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Digest-48-
*군사 정치에 주도면밀한 스키피오의 戰勝管理
단 하룻만에 카르타고의 스페인 본거지 카르타헤나를 점령한 스키피오는 첫 승리의 기개를 떨쳐 스페인 원주민들의 민심을 사는 정치감각에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전승 장병들에게는 항복하지 않은 적에 대한 관례를 깨고 일부의 약탈만을 허락했을뿐 점령지 자산 일체를 국유화했다. 전비에 충당한다는 것이었다.
주민과 적군 포로를 한데 모아 3분류하고 건장한 남자들은 군선의 노젓는 선원으로,기능인들은 로마군 공병으로 편제하고 나머지 노인과 아녀자들은 조건 없이 귀가를 허락했다.
패전 국민에 대한 이같은 관대한 조치에 감사한 한 원로가 이미 시집 가기로 정해진 예쁜 처녀 하나를 스키피오에 바치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를 극구 사양했다.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지만 전쟁 수행 중의 군 지휘관에게 있어 이처럼 곤란한 선물도 없다"면서 사양한 것이다.
60대 노인의 말이 아니라 20대 청년의 말이기에 패전국민에게 이보다 더 훌륭한 교훈이 없었을 것이다.
카르타고에 대한 충성 보증 명목의 인질로 잡혀와 살던 스페인의 영향력 있는 집안의 가족 3백명이 있었다. 그들은 고향의 가족들에게 스페인이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권유하는 편지를 써보냈다. 스키피오의 정치력의 한 단면을 엿보게하는 성과였다.
한편 로마는 붕괴 직전에 있던 스페인전선이 회복되고 카르타헤나까지 함락한 스피키오군의 승전보에 흥분의 도가니였으나 로마의 3개 군에 밀려 장화 발등에 얹혀있던 한니발은 한참 뒤에 알게된다.
전승 후의 스키피오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BC.209년 봄 여름, 가득히 메운 일정대로 육 해 전군에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카르타헤나에는 수비병력만 남기고 에프로江을 건너 타라고나 본영에 귀대했다.
이듬해 벌어질 것이 확실한 카르타고 3개군과의 결전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도 아카이아同盟軍(그리스)의 騎士團長으로 복무한 바있는 歷史家 폴리비우스는 스키피오를 가리켜 이렇게 평했다.
<그의 행위 일체는 완벽한 논리적 귀결을 가지고 있다>
*BC.208년 스페인 베크라大會戰서 완승
BC. 208년 봄과 함께 스피키오가 제일 먼저 행동했다.
육 해군으로 나눠 타라고나를 뒤로 한 로마군은 에프로강을 건너 남하하여카르타헤나에 입성했다.
무엇보다 적은 3개군 7만5천의 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스피키오 휘하군 병력은 적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카르타헤나 수비에 많은 병력을 배려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한 스피키오는 이제 신뢰할만큼 친근해진 주민들에게 방위를 맡기고 전병역을 둘로 나누어 양면작전을 구사하기로 한다.
오른팔 격의 부장 레리우스에게 해군을 이끌고 이베리아半島 남쪽을 돌아 카디스 근처에 있는 한니발 막내동생 마고네의 軍을 못박아 놓는 임무를 맡겼다. 로마에서 가지고온 30척과 노획한 23척을 합해 53척의 함대였다.
스피키오 자신은 전 육군을 이끌고 목표 한니발의 아래동생 하슈도울바르를 쫓아 내륙부로 향했다.
하슈도울바르가 카르타헤나로부터 10일 행정 거리의 베크라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동생 마고네 군과 합류한 후 스피키오와 대결할 심산에서였다.
베크라에는 시를 배경으로 강을 전면으로한 會戰 適地가 있다.
카르타고군은 거기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진지를 가지고 있어 지형상 유리했다.
이번에도 동생 마고네 군이 도착하기 전에 속공을 감행한다는 것이 스피키오의 구상이었다.
하슈도울바르 1군만으로도 互角勢인데 거기에 코끼리떼가 가세하고 또 마고네 군까지 합친다면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님을 아는 스피키오의 작전은 속전 속결 이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마고네 군을 못박아놓기 위해 주둔지 해항 봉쇄 겸 상륙 위협을 가하기 위해 해군 선단을 그쪽에 진출시킨 것이다.
스피키오의 용의주도한 작전 구상이었다.
마고네 군의 도착을 의심하지 않은 하슈도울바르는 회전을 미루려고 행동이 늦었다.
주도권은 자연 스피키오가 쥔다.
불리한 지형에 불리한 전력으로 싸와야하는 스피키오는 의식이던 무의식이던 알렉산더대왕이 구사하고 한니발이 답습한 전술을 여기서 구사한다.
27세의 사령관 스피키오는 경보병 전원과 온정주의로 거둔 스페인 원주민병 정원을 강 건너에 포진시켜 적의 전위부터 치게했다. 적 본대의 응전을 유도하는 미끼 던지기였다.
하슈도울바르는여기에 말려들었다.
스키피오는 적의 본대가 진형을 갖출 틈도 없이 병사를 들판에 내몰아 적을 쳤다.
강 이쪽에 대기하고 있던 중장보병과 기병 전군이 노도처럼 강을 건너 좌우 양익으로 갈려 적 본진의 측면을 공격했다.
진형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령도 전달되지 않은 작은 우왕 좌왕 전렬이 흐트러지면서 범인들이 일망타진되듯 로마군에 굴복했다.
진지까지 포위된 상황에서 전멸을 모면하기 위해 하슈도울바르는 항전을 단념하고 베크라 시내로 도주해버렸다.
이날 회전에서 카르타고 측은 전사 8천에 포로 1만 2천의 참패를 당했다.
롬 즉희생은 수로 헤일만큼도 안되었다.
스피키오로하여금 적장 추격을 단념시킨 것은 추격 도중 마고네의 2군과 마주칠 위험때문이었다.
3년 전 아바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신념이었던 것이다.
회전은 이겼지만 1만 2천명의 포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였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 와서 겪은 똑같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포로 중 스페인人은 몸값 없이 석방되고 카르타고人만 노예가 되는 운명을 안고 로마에 송치되었다.
포로 중에 소년 하나가 있었다.
출생이 아프리카의 누미디아라고 한다.
양친을 잃고 스페인에 온것은 젊은 큰아버지에 맡겨져서였고, 그 양부의 이름을 들어 소년의 이름은 마시닛사라고 했다.
누미디아의 왕자 마시닛사는 카르타고군의 용병이 되어있는 누미디아기병의 대장이기도하다. 그것도 3년 전에 스피키오의 아버지를 복병해서 전사시킨 장본인이었다.
스피키오는 소년에게 큰아버지에게 가고싶으냐고 물었다.
소년은 눈물을 글성이며 가고싶다고 대답했다.
스피키오는 부하를 시켜 소년에게 로마식 토가를 입히고 금 장식으로 된 혁대를 채와 말 한필을 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기병대 를 시켜 소년이 바라는 장소까지 호송해 주었다.
27세 로마의 젊은이는 로마 무장들이 이제까지 아무도 시도한 바 없는 포석을 깔았다.
그 마시닛사가 여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그것은 아직 모를 일이었다.
베크라회전의 패배는 스페인의 카르타고군에 전년에 이은 두번째 충격이었다.
하슈도울바르와 마고네 그리고 지스코네 세 카르타고군 사령관들은 금후의 전략을 숙의하였다. 더 이상 스키피오의 로마군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었다.
오늘은 이만......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