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읽혀졌고 그전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8~1919년
우보(牛步) 민태원(閔泰遠)이 매일신보에 《애사(哀史)》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처음 연재하였다.
소설가는 소설을 쓸 때 본인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1802 ~ 1885)는 낙인효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이 한번 실수를 하면 낙인이 찍혀 평생 갱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장발장은 처음에 굶주리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가 잡혀 5년을 언도 받는다.
그로부터 탈옥을 4회 감행하여 총 19년이 된다.
빵 하나를 훔친 것이 5년이나 되냐의 문제는 있지만 탈옥을 하지 않고 5년을 채웠으면
5년으로 끝났겠지만 탈옥을 4번이나 하는 바람에 총 19년이 된다.
그러나 경감 자베르만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아다닌다.
자베르 형사는 이런 장발장을 추적하여 다시 잡아 감옥에 넣으려고 한다.
경찰로서의 직업 정신은 철저했다.
하지만 위고르는 낙인 효과를 신봉하여 사람의 심성은 절대 바뀔 수 없다고 하는 신념을
가진 자베르 경감을 경멸 했기에 자베르를 자살 하는 것으로 했다.
장발장은 탈옥 후 다시 성당의 은 식기를 훔친다.
자베르는 이런 장발장을 잡아서 성당 주교한테 데려 가지만 주교는 그건 그냥 준 것이라며
은촛대 까지 얹어 준다.
이것이 위고르가 강조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으로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성당 미리엘 주교 같은
자비로 인간의 삶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혁명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위고르 자신이 나폴레옹 3세를 도와 대통령을
만든 뒤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도 나폴레옹 3세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도와 정권을
차지하고 그것에 불만을 품어 혁명을 일으킨 위고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실패한 위고르는 가족과 연인을 대동하고 탈출을 한다.
영국령 저지섬을 거쳐 조세 피난처인 건지섬에서 연인과 메이드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장발장이라는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인 레미제라블을 집필한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명언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장발장 이전의 법 집행은 구금형이 아닌 즉결 심판이었다.
물건을 훔친 자는 태형을 가하든지 손을 자르든지 하고 살인자는 목을 자르든지 화형을
시키든지 했다.
그러든 것이 이즈음부터 신체를 손상하지 않는 자유형(구금형)으로 바뀐다.
이 자유형은 재판을 해서 감옥에 넣었는데 레미제라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노역을 시켰다.
우리가 익히 아는 춘향전에서도 춘향이가 칼을 쓰고 있는 것은 집형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구치소였지 감옥이 아니었다.
현재는 오원춘 같은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국가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 주고 있다.
이전에는 국가의 돈으로 범죄인을 먹여 살리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보면 처형을 하거나 귀양이나 유배를 보냈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레미제라블을 통하여 빅토르 위고의 인도주의적 세계관을 엿 볼 수 있지만
영화 빠삐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장발장이 4번이나 탈옥한 것도 결국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었든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