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 경찰은 맞고 사는가 (7) 투쟁- 투(鬪)
- 전통 종법질서와 국가제도의 파괴
(필자는 서두에 종북좌파들과 최일선에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분들이 경찰임을 먼저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모든 진보좌파들의 시위와 집회에는 폭력이 수반되고 있었고, 이 폭력을 주도하는 실체는 Hoodlums and Social Scum, 즉 사회 낙오자들이나 불량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철저히 시위집회에만 동원되는 전문시위꾼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찰은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정당한 시위집회 폭력과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산사회혁명 적화통일운동에 동원된 김정일 세력들과 맞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공산당과 대한민국 민노당 이하 좌익들은 ‘계급의 적들에 대한 폭력은 정당하다’고 가르친다.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폭력을 정당화 하는 말을 퍼뜨렸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리는 것은 영광이며,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오해이다.”
그 결과 문화혁명 당시 중국은 폭력으로 물들였고, 살인까지도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그러므로 기만하고, 선동하며, 불량배를 동원하고, 이간질하는 것은 모두 약탈하고 투쟁하기 위한 것이다. 공산당의 철학은 투쟁철학이었고, 현재 종북좌파들의 전략 역시 폭력투쟁이었다. 부산으로 행하던 희망버스에서 보았던 폭력을 우리는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필자(筆者)는 전교조에서 조합원들에게 내려 보낸 공문에서 ‘교장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본 적이 있다.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은 싸우고 투쟁하라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투쟁하라는 것? 그것은 싸우라는 뜻이며,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言聲)을 높이고, 젊은 여교사더러 늙은 교장에게 삿대질 하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아마, 일반 국민들도 길거리에서나 TV 화면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노조 파업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저런 짓을 하는가 하고 물으면 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들은 순순히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얻으려면 싸워서 빼앗아야 한다.”
무리한, 아니 회사가 망할 정도의 엄청난 요구를 하면서 순순히 주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빼앗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와중에 망한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근근히 경영을 유지하던 목포 콜롬반 병원도 이러한 노조투쟁에 걸려 문을 닫고 말았다. 그 결과 투쟁을 시도하던 직원들은 모조리 직장을 잃고 말았다. 결국 누구를 위한 투쟁이었는가를 생각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이렇듯 공산혁명은 때리고 부수고 빼앗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한다. 대한민국도 민노당의 국회 폭력을 정점으로, 시민사회에서는 민노총의 폭력 투쟁에 휘말리고 있다.
마오쩌둥의 “후난농민운동시찰보고” (1927년 3월)를 보면,
“농민의 주요 공격 목표는 토호와 악덕 지주, 불법 지주 및 각종 종법 사상과 제도, 성안의 탐관오리와 농촌의 악랄한 습관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농민이 빼앗고 짓밟은 것들의 핏물 위에 그들은 공산국가를 세운 것이다.
이와 같이 공산당은 정권을 빼앗기 위해 투쟁해야 했고, 몇 년 후 문화 대혁명 중에 똑같은 투쟁유전자가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데 또 사용되었다. 그리고 최근 사회주의를 비판한 중국의 저명한 교수 하나가 제자들의 고발로 숙청당한 일이 있다. 60년 전, 중국공산혁명기에 나타난 사악한 유전인자가 교육되어서 세대(世代)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전교조 및 좌익세력들은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가르친다. 박원순 같은 세력은 대한민국의 법을 아예 악법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법을 지키지 말라고 선동한다.
이런 폭력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당한 자들, 즉 기업과 부유한 자들은 이러한 폭력에 질려 자발적으로 헌금 혹은 기부를 하고 있다. 강탈인 것이다. 그러나 오직 우리의 경찰만이 아직도 나라를 좌파들의 무법폭력에서 최일선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 응원과 지지를 보내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