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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교훈 로마史 Digest-68
*三頭政을 배경으로한 카에사르의 8년 갈리아전쟁 제1년차 시작
카에사르는 BC.49년 집정관 당시 최대 현안 農地改革法案이 元老院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부결되자 원로원 손이 못미치는 市民集會에 상정하여 입법화에 성공했다.
크라크스 형제가 살해되면서 폐기되었던 율리우스農地法이 70년만에 햇빛을 보게됨으
로써 대중적 지지기반도 다지고, 동료 집정관 비브루스가 국정 참여를 거부하는 까닭에 임기가 끝나는 12월까지 9개월간 단독집정관으로 국정을 이끌고 이듬해 갈리아屬州總督으로 부임하게 된다.
BC.270년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했다고 하지만 알프스 이남의 루비콘강과 지금의 피사근처 아르노강 이북(한반도로치면 평양-원산 線)은 여전히 갈리아族의 영역이었다.
카에사르는 BC.48년 집정관 임기를 마치고 갈리아 치자르피나(알프스로부터 남쪽 갈리아)라고하는 한정된 지역의 森林 街道나 담당하는 속주총독으로 부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의 忠僕 護民官 바티니우스를 제안자로해서 시민집회를 소집하여 <카에사르의
屬州統治權에 관한 바티니우스法>을 통과시킨다.
역시 원로원을 무력화시킨 폼페이우스, 크락수스, 카에사르에 의한 三頭政治의 승리
였다.
바티니우스法은 집정관 임기 후 속주총독으로서 카에사르에게 부여되는 다음 4가지
의무와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1. 北伊갈리아(알프스 이남 루비콘강까지)와 일리리아(지금의 유고)와 南佛갈리아
(프랑스 마르세유항 일대)의 3개 속주의 안전보장과 통치책임자로서의 총독에
부임한다.
2. 任期는 예외적으로 5년으로 한다.
3. 軍事力은 3개 군단에 南佛 주둔 1개 군단을 더한 4개 軍團을 보유한다.
4. 幕僚 전원의 임명권은 총사령관 카에사르에 일임한다.
반 카에사르파의 원로원은 무력감을 맛보았을뿐이다.
그토록 정치라면 사족을 못쓰는 키케로도 그후 3개월간 별장에 칩거했다.
한편 카에사르는 집정관 임기 수 개월을 남기고 처리해야할 일에 날이 새고 밝았다.
BC.48년은 카에사르의 갈리아戰役 1년차가 되는 총독부임 첫해이다.
그는 바티니우스法이 부여한 4대 임무 권한을 안고 수 명의 막료들만을 거느린채
루비콘江 건너 라벤나를 향해 박차를 찼다.
상례의 총독들이 임지로 떠나기 전 본국에서 벌이는 대대적 환송식은커녕 대임을 맡은 자의 거둥에 걸맞는 행차의 장중한 형식도 배제한채 담담히 떠나 北伐의 첫발을 내딛은것이다.
*<갈리아戰記>는 라틴文學의 眞髓
당대의 논객 키케로가 그랬고 후대 많은 연구가들이 그랬듯이 라틴문학의 진수라고 하는 카에사르의 <갈리아戰記>가 여기서 시작된다.
簡潔 明晳 洗練된 elegance.
이것이 <갈리아전기>를 한마디로 평하는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수식어다.
<갈리아전기>는 兵馬 奔忙한 가운데 놀랄만큼 빠를 속도로 쓰인 원로원에 보내는
現地報告書이지만 그 문체는 걸작 敍事詩를 읽는 기분이라고 했다.
머리말도 도입부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펴나가는 <갈리아전기>는 "갈리아는 모든 것을 통털어서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베르가에人이 사는 지방, 둘째는 악타니아人이 사는 지방, 세째는 저들대로 부르면 켈트,우리식으로는 갈리아人이 사는 지방이다."고 시작한다.
<갈리아전기>뿐 아니라 뒤에 쓰는 <內亂記>에서도 머리말도 도입부도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형식이다.
어느 연구가는 카에사르가 "진짜 귀족정신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케로가 말했듯이 그의 글은 "赤裸裸 순수한" 문체를 카에사르가 좋아해서였을는지
모른다.
아무튼 작자는 물론 독자를 위해서도 글 중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음직한 인트로닥션은 완전 무시한 창작이 카에사르의 <갈리아전기>이다.
그런 <갈리아전기>는 엄연히 카에사르 자신이 쓴 전쟁일지임에도 전쟁 주인공인 자신을 1인칭 아닌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제10군단을 인솔해서....>가 아니라
<카에사르는 제10군단을 인솔해서....>로 쓰고 있다. 철두철미 기록의 객관성은 유지하려한 것이 틀림없다.
<갈리아전기>가 없었으면 후세 아무도 갈리아전쟁 이야기에 귀 기우릴 기회가 없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로마의 激變期에 펼쳐진 북벌전쟁 이야기는 정보 수집과 기록에 철저한 카에사르의 노력에 의해 전해져 오고 있다.
참고로, 카에사르에게 부여된 의무와 권한은 위에 밝힌대로 로마공화정의 직할영역을 제외한 알프스 이남의 北伊와 南佛 그리고 일리리아의 3개 속주에 대한 통치권과 4개의 로마군단 병력을 통솔하는 것이었으나, 카에사르는 로마 원로원의 승인 없이 이미 팍스-로마나의 원대한 구상을 품고 피레네山脈 以東 라인江 以西의 갈리아全域을 통치하에 두고자 법정 4개 군단 이외에 6개 군단을 추가 편성해서 갈리아정벌을 시도했고 그것을 구실로 후일 원로원의 징계를 받게되고 루비콘강에 주사위를 던지는 결과를 낳느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오늘은 이만.....
다음은 멀리는 도버海峽을 건너 브리타니까지, 라인江에 다리를 놓아 게르만地域까지 그리고 센江 북동부 북해 연안과 대서양 연안까지 종횡무진 지금의 서유럽을 휩쓴 카에사르의 수기를 통해 8년 激戰의 현장을 재연해 보는 갈리아戰爭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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