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교훈 로마史Digest-66-
*反元老院派 카에사르의 <카티리나의 음모> 재판에서 행한 명 연설 전문
<원로원 의원 여러분, 여러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 있어 의심되는 것을 결정하는
경우에 憎惡나 同情 또는 憤怒나 慈悲 같은 것은 일단 잊어버리고 대하는 갓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특히그것이 한 때라도 사람들에 만족을 주고 共同體에 이롭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특히 어렵다.
理性에 무게를 두면 頭腦가 주인이 된다.
그러나 感性이 지배하게 되면 결정은 感情이 내리게 되고 거기에는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늘 여러분에게 歷史를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많은 王들도 또 많은 民草들도 노여움이나 자비에 쫓긴 결과 멸망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쁨과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先祖들의 바른 소행이다.
우리선조들은 감정에 흐르지 않고 公正하냐 아니냐에 따라 매사를 처리해 왔다.
마케도니아戰爭 당시 베르세우스王에 대해서도, 또 번영하던 로노스島의 반항을 대했을 때도 그랬다. 우리 선조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을 이르킨 것 자체로는 누구도 벌할 수없었기 때문이다.
3차에 걸친 포에니戰爭에서도 우리 선조들의 대처방법은 다르지 않았다.
카르타고人은 기끔 강화조약을 위반했으나 그들을 極刑에 처한 일은 없다.
때문에 의원 여러분, 현재 우리에게도 선조들에 부그럽지 않은 대처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렌토울스 이하 一黨의 바보짓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도 증오가 아닌 우리의 이름에 욕되지 않는 방법이기를 바란다.
문제는 行爲에 대한 타당한 처벌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어떻든 그들의 죄의 깊이가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 이상 나는 이런 경우야말로
기존의 법 범주 내에서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 앞서 발언한 여러분은 말을 신중히 골라서 우리 공화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설명해 주었다.
전쟁이 났을 경우의 殘虐, 패자의 運命, 보호를 잃은 처녀와 소년, 부모의 품에서 강탕되는 어린이, 勝者 기분대로 먹이감이 되는 부녀자, 보물을 强奪 당하는 神殿, 요컨데 武器와 피와 누물밖에 없는 慘狀을 눈 앞에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변론이 진심으로 찾고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음모를 더욱 증오하도록 하자는 것인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않은 자에 대해서 그들이 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태에 대한
공포심를 부추기려는 것인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言行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나 원로원 의원 여러분, 모든 인간은 누구라도 고루 스스로의 언행의 자유를 구가할 수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
사회 밑바닥에 사는 下賤民이라면 분노에 쫓겨 행동한다 하더라도 용납될는지 모르나, 사회 상층에 사는 사람이면 스스로의 행동에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로 가면 갈수록 행동의 자유는 제약된다.
즉, 친절이 지나처도 안되고 미워해서도 안되며 무엇보다도 절대로 증오에 눈이 멀어서는 안된다.
보통 사람에게는 단순한 분노일지라도 權力者에게는 오만하고 잔학해지기 마련이다.
의원 여러분,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모든 형벌은 그 사람이 범한 죄에 비해 다소 낮은 듯이 내려져야 한다고.....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람들은 형벌에 대해 논할 때는 죄가 되는 본질은 잊고 형벌 그 자체가 무거우냐 가벼우냐만을 생각힌다.
나는 器量에 합당한 가치 있는 인물이라는 데서는 周知의 시라누스의 의견이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증오의 눈으로 흐리지 않은 객관적 입장에서의 의견이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나 자신도 그의 공정한 성품을 잘 알고 있다.(시라누스는 차기 집정관으로 맨 먼저 연설하고 피고들에 사형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의 의견이 잔혹하지는 않다 하드라도 불상한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잔혹하지 않은가를 망각한 점에서 국가의 법에 위반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물론 시라누스 차기 집정관 당신은 국가에 공포를 안겨 줄만한 큰 일에 대한 배려가 그런 극형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이 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不安을 토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현 집정관의 과단성 있는 조치 더분에 혹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책은 이미 환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처벌에 대한 討議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눈물과 불행 속에서의 죽음은 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救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者가 맛 보아야하는 갖가지의 참상을 경험해야 하지만 죽으면 기쁨도 없는 대신 고통도 없어진다.
시라누스, 당신은 왜 처음에 笞刑에 처한다고 제안하지 않았는가?
포르투우스法이 로마市民에게는 그것을 禁하고 있어서인가?
그렇다면 다른 법에서는 로마시민권자에 혹시도 그 사람이 추방을 擇하면 사형에 처해서는 안된다고도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태형은 사형보다도 무거운 刑이라 생각해서인가?
어떠한 처벌이 大罪를 범한 자에 대해서 보다 잔혹하고 보다 무거운가?
그리고 시라누스, 당신의 그에 대한 판단이 로마의 국법에 비추어 타당하다고 할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시라누스, 당신은 말 할것이다.
이 裁決은 국가에의 變節者에 대한 것임이 확실하다고....
그러나 民衆이라는 것은 항상 或者에, 機會에, 時代에, 運命 등에 의해 희롱 당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들은 거기에 값을 치룰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의원 여러분, 당신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先例를 만들면 그것이 후일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나쁜 사례라 하더라도 그것이 비롯된 당초의 동기는 善意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이 未熟해서 公正心이 缺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좋은 동기도 나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유죄로 판명된 사람을 처형하였으나 차츰 죄 없는 사람까지 희생자로 만들게 된다.
스파르타人은 아테네에 이겼을 때, 아테네人에 대해 30人의 압제자에 의한 정치를 강요했다. 그 30인은 反體制 측으로 본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했다.
아테네市民은 그것을 보면서 처형된 자들을 극형에 처해 마땅하다고 하며 환영했다.
그런데, 30인의 압제자들에 의한 처형은 조금씩 에스컬레이트 되면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체포해서 재판 없이 처형했다.
공포가 시중에 팽배했고 힘 없는 시민들은 스스로를 노에화시킨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시대라고 해서 이 잔혹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절대권력을 쥔 스쯔라가 반대파를 죽이기 시작했을 때 로마시민은 죽임을 당해도 당연하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로마인의 민심을 황폐화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남의 저택을, 어디 그뿐인가 磁器나 의복까지도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그것들의 주인을 密告해서 스쯔라의 殺生簿의 부피를 늘려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처음에는 남의 일인 것 같았으나 다음날은 그 살생부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첫 화살을 날리는 사람이 이번처럼 執政官 키케로라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도시에는 많은 다른 성격의 소유자들이 살고 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집정관이 거짓의 음모라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손에 쥔 권력을 남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일이 선례가 되면 선례가 있다고해서 집정관이 그리고 <元老院最終勸告>가 칼을 뽑았을 때 누구가 한계를 알아 채려서, 누구가 폭주를 제지시킬 수있을 것인가.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의 선조들은 용감했지만 분별력은 잃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것이면 타국인에게서 배우는 것을 방해하는 따위의 오만함을 갖지 않았다.
사무늄族으로부터는 공격 방어 쌍방의 무기를 도입했고 에톨루리아人으로부터는 관직 徽章을 도입했다.동맹자이던 적대민족이던 좋은 것이라면 주저 없이 배우고 도입했다.
거절하기보다 모방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공하국 창건 당시는 그리스人의 행동양식을 답습해서 태형을 남발하여 많은 사람을 죽게했다.
그러나 국가가 강대해짐에 따라 시민들의 발언권이 높아지면서,그리고 그 방법이 무고한 사람에까지 파급될 위험성을 고려한 나머지 <포르키우스法>이 성립되고 죄인이라 하더라도 自進亡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의원 여러분, 나는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긴급조치를 채용하는 데 대한 반대의 論據로 삼고자 한다.우리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지혜와 덕망 덕분에 작은 나라였던 로마도 지금의 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런 선조들에 비해 오을날 우리가 수중에 두고 있는 것은 강대한 권력이며 그것을 사용하기 보다 좀 더 깊은 思慮가 요구되어 당연하다.
결론을 말하면, 후세에 미칠 영향을 염려해서 죄인을 석방할 것이냐? 당치 않다.
그렇게 되면 카티리나와 그 일당을 증식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5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한나씩 따로 다른 지방 도시로 보내 감금한다.
그리고 이후 그들에게는 원로원 시민집회에서의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
만일 이런 것들을 위반 할시는 그 자는 이번이야말로 국가의 敵으로 규탄하여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한다.>
이상은 BC.63년 발생한 집정관 낙선자 카티리나를 주모자로한 미연의 쿠데타 음모 사건에 대한 법무관 당선자 카에사르의 변론 연설이다. 그는 역사를 두려워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노력했다.
재판 결과는 카에사르의 제의가 무시되고 쿠데타 음모자들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었다.
회장 밖으로 모두 퇴장할 때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군중들에 의해 카에사르는 몰매를 맞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피해 집으로 도망가서 여러 날 칩거했다
Pax-Romana의 실혈을 위해 共和政을 帝政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철두철미 생각한 카에사르는 어떤 일을 도모하든 단일 목적이 아닌 다목적 추구를 원칙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10대 후반 민중파 킨나의 딸과 결혼하고 절대권력자 스쯔라에 의한 이혼 압력에 불복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한 것은 公 私의 구별이고, 위 연설에서도 여러번 밝혔듯이 寬容의 미덕을 중시했다.
그는 집정관으로 명 변호사이며 문장가 키케로와 함께 위 연설에서 보았듯이 당대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그는 본격 정계진출 후 帝政 추진의 제1보로 三頭政을 이끌어간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