 갖춘 카르타고함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로마의 230척에 대해 250척의 카르타고함대는 항해 조정능력을 과시하면서 좌 우 중앙으로 나뉘어 횡대형으로 압박해 왔다. 해전의 정석대로 궁형을 이루고 다가온 것이다.
로마함대의 두 지휘관은 적의 정석 대형을 무시하고 전례 없는 진형으로 맞섰다.
제1선단 80척으로 원추형의 일변을, 대칭 일변을 또다른 제2선단 80척이 그리고 밑변 제1선에 軍需船團을 배치하고 그 뒤에 護衛로 제3선단을 대진시켰다.
원추 맨 앞에 두 지휘관의 기함이 포진했다. 종래 없던 해전 대형을 짠 것이다.
기함 2척을 선두로한 로마군이 적 중앙을 치고 드러감으로써 戰端이 떨어지고 돌격을 받은 카르타고함대의 중앙이 순식간에 전렬을 잃고 후퇴했다.
반대로 카르타고군 좌익은 뒤쳐지고 있던 로마 군수선단에 공격을 해왔다.
그리고 우익은 로마군의 후위선다에 대들었다.
로마함대를 분산시켜 포위하려는 것이 操船力에 자신 있고 수적 우세인 카르타고측의 전술이었다.
이렇게해서 리카타海戰이 전개되는 가운데 전장이 셋으로 3분됨으로써 카르타고측의 의도대로 전반전이 끝나가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군의 제1, 제2선단의 맹렬한 공격은 카르타고측의 예상을 넘었다.
2개 선단의 공격을 받은 카트타고군의 중앙은 이미 패색이 짙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로마측은 이를 더 추적하지 않고 도망가도록 내버려두채 제1선단 80척은 카르타고군의 좌익선단의 공격을 받고 있는 군수선단 구조에 달려왔다. 제2선단 80척도 아군의 제3선단이 교전 중인 해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해서 곤경에 빠진 측은 카르타고군의 죄익과 우익선단이 되었다.
뒤가 열린 해역에서 싸우는 우익선단은 도망갈 길이라도 있으나 육지 가까운 바다에서 교전 중인 좌익선단은 도당갈 길마저 차단되었다.
로마선단에 포위된 카르타고해군의 좌익은 침몰하거나 포획되어 전멸을 했다.
로마측의 침몰선은 24척.
카르타고측의 손실은 침몰 30척 포획 63척.
이렇게 해서 카르타고는 로마에 세번째 해전에서도 고배를 들었다.
카르타고는 도망친 157척으로 수도 앞 해상에 배치,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로마측은 해전을 원치않았다.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진출한 로마군은 적의 적함대가 포진하고 있는 카르타고灣을 우회하여 동쪽에 있는 크루페아지역 해변에 상륙하여 일대를 점령하고 거기에 아프리카전선의 교두보를 구축했다.
시칠리아로부터의 해상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은 이제 로마해군 재량의 문제였다.
시칠리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바다에 떠 있는 말타 섬과 판텔레리아 섬 두개도 이미 공략 완료상태가 되었다.
이 공략으로 2만명의 포로가 로마로 압송되는 전과가 수립되었다.
카르타고 征伐쯤 낙관이 지나쳤는지 로마元老院은 월동기 휴전에 앞서 종래대로 전선 병력의 태반을 철수시키고 집정관 레글루스 휘하 보병 1만 5천명과 기병 5백騎 그리고 40척의 군선을 크루베아기지에 주둔 시켰으나 이듬해 봄 증원군의 도착과 동시에 수도 카르타고 攻城戰을 위해 수도 한발 가까이 튀니스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수도 바로 가까이 적이 월동기지를 둠으로써 위기감을 느낀 카르타고정부는 집정관 레글루스陣營에 講和使節을 보난다.이를 맞은 레글루스는 강화조건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첫째,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니아 두 섬으로부터 철수할 것.
둘째, 해군을 해산하고 군선은 로마에 인도할 것.
카르타고정부는 받아드릴수 없다고 거절했다.
수도 근접의 적에 위협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카르타고는 아직 육 해군이 건재했다.
카르타고는 다음 해 봄을 기해 필연 재개될 전쟁을 대비해 이집트와의 전투경험이 풍부한 스파르타人 傭兵隊長 쿠산티츠포를 카르타고軍 지휘관으로 사들인다.
오는 새봄에 벌어지는 이 百戰의 용병대장의 전략에 말려든 强骨 로마 장군과의 피나는 대결과 로마해군의 大海難 사고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지도를 옮길 줄몰라 설명이 부족합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