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36-
-승전-
*티치노 제1회전
집정관 코르네리우스는 바로 戰端을 열 생각이 없었다.
센프로니우스의 증원군 도착까지 敵情이나 살피고싶었다.
그래서 기병 전원과 소수의 보병만을 이끌고 피아첸차를 나와 서쪽으로 향했다.
포江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파비아,포강 지류 티치노江에 다다르면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지금은 이탈리아 제일의 미곡 산지이다.
서쪽 멀리 지평선상에 흑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적이었다. 한니발도 그때 기병만을 거느리고 지형정찰에 나섰던 것이다.
양군은 대형 모습에서 로마군은 집정관이, 카르타고군은 한니발이 직접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 서로 감지되었다.
양측은 일전을 불사할 지점까지 접근했다.
한니발군 기병의 전력이 정확히 몇기인지는 모르나 로마군 전력보다 많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로마군 輕步兵이 먼저 활을 쏘았으나 적 기병의 돌격에 겁먹고 후퇴한 경보병대는 한니발 기병대의 적수가 아니었다. 로마와 한니발간의 첫 전투는 騎兵戰으로 시작되었다.
접근하면서 한니발은 陣形을 갖추었다. 기병으로는 가장 우세한 누미디아 용병을 양단에 배치하고 중앙은 카르타고와 스페인의 기병으로 메우고 한니발 자신이 지휘했다.
한편, 로마측은 반대로 신뢰할 수있는 로마와 동맹국 기병들이 本隊를 구성하고 그 전위에 로마와 강화를 맺은 갈리아人 기병을 배치했다.
초장은 호각세였으나 누미디아 기병이 뿜는 전투력 앞에 로마측의 갈리아 기병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로마군의 전위를 돌파한 누미디아 기병대는 善戰하고 있는 로마군 본대에 대들었다.
적에 포위될 위기에 처한 로마군은 당황했다. 지휘관 주위마저 허술해졌다.
마침내 카르타고의 기병대가 로마군 지휘관을 포위한다.
부상을 입고 적에 포위된 지휘관 코르네리우스를 구출한 것은 그날 처음 출전한 소년기사였다.
수에서도 우세한 적에 포위되어 전멸하기보다 차라리 후퇴를 결심한 로마군은 중상 당한 집정관을 지켜가며 적의 한 측면을 전력으로 돌진하여 포위망을 벗어나 동쪽으로 패주했다.
경보병들은 몇명만이 숲속으로 도주했고 방금 가설한 다리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들은 기병이 건넌 뒤에 다리를 파괴해야했기 때문에 추격해온 한니발군에 6백명이 포로가 되었다.
한니발이 손에 넣은 최초의 로마군 포로들은 그의 귀중한 정보원이 된다.
그날 한니발은 로마의 집정관을 놓쳐버린 것이 아쉬웠겠지만 그보다도 집정관을 구한 젊은 기사를 놓쳐버린 것이 더 후회스워야 했을 것이다.
집정관 아들이었던 그 기사는 17세의 소년 기병, 아버지와 동명의 부브리우스 코르네리우스 시피키오는 그로부터 16년 후에 로마군을 이끌고 이번에는 카르타고 본토 자마의 싸움터에서 한니발과 대결하게 되는 숙명의 적수가 된다.
한니발에 패하여 피아첸차에 돌아온 집정관 코르네리우스는 중상의 아픔을 참고 적의 전력은 정확히 관찰하고 있었다.
카르타고군의 기병 전력이 한단 위라는 것이 판명된 이상 平原地帶에서의 숙영은 극력 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갖 세운 피아첸차 방위는 약했고 자기 휘하의 2개 군단과 시칠리아에서 도착하는 2개 군단을 합한 4개 군단의 숙영지로서도 안전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좁다는 것도 알았다.
다음은 제2회전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