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35-
-승전-
로마軍이 못먹고 지쳐서 내려온 한니발軍을 알프스山 밑에서 기다렸다가 간단히 격퇴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가설을 쓴 역사가도 있으나 그런 史家라면 자질 없는 사이비 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해 로마는 알프스 훨씬 아래쪽 피아첸차와 크레모나 두 곳에 겨우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그치고 있었다. 한니발이 내려온 지점으로부터는 250킬로나 떨어진 동쪽,아직 갈리아人의 천하였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나발도 알프스 월경을 감행한 것이다.
근처에 대기하다가 적을 친다. 로마군으로서는 되지도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한니발이 내려와서 병사들이 쉬는 동안 한 일은 일대 갈리아人들의 懷柔作戰이었다.
나라 지킴을 용병에 맡기는 카르타고는 이전부터 갈리아인 용병이 적지않았다.
이탈리아 북부에 사는 갈리아인은 2백년 가까이 로마에 억눌려 왔다.
갈리아족은 BC.390년에는 로마를 점령했던 옛꿈을 가지고 있으나 로마의 점진적 북진에 밀려 알프스 산밑까지 쫓겨사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듯, 카르타고人의 도래를 맞아 어느새 동맹을 맺는다.
한니발은 말로 안되면 용서없이 힘으로 해결하면서 하룻만에 토리노를 무혈 점령했다.
하니발이 이탈리아를 침공해 온 BC.218년 로마의 동원가능 전력은 얼마였는가?
그것을 로마 원로원 의원 픽토르가 최초 로마역사서에서 밝혀준다.
시칠리아 사이 메시나海峽에서 루비콘江까지 <로마聯合> 가맹국 전역에서 75만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엄격한 법에 의해 군 소집령이 아무 때나 발령되는 것이 아니며 전선사령관인 집정관 1인이 거느릴 수 있는 병력은 2개 군단이었고 불가피한 경우 집정관 수를 늘려 兵員을 보충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동맹국 보조병력을 제하면 한니발의 침입 당시에 로마가 알프스 밑에 배치할 수 있는 현역병은 긴급 보충된 2개 군단을 합해 모두 6만이었다.
수적으로는 알프스 이남에서의 한니발軍 2만 6천에 비하면 배가 넘지만 전력의 질에서는 또다른 계산이 나온다.
한니발군은 大長征서 살아남은 정예군인 반면 로마군은 1년마다 교체되는 미숙련병이 많다. 기병은 세계에 떨치는 아프리카의 누미디아傭兵과 갈리아용병으로 채와져 보병대 기병의 비율이 3대 1로 우세했다.
이 두 전력이 이제 한니발의 의도대로 로마의 영토내에서 지구전을 펼치게된다.
BC.218년 11월, 평소같으면 겨울 자연휴전기에 들어갈 시기였다.

*티치노 제1회전
그동안 로마는 예상도 못한 방면으로부터 공격해온 적을 받아칠 태세를 갖춰가고 있었다.
마르세유로부터 회귀한 코르네리우스 집정관은 피사에 대기 중이던 2개 군단을 이끌고 최전선 기지가 된 피아첸차로 직행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군단만으로 한니발과의 전투를 개시할 뜻은 없었다.
한니발이 갈리아용병까지 모아 4만에 육박하는 군세를 갖고 있는터에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동료 집정관 센프로니우스가 이끄는 2개 군단의 도착을 기다려야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로마인이 만난 적은 겨울이 가까우면 합의나 한듯이 휴전해 줘서 로마군은 각기 향리로 돌아가 시민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상예였다.
그러나 지금의 적은 코끼리까지 동원하는 비상식을 단행한 한니발이다.
이 젊은 상대에게는 상식이 안퉁했다.
아직 요새화도 안된 피아첸차에 엎드린채 언제 적이 내습할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겨울을 나야했다.
그 상황에서 코르네리우스는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격레연설을 했다.
<전사동지 여러분, 여러분이 만일 내가 마르세유까지 데리고 갔던 병사들이라면 아무 말도 하지않을것이다. 그들이었다면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첫 대결이 로마측의 대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병사들은 그때 그 빛나는 전적을 자기 눈으로 보지 않은 여러분이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여러분은 새로운 적과 싸운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들은 우리가 23년 전에 격파한 패잔병들이다. 우리는 저들로부터 시칠리아와 사르데니아 등 지중해 요충을 얻어냈다. 대등한 전사들간의 싸움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다시 만나 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략--
그 카르타고인이 이번에는 이탈리아에 침입해 왔다.
때문에 시칠리아의 패권타툼이 아니다.
우리 국토 이탈리아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전사동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싸움자세가 운명을 결정한다.
諸神의 加護가 있기를!>
오늘 준 전시상황을 맞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軍에도 尙武精神으로 무장한 전의를 불태울수 있는 명연설을 해줄 장군이 있다면 그는 시대의 영웅일 것이라는 생각 금할길이 없다.
한편 一戰에 앞서 한니발진영서도 督戰演說이 있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는 도중 적대행위를 한 갈리아人들을 포로로 잡아 끌고 왔다. 거의 벌거벗은채 혹한에 시달리는 포로들을 부하병사들 앞에 불러내 놓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決鬪를 허락한다. 이긴 자는 무기와 말을 주고 자유도 준다고 했다.
포로 전원이 결투에 나섰다.이긴 자는 자유를 찾을 것이고 진 자는 동료의 칼에 처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갈리아인들이 연출하는 相殺場을 구경하던 카르타고 병사들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냈다.
볼거리가 끝난 다음 한니발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지금 본대로 갈리아인들처럼 용감히 싸우면 우리는 勝者가 된다고 확신한다.
지금 보인 것은 구경꺼리가 아니다. 너희들의 현상을 비친 거울이다.
우리는 좌도 우도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여기서 도망가려해도 배가 없다.
눈 앞에는 로누江보다 큰 포江이 거친 물결로 흐르고 뒤는 알다싶이 알프스가 버티고 있다. 도망갈 곳이 없다. --중략--
나는 하밀카르를 아버지로 兵營서 낳고 자란 카르타고의 무장이다. 나를 따를 자 로마에는 없다.
전쟁은 반드시 이긴다.
전쟁이 끝나면 너희들에게는 카르타고에서도 스페인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희망하는 나라에 토지를 준다. 세금은 자식代까지 면제다. 토지보다 돈을 요구하면 응분의 金貨를 준다. 카르타고시민권이 필요하면 그것도 준다.>
한니발은 덧붙여 노예들에게 함께 싸운다면 불편 없이 자유를 주고 병사 하나 하나에게 로마인 두 명씩 노예로 줄것을 약속했다.
한니발의 공약 선언에 박수갈채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겨울철이지만 전투를 희망한 한니발은 로마의 2개 군단이 있는 正東쪽 피라첸차를 향해 숙영지를 뒤로 했다.
피아첸차에 있는 로마군 사령관 코르네리우스는 동료 집정관 센프로니우스가 데리고 오는 증원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