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연합(대수천) 상임대표. 트루스데일리천주교 평신도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안보, 교회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연합(대수천) 상임대표가 6일 선종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고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39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활동한 뒤, 시민사회와 천주교 평신도 운동에 참여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안보, 교육의 방향, 교회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신념을 펼쳐 왔다. 특히 천주교 성직자들의 정치적 발언과 사회 참여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할 때는 평신도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인 비판과 행동을 이어 갔다.
고인의 삶을 관통한 문제의식은 국가와 교회를 별개의 영역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하면 종교인도 목소리를 내야 하며, 교회 역시 정치적 편향으로 신자들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평신도 운동에 나선 이유였다.
고교 교장 출신… 교육·시민사회 활동 거쳐 평신도 운동의 길로
고인은 교육계에서 서울 양천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한 경력을 바탕으로 교육 문제와 국가 정체성에 관한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공동대표, 교육선진화운동 공동대표,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공동대표, 대한민국사이버통일안보국민연합 연구위원 등을 맡아 활동했다.
그의 활동은 교육 현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국가 안보, 북한 문제,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쟁점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교육과 종교가 이념적 편향에 휘둘릴 경우 국가의 미래와 공동체의 결속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고인이 천주교 평신도 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2013년 무렵이다. 당시 천주교 내부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인은 이 문제를 단순한 교회 내부의 의견 차이가 아니라 신앙과 정치, 성직자의 역할과 평신도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2013년 12월 고인은 당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서울·경기·충청·강원 지역의 주교좌성당을 찾아 1인 시위를 벌였다. 주한 교황청대사관 앞에서도 시위를 이어 가며 정치적 발언을 하는 사제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침묵하는 평신도들이 교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직자의 권위가 평신도의 비판을 차단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며, 교회가 정치적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일도 신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2013년부터 이어진 대수천 활동… 정치 사제 비판과 평신도 권리 강조
고인의 활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일부 성직자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사제의 본분은 복음과 신앙을 전하는 데 있으며, 성직자가 특정 정치 세력의 주장이나 이념을 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교회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북한 문제와 국가안보,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둘러싼 사제들의 발언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고인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2013년에는 각 지역의 성당과 주한 교황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으며, 관련 자료집과 신문 광고 등을 통한 여론 형성에도 참여했다. 평신도들이 교회 안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성직자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17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대수천의 3·1절 구국기도회에서도 고인은 공동대표로 참석해 국가안보와 천주교의 역할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당시 현장 보도에는 그가 평신도 회원들과 함께 성직자들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종교인의 책임과 연결해 주장한 내용이 담겼다.
고인은 이처럼 종교적 신념과 국가관을 결합한 활동을 지속했다. 그에게 평신도 운동은 교회 밖의 정치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적 편향으로 분열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 역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과제였다.
다만 고인의 주장은 천주교 내부에서 폭넓은 합의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사제단의 사회 참여를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를 위한 활동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고, 대수천의 비판이 교회의 사회교리와 성직자의 양심적 발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고인의 활동은 이러한 상반된 평가 속에서 한국천주교의 정치 참여와 평신도 역할을 둘러싼 논쟁의 한 축을 형성했다.
교회 내부의 정치적 편향 우려… 평신도 목소리 대변 자임
고인은 생애 후반까지 천주교 내부의 정치적 편향성과 성직자의 도덕적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신자들의 제보와 교회 현안에 관한 견해를 소개하며, 사제들의 정치적 강론과 헌금 문제, 성당 운영을 둘러싼 갈등 등을 비판했다. 교회가 본연의 신앙적 사명을 회복하려면 평신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성직자 스스로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특히 주일 헌금과 교무금의 사실상 강제 여부, 성당 신축 비용 부담, 강론 시간의 정치적 발언 등에 관한 제보를 소개하면서 교회 운영의 투명성과 성직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제보와 비판 가운데는 개별 사실관계에 대한 별도의 확인이 필요한 사안도 있지만, 고인이 평신도들의 불만을 공론화하고 교회 내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려 했다는 점은 그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교황의 북한 방문 추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북한의 종교 자유와 인권 현실, 체제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방북을 추진하는 것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일부 주교와 성직자들의 대북 인식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 내부의 대북 정책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자신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안보와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교회가 외면해서는 안 될 책무라고 보았다.
고인의 활동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그는 교회 내부의 문제에 침묵하지 않았던 평신도 운동가였다. 반면 그의 강한 표현과 정치적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고인이 오랜 기간 자신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평신도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삶
고인의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은 평신도의 책임이었다. 성직자의 권위에 무조건 의존하기보다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지키고 있는지 살펴야 하며,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때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거리 시위와 기도회, 성명과 자료 배포, 온라인 방송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알렸다. 고령에도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둘러싼 공개 토론에 참여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주장이 모든 이에게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감추거나 침묵하는 대신 공론의 장에서 논쟁하는 길을 택했다. 그가 남긴 활동 기록은 한국천주교의 평신도 운동과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논쟁을 돌아보게 하는 자료로 남게 됐다.
고인의 선종으로 대수천과 그동안 함께 활동해 온 평신도들에게도 작지 않은 공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향후 단체의 운영과 활동 방향은 남은 회원들의 판단과 논의에 달려 있다.
평생 교육 현장에서 출발해 시민사회 활동을 거쳐 천주교 평신도 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삶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신앙 공동체의 역할을 둘러싼 그의 문제의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실에 마련됐다. 입실은 11월 7일 오전 10시, 입관은 11월 8일 오후 4시이며, 발인은 11월 9일 오전 7시 45분이다. 장지는 함백산추모공원을 거쳐 청양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유기준 씨, 아들 이호범·이영범 씨, 딸 이인숙·이명희 씨 등이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음은 각계의 특별추모사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교육으로 나라를 세우고, 누군가는 신앙으로 공동체를 섬기며, 또 누군가는 거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외친다.
고(故) 이계성 선생은 그 세 가지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를 가르쳤고, 천주교 평신도로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했으며, 시민운동가로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의 언행과 정치적 판단을 모두가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오랜 세월 행동했던 인물이라는 사실만큼은 그의 공개된 활동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6년 11월, 이계성 선생이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그의 마지막 길 앞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사회의 격렬한 이념적 갈등 속에서 신앙과 국가, 교육과 시민적 책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1. 교육자 이계성, 나라의 미래를 교육에서 찾다
고인은 양천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자였다. 그는 교직 경력을 바탕으로 반국가 교육척결 국민연합 공동대표, 교육선진화운동 공동대표, 대한민국 애국시민연합 공동대표, 대한민국 사이버통일안보 국민연합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은 그가 교육 문제를 학교 안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국가 정체성과 시민의식, 미래 세대의 가치관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았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교육은 지식 전달에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 국가의 역사와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교육자로 출발한 그의 사회활동은 훗날 천주교 평신도 운동과 보수 시민운동으로 이어졌다.
2. 침묵하지 않는 평신도, 천주교 내부에 질문을 던지다
이계성 선생의 이름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이른바 '대수천' 활동이었다.
2013년 이 모임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일부 성직자의 정치적 발언과 활동을 비판하며 조직적인 평신도 운동에 나섰다.
당시 이계성 공동대표는 명동성당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성당을 찾아 1인 시위를 벌였고, 주한 교황청대사관 앞에서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종교인은 정치에 어디까지 참여할 수 있는가. 성직자의 정치적 발언에 평신도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신앙의 권위와 개인의 정치적 견해는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그의 주장은 천주교 내부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의구현사제단을 지지하는 신자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정치·사회적 관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계성 선생의 활동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운동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성직자의 판단에 침묵하기보다 평신도 역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는 입장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3. 태극기와 기도, 종교를 넘어선 시민운동
이계성 선생의 활동은 천주교 내부 문제에 머무르지 않았다.
2017년 3·1절에는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구국기도회에 공동대표로 참석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약 200명의 참가자가 함께했으며, 고인은 마이크를 잡고 평신도들의 입장을 알렸다.
그에게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었고, 기도는 신앙의 표현이었으며, 시민운동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사회에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2021년에는 국민혁명당 창당 준비 과정에 천주교인 모임 대표로 참여했다. 이는 고인의 활동이 종교계 시민운동에서 정당 정치 영역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2024년 10월 광화문에서 열린 국민혁명대회에서도 그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 평신도 모임 대표로 참석해 당시 정치권의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고인은 여러 해에 걸쳐 보수 시민운동 현장에 참여했다. 그의 정치적 선택에는 찬반이 있었지만, 국가의 장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은 그의 생애를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4. 이계성 선생이 남긴 말과 시대적 질문
고인의 발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13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 내세웠던 질문이다.
“어쩌다가 양들이 목자들을 걱정하는 천주교회가 되었습니까?”
이는 당시 단체가 발표한 광고의 제목으로, 고인 개인의 독자적인 명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평신도 운동의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고인은 2013년 대수천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평신도가 침묵해서는 안 되며, 교회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2019년에는 정치적 활동을 하는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평신도들의 교회 내 권리를 강조했다.
그의 언어는 때로 거칠었고,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도 있었다. 따라서 그 발언을 모두 보편적인 진리나 사회적 합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질문은 오늘날에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신앙과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서 다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계성 선생의 생애는 이러한 질문을 남긴다.
5. 한 사람의 신념을 넘어, 다음 세대에 남길 유산
한 인물의 삶을 평가할 때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과 그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인의 활동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를 신앙과 애국심을 행동으로 실천한 평신도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다. 반면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일부 성직자에 대한 비판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 두 시선을 함께 기록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성숙한 자세다.
그가 교육자로서 남긴 발자취, 천주교 평신도 운동에 참여한 기록, 시민운동 현장에서 보여준 실천은 한국 사회의 한 시대를 이해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제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한 사람이 평생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지키고자 했으며, 어떤 질문을 사회에 던졌는지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살아온 시대의 기록은 남는다. 신념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진지하게 살아온 한 생애는 기억될 가치가 있다.
교육자 이계성, 천주교 평신도 이계성, 시민운동가 이계성. 그 이름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하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한다.
주님,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故 이계성 선생 주요 활동 연보
*교직 재임 시기=양천고등학교 교장 역임
*교육선진화운동 공동대표 등 교육·안보 관련 시민단체 활동
*2013년 |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공동대표로 활동, 평신도 운동 전개
*2013년 하반기 명동성당 및 여러 지역 성당, 주한 교황청대사관 앞 1인 시위
*2017년 3월 1일 명동성당 앞 구국기도회 참여
*2019년 | 평신도의 교회 내 권리와 역할에 관한 공개 발언
*2021년 | 국민혁명당 창당 준비 과정 참여
*2024년 10월 | 광화문 국민혁명대회 참석 및 발언
*2026년 11월 | 향년 87세 선종 |
대한민국애국시민단체총연합회
성호스님 대한불교종계종
응천스님 대한불교호국종
박원영 목사 서울특별시교회총연합회
박상훈 박순애 백화숙 외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정부영 트루스코리아 [5월의 침묵] 대표
조정진 트루스데일리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