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교훈 로마史 Digest-70
*갈리아전쟁 2년차서 실질적 대적 게르만軍恐怖에 주늑 든 군단병들을 다스린 카에사르의 수완을...
BC.58년 갈리아戰役의 서막은 스의스人의 3분의 2가 희생된 가운데 원위치 강제송환
작전으로 끝났다.
카에사르의 갈리아평정계획 2단계는 게르만족을 잠재우는데서 시작된다.
헤르베티족 문제를 해결하고 歸營한 카에사르에게 갈리아의 諸部族長들이 승전축하차 방문하였다.
카에사르의 동의 하에 비브라그테에서 부족장회의를 가진 그들은 친로마파 헤드위族
長 디비치아쿠스를 의장으로하여 향후 갈리아의 안전보장은 게르만족의 위협을 제거
하는데에 있다고 보고 카에사르가 역할을 다해 줄것을 희망하였다.
갈리아를 대신해서 게르만족을 격파해 달라는 요구였다.
라인江을 건너온 게르만족은 처음에는 1만 5천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2만에 달했다.게르만족 두목 아리오비스토우스의 힘은 막강해서 인근 갈리아부족을 억압하고
갈리아족 중 최강의 헤드위족조차 인질을 강요받고 매년 조공을 바쳐야하는 형편이었다.
로마의 우호 부족들을 보호해 줘야할 강자로서의 카에사르는 족장들의 요청에 다음
말로 응답했다고 전기에 쓰고 있다.
<만약, 카에사르와 로마가 아무런 힘도 보태주지 않는다면 갈리아의 모든 부족이 헤르베티족의 전례를 답습해서 게르만족으로부터 보다 먼 지방으로 향해 이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그러나 카에사르여, 귀하와 귀하의 군단의 신망에 힘 입어, 그리고 전날의 대승리와
로마의 이름으로 더 이상의 게르만족의 라인강 도하를 중지시키고 전 갈리아를 아리
오비스토우스가 주는 굴욕으로부터 당신이라면 해방시킬 수있지 않은가>
이 말을 요약하면 카에사르는 갈리아족장들의 요청을 수락하고 <선처를 약속한> 것이다.
로마의 명예를 걸고 보호를 요청해 오는 友好民들을 포용하고,
게르만족의 라인江 도하는 로마로서도 위협이고,
갈리아족보다도 未開한 게르만족이 갈리아를 지배해서는 안되고,
이탈리아를 침범한 역사적 사례가 두 번이나 있고,
언제든지 로마에 無禮를 범할 가능성 있는 게르만족을 방치할 수없고,
게르만족 두목 아리오비스토우스의 힘이 막강해 주변이 위협을 받고,
親 게르만의 세쿠니아族과 로마의 南佛屬州는 로누江만 건너면 되는 상황,
등이 카에사르의 갈리아 보호약속을 이끌어낸 배경이라고 그는 전기에 쓰고 있다.
카에사르는 게르만대책을 우선 대화로 해결하고자 사절을 파견했으나 게르만 두목은
아쉬운 쪽이 찾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로마의 장군인 카에사르가 왜 게르만人이 싸와서 얻은 갈리아 땅에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없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카에사르는 재차 사절을 보내 이번에는 회담이 성사되었을 경우의 다음
의제까지 제시하였다.
첫째, 더 이상 게르만人을 라인江 건너 갈리아에 이주시키지 말것
둘째, 헤드위族으로부터 앗아간 人質을 반환 할것
세째, 헤드위족과 그 동맹부족에 대해 굴욕을 주지말고 싸움도 걸지 말것
만약 이상을 수락하고 실천한다면 아리오비토우스와 지배 하의 게르만人들은 카에사르와 로마와의 우호관계를 향수할 것이나, 그렇지 않고 반대의 경우는 로마의 법이 정한대로 南佛屬州의 총독인 자신은 로마의 국익과 로마 우호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특히 헤드위족에 대해 온당치않은 행위를 저지른 자를 罰하지 않고 방치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덧붙였다.
아리오비스토우스도 즉답을 보내왔다. 다음은 그의 답신 요지이다.
勝者가 敗者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전쟁의 규범이다. 그러므로 로마인도 항상
패자를 자기가 좋은대로 통치해 왔다. 나는 로마인에게 패자를 어떻게 취급하라고
권고하고 있지 않으므로 로마인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헤드위족은 우리와 무기로 맞서 실패해여 진 것이므로 年貢金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
고 인질도 돌려보낼 수없다고 전제한 뒤, 만약에 카에사르가 공격하고 싶으면 해와도
좋지만 게르만인이 일일 연마해 온 무술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회답은 아리오비스토우스의 최후통첩이었다.
로마군단의 1일 踏破 거리는 통상시 행군 5시간에 25킬로, 강행군시 7시간에 30킬로,
최강행군시 주야 물문 최대 可能 거리, 이것은 상시 40키로 무계의 개인 軍裝 軍糧을 질머지고서의 거리이다.
로마軍團의 주력 重裝步兵이 덩치로 보면 갈리아人보다도 큰 게르만人에는 비할바 없이 倭小하지만 그러나 체력에 있어서는 저들을 능가했다.
게르만족을 찾아 떠난 카에사르의 로마군단은 1일 7시간 30킬로의 행군속도로 親 게르만系의 세쿠니아族 본거지인 지금의 부잔손을 향해 달렸다. 부잔손은 원을 그리듯이
로누江의 지류 도우江이 3면을 돌아나간 요충지로 적에 선점되면 몹씨 불리해지는
전략요충이기도했다.
이 요충을 선점, 전투 준비차 수일간 휴식 중 난데 없는 루머가 돌아 로마병사들은
페닉에 빠져 전의를 잃고 전쟁기피 심리가 확산되었다. 왜소한 로마인들은 거구의
게르만군을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도망칠것이라는 풍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이 불칙의 상황을 카에사르는 전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 공포증은 우선 카에사르와의 인연으로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던 戰場 경험이
적은 젊은 장관급들에게 퍼졌다. 그들 몇은 급한 용무가 있어 떠나야겠다면서 카에사
르에게 휴가를 청원했고, 다른 자들은 겁쟁이로 보일까 두려워 차마 떠나겠다고는
못하고 천막 안에 숨어서 혼자 울거나 끼리끼리 모여 저들이 맞을 운명을 한탄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마침내 숙영지 전체는 遺言狀을 封印하는 소리로 메워졌다.
이 공포는 조금씩 전장에 익숙해지고 있을 熟練兵이나 百人隊長이나 騎兵團長에까지
침투해 갔다. 패닉에 빠져있지 않은 것처럼 가장한 자들은 게르만人은 무섭지 않지
만 게르만軍이 있는 곳까지 가는 험한 길이나 깊은 숲이 무섭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거나 어떤 자들은 그 길을 운반해야할 군량이 걱정이라는둥 엉뚱한 핑게를 대는가
하면 또 어떤 자들은 만약에 총사령관 카에사르가 出陣명령을 내리드라도 병사들은
軍旗를 선두로 행군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둥 겁쟁이들의 辨述이 자자했다.>
카에사르는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었다.
作戰會議를 소집했다.
통상 작전회의에는 軍團長과 大隊長 전원, 百人隊長은 제1대대 제1중대의 수석 백인대장 한 명만을 참석시지만 이날 작전회의에는 6개 군단의 3백명의 백인대장 전원을 망라하여 4백 30명이나 참석했다. 총사령관의 뜻이 소속 개개의 대원 전원에 확실히 전달되도록 짜낸 구상이었다.
총사령관의 전략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군말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질책한 뒤 게르만군에 대한 강박관념을 털어버리라고 충고했다.
적장 아리오비스토우스는 카에사르가 집정관 당시 로마에 우호동맹 제의를 해온 인물이지만 만약 그가 도발을 해온다면 로마는 언제든지 그를 격파할 자세를 갖춰야하며 그 계기가 지금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들의 아버지 代에 로마는 게르만과 대전해서 킴브리族과 테우토니族을 마리우스 집정관이 궤멸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카에사르는 역설했다.
<게르만족에 대한 공포심 따위 가질 이유가 뭔가.
그들이 로마인과 겨룬 것도 로마인으로부터 배운 전술과 군기와 무기에 의한 것이었을뿐, 게르만족이 로마와 싸와서 이긴 적이 없다. 전례를 보더라도 싸움에 이기려면 불굴의 투지만이 최상의 무기라는 것은 명백하다.
실제, 오랜동안 이유 없이 게르만을 겁내온 로마人이었으나 대전하면 으례 격파했다.
게르만人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꼼작 못하게 만든 헤르베티族도 가끔 이긴 바있는 사람들과 동족일뿐이다. 그 헤르베티족을 우리가 무찌르지 않았는가?
겁먹은 병사들을 데리고 싸울 뜻은 없다.
조금 있다가 전하려 했으나 기왕 생각난 김에 말한다.
내일 밤 제4보초시(새벽 3시)가 되면 우리는 숙영지를 떠난다.
너희들 마음 속에 부끄러움과 의무감이 이기느냐? 아니면 공포가 이기느냐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말이다.
만약 따르는 자가 없더라도 제10군단만은 데리고 떠난다.
10군단이라면 忠誠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제10군단은 이후 카에사르의 近衛軍團이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파락하는 카에사르의 기막힌 화술이다.
이날 밤 카에사르의 훈시는 병영 빈틈없이 전파되어 병사 전원의 사기가 일신되었다.
제10군단 병사들은 저들 지휘관을 통해 자시들의 충성과 의무감에 신뢰를 준 데 대한 감사의 뜻과 함께 출전 준비는 완료되었다고 보고했다.
다른 군단들도 지휘관을 보내온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사죄의 뜻과 함께 다시는 그런 비겁한 행동은 없다는 결의를 전해왔다
카에사르는 충성맹서와 사죄를 받아들이고 군단병 전원을 이전의 부하로 맞아 줄것이라고 약속했다.
사기가 오른 김에 그것을 당장 활용하는 것이 특히 군대에서는 상책이다.
작전회의에서 통고한 날의 그 시각에 출진, 7일간의 강행군 끝에 척후가 거져온 정보로 카에사르는 게르만 敵將 아리오비스토우스가 36킬로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게르만 대군과의 馬上協商과 決戰입니다. 오늘은 이만.....
Siege and battleSiege and battle
Siege and battle
[edit] Siege and battle
The Fortifications built by Caesar in Alesia according to the hypothesis of the location in Alise-sainte-ReineInset: cross shows location of Alesia in Gaul (modern France). The circle shows the weakness in the north-western section of the contravallation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