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촌노란 필명을 가진 소생이 역학을 배우게 된 동기는?
소생은“논 객 넷”인터넷 신문에 안동 촌노의 역학 전서란 글을 올리면서, 글 중간에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올리는 글은 필명 안동 촌노 김 성 복이가 수십 년 간, 직접 농사일과 공사장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실적인 경험담과 때로는 수많은 기 인과 협객을 만나면서, 수십 군대의 직장을 전 전[轉轉]하면서, 체득한 일들과 어깨 너머로 보고 들은 사실적인 체험담에 의한 실체를, 글에 담아 본 것이 바로 저가 여기 논 장에“안동 촌노의 역학전서”란 타이틀로 올린
안동 촌노의 역학 전서인 것입니다. 물론 배움이 일 천하다가 보니, 전문적인 용어의 기술[記述]이 부족하고, 독자님들께서 보시기에는 미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저는 보고 있고, 표현력이나 문장력이나 문법 맞춤법에도 사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면서 오랫동안 고심을 해왔고, 무려 6 년이란 장구 한 시간을 할 애[割愛]해서 작성한 역학에 대한 저의 원고를
지난해 12 월 2 일부터 금년 2 월 3 일까지 무려 60 일간, 6 년간 원고를 작성한 것을, 다시 여러 번 수정을 반복하면서 이미 지나간 잘못된 원고들에 대한 교정까지 세세히 수정 보완하여 이곳“논객넷”신문에 연재를 한 것입니다. 물론 오래도록 역학 공부를 하기는 했어도 학문적인 연구는 사실상 미흡한 것은 저 역시 깊이 통감합니다. 그러나 오직 저가 여기 올린 역학 전서의 내용에는 과거에 오래도록 전해 오던
역학의 내용들 중에는, 기본적인 음 양[陰陽]오 행에 대한 상생[相生]상 극[相剋]법에는 그 골자를 크게 변동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성을 했고, 수리 법이나 사주[四柱] 관상[觀相] 궁합[宮合]법에는 현대의 실상[實狀]에 맞는 내용으로 많은 변화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예를 든다면, 역학의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주역[周易]의 발생이 지금으로부터, 약 2 천 4 백 년 전인 주 나라 문 왕[文王]과 그의 아들 주 공의 시절에 주역이 발생한 것이고
처음에 발생할 당시에는 주역의 기본인 천인지[天人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과 동서 팔 방의 의미를 둔, 8 궤를 시작으로 해서 역학 술[易學術]이 발전됨에 따라서 그것이 현재에는 8 x 8 = 64 괘로 확장 발전이 된 것이고, 이것은 주역의 심오한 이치로 지구 생성의 변화와 인간 세계의 모든 기초적인 인문 철학[人文哲學]과 자연 계의 변화를 모두 통찰 해 볼 수 있는, 우주 생성의 이치와 삼라만상의 오묘한 이치까지 모두, 터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난 해한 학문이면서도, 역학을 하는 역학 도로서는 필히 주역을 공부 하면서, 심산 험로[深山險路]의 힘든 삶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 길에 있다고 바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원래 어디에서 왔으며? 그 인간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지는? 아직 그 누구도 그것을 실제로 가보고 온 사람이나,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극히 인간의 몸을 하고 서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받쳐 가면서
그것을 시험을 한다는 것도 사실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반인들과 역학을 하는 역학도 들의 목숨이 몇 개가 있다 면은, 사실 시험 삼아 생전의 우리 고향이 어디이고, 사후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사전에 현장을 보고 올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인간의 생은 단 한 개밖에 천 존[天尊]님이 부여해 주시지 않았는데, 감히 그것을 함부로 겁 없이 써 버릴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성인[聖人]들과
선 현[先賢]들과 득도를 하신 도인[道人]들께서, 인간 세상에 오셨다가 가시면서도, 딱히 그 화두를 속 시원하게 우리들에게 밝히지 못하시고 영결종천[永訣終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것을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도 생전의 세상과 사후의 세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다음 생은 어디로 가는 것인 지를 항상 머릿속에 넣어두면서 평생 동안 숙제로 남겨둔 것입니다.
이제,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 그 의문의 실마리가 풀려질 것인가는? 저 역시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지만, 그동안 일흔이 넘는 생의 삶을 살아오면서, 저가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직접 겪어 보면서 터득한 소중한 경험을 되 살려서, 그 의문을 조금 식 풀어 볼 가 합니다. 저는 어릴 적 사물의 실체를 눈으로 보면서 오감으로 느끼면서 부 터, 이상하게도 나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 인가부터 저의 눈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의 현상을 저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입니다. 즉 그것은 눈을 뜨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물체를 보아야 하는데 저의 눈과 귀, 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물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세상의 물체가 저의 오감[五感]을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저가 어린 시절인 세 살 때인가 해서, 저가 그 당시 유행하는 홍역[마마]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홍역이나 장티부스 같은
법정 전염병에 대한 예방 백신이 없던 시절이고, 저가 태어나던 때는 해방이 되던 해이고, 사회적으로 궁핍한 시기였고, 일본 놈들이 일으킨 대 동아 전쟁 때문에 각종 전쟁 물자 전 비[戰費]때문에 집에 쌀 한 톨 없던 시절이고, 초 근 목 피[草根木皮]로 여러 식구가 간신히 목숨 줄을 이어 가던 어려운 시절이기에 홍역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던 시기이고, 홍역이나 전염병이 번지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시기였습니다.
전염병이 번지면, 그것은 하늘이 노해서 천벌을 내려준 역 병[疫病]이라고 이름을 부치고, 다행히 어린 자식들이 그 병에서 무사히 살아나면, 천 명[天命]으로 살았다고 하늘과 조상님들에 보살핌이라고 여겼던 시절입니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 우리 8 형제 중에, 둘 형제는 그 역 병으로 죽었고 다행히 우리 6 형제가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또한 역 병은 한번 발생이 되면 한 동네에는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와도 같이
한 마을에 보통 면역 성이 약한 어린아이들 중에, 반 이상은 목숨을 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와 같이 홍역을 앓던, 어린아이들이 35 호의 가구 중에 10 여명이 역 병을 앓았는데 반 이상이 홍역으로 생명을 잃었고, 그중에 완치된 아이들 중에도 홍역을 앓은 흉터가 얼굴이나 몸 주변에 홈이 파진, 곰 보 자국이 생겨서 평생을 부모 한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가 홍역을 앓을 당시에
10 여명이 같이 한 마을에서 동시에 홍역을 앓았는데, 그중에 다섯 사람은 어린 나이에 요 절[夭折]을 했고, 살아남은 다섯 사람 중에는 얼굴에 마마의 흉터 자국이 선명한 애들만 해도 두 사람이고, 세 사람만 제대로 본 모습을 갖춘 얼굴로 홍역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저도 네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은 기억이 있고, 나중에 부모님들께 들은 얘기로는 저가 워낙 심하게 홍역을 앓고 기진맥진하여 수 일간 깨어나지 못하고
숨도 쉬지 않고 맥이 갇힌 상태에서 저가 죽었다고 해서, 부모님께서는 그냥 포대기에 둘둘 말아서 마루 한 모퉁이 에다가 두고서 차마 땅에 같다 묻지는 못하고, 며칠 동안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의 집안 사정이 사실은 자손이 귀한 집이었고, 저의 조부님과 부친의 대에서는 2 대 독자로 내려온 고적[孤寂]한 집안이다가 보니, 자식들에 대한 애 착 심이 부모님께서는 강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은
2 대 독자의 외로운 집안에서 딸은 없고, 아들만 내리 8 형제를 두셨던 것이고, 나의 바로 위에 형님이 역시 두 살 전에 홍역으로 이 세상을 떠났고, 저의 동생 역시 첫 돌 전에 역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애 착 심이 워낙 강하신 분들이어서 그런지 이미 숨이 끊어진, 저의 육신을 그래도 며칠 간 산 에다가 묻지 않고 인정에 이끌려서 집안에 둔 것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저가 며칠 만에 산에 갖다 묻으려고
저의 시신을? 옮기려고 하는 차에, 저가 깨어나면서 물 달라고 하는 소리에 포대기를 열어보니, 저가 눈을 빤히 뜨고서 목이 말라 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기뻐하셨고, 저는 구사일생으로 다시 기사회생을 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부 터, 저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남들이 맞지 못하는 냄새도 맞으면서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물체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생각하기로도, 그 당시 역 병인 홍역을 심하게 앓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어 온 것이 저의 정신 세계에 그 어떤 이상한 변화를 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가기 전 부 터 이상하게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虛想]나도 모르는 이상한 말소리가 나의 귀에 들리고, 어떤 할아버지의 지게 위에 어떤 낯 모르는 사람이 덩 그렇게 지 게에 타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고, 또한 어떨 적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연세 많은 할아버지의 얼굴만 보고도, 어 ~ 저 할아버지 며칠 있으면 죽을 것인데, 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입으로 무심코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저를 두고서 하신 말씀이 너 가 홍역을 심하게 알아서 헛 것이 보이고, 너의 어머니가 몸이 약해서 젖도 재대로 먹지 못하고 동냥 젖으로 간신히 살아났고, 모든 것이 기[氣]가 약해서 헛 것이 보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함부로 남의 어른을 보고서 며칠 만에 죽느니?
하는 방정 맞은 소리는 하지 말아 라! 하는 엄한 꾸지람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 대도 나도 모르게, 나의 귀에는 이 세상의 말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와 음 율이 나의 귀를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서, 어떨 적에는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오 장 육 부가 환히 보이는 순간도 여러 번 체험을 하고 서는 저는 비록 어릴 적 이지만, 그것은 나의 모든 생활에 불편함도 많지만 두 세상을 한 거 번에 경험해야 하는 그 생활이 엄청 지겨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이상하게도 학교 공부가 그렇게도 싫더란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월 사 금이 밀리고 사친 회비도 제때에 납부하지 못하니까, 선생님들께 만날 수업 중에도 교무실로 불려 들어 가는 것이 싫어서 학교를 가기 싫고 공부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입니다.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공부를 복습과 예습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소를 몰고 들판에 나가서 소를 배불리 먹여야 하고
나의 키만큼 되는 꼴 망태를 둘러메고서, 소 먹이 풀을 한 망태기 가득해야만 큰 형님들께 꾸중을 듣지 않기 때문에, 제일 꼴 지인 막내로서 해야 할 저의 일상이고, 공부는 하고 싶어도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사실 학교 공부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2 학년 당시에 학교 가기가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로, 다섯 달을 결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2 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여러 번 저의 집을 방문하셔서, 저의 부모님과 저를 설득해서 저가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한 것이고, 저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학교 성적은 전체 학급에서 항상 꼴 지를 오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성적표를 보면, 학교 다닐 적에, 저가 학교 성적표 중에 수[秀]를 맞은 것은 육 학년 동안 단 한 개도 없고, 도덕과 미술만 우[憂]를 몇 번인가 맞았고, 그 외에는 거의 미[美]나 양[養] 가[可] 심지어는 불가[不可]를 맞은 적이
저의 육 학년 정규 교육 중에 유일한 성적입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조차 어렵게 학업을 마치었고, 그나마 늦게 육 학년 졸업 당시에 부모님 모르게 큰 형님 모르게 시험 준비를 해서, 중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는데 다행스럽게도 합격은 되었지만, 부모님과 큰 형님께 꾸중만 심하게 듣고서 상급 학교 진학의 기회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가 깨달은 것이 바로 학교의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절감을 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말자 생활 전선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 당시 안동 읍 구 시장에 거주하는 함 석 기 공사[하도급 건설업체]에 함 석 공으로 취직을 한 것이고, 그때만 해도 월급은 단 한 푼도 없었고 일 년에 추석 설날 명절 때면 기 것 떡 값 정도인 몇 푼의 돈이 저에게 지급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낯에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밤이 깊도록 열심히 책을 보고 즉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저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그만 돈이 생기면, 저는 그것을 푼 푼이 모아서 헌 책방에 가서 닥치는 대로 남들이 보고 버린 헌 책들을 사서 보면서, 저의 머릿속에 색 여 둔 것이 지금은 그것이 저의 지식의 보고[寶庫]가 된 것이고, 그때 외워두고 배워둔 책의 내용들이 저가 오늘날 역학 전서를 쓰면서, 이곳이나 여러 신문에 칼럼이나 글을 쓰는 것에 모든 실체적 자료가 되고, 저가 일 흔이 넘는 세월 동안 어려운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이 저가 여기에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