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만리장성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만리장성은 진시황제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원래 기원전 7세기부터 전국시대의 열강제후들이 상호방어를 위해 축조하기 시작했고, 특히 지금의 산동성 북부와 하북 일대에서 포효하던 제(齊)나라, 하북성과 내몽고 일대에 웅거한 조(趙)나라, 요녕성과 요동반도 까지 영향력을 미친 연(燕)나라가 처음 축조를 시작하여,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하며 흉노족을 방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축조를 해 나갔고, 明대에 이르기까지 각 왕조들은 꾸준히 축성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달에서 내려다보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축조물,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리장성은 동서의 길이가 6,350km에 이른단다. 따라서 우리 이수로 치면 1만5천리가 넘으니, 안하무인 하는 되국 아이들이 어찌 萬里에 만족하랴! 하여, 저들은 그냥 장청(長城)이라고 한다. 뭐 지들이 만족하거나 말거나 내 알바 아니고....
뜻하지 않게 오성기(五星旗)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다.
미명(未明)의 로비로 내려가니 어떤 사나이가 객실 번호를 물으며 만리장성 가는 객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따라오라며 앞서가는데 대형버스인줄 알았더니 웬 자가용을 타란다. 이 차량으로 만리장성을 가는 거냐고 묻자 집결장소까지만 가면 우리로 치면 관광버스가 있단다. 20여분 달려 어떤 골목에 하차하라기에 내려보니 허름한 식당 앞이다. 사위는 아직 캄캄하고 내리면 바로 차량에 탑승할 줄 알고 얼마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고 점차 한기를 느끼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우리를 태워준 기사는 식당으로 들어와 자꾸 식사를 하란다. 그냥 버텨보려 했지만 추위 때문에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인 고유(?)의 복장을 한 인파가 웅성거리며 식사를 하기도 삼사오오 떠들기도 한다. 식욕이 날리 없건만 우리의 S사장은 찐만두를 시켜 잘도 먹는다. 잠시 후 버스가 왔는지 인파가 쓸려 나가기에 우리도 급히 서둘러 식대를 지불하고 승차를 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조금을 가는가싶더니 넓디넓은 광장이 보이며 어마어마한 문에 모택동의 사진이 걸려있다. 왈, 천안문 광장인 것이다. 광장 옆 한곳에 정차하여 승객 모두를 내리란다. 영문을 모르겠다. 줄래줄래 버스에서 내린 인파에 휩쓸려 따라가니....오호라! 저것이 저 유명한 천안문광장 오성기 게양식 장면이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 게양식에 참석키 위해 도로변과 광장 가운데 운집(雲集) 도열해 있는 군중과 경쾌한 나팔 소리와 함께 서서히 하늘가운데로 치솟는 오성홍기의 위용 앞에 나와 친구는 압도당하여 적국(赤國)의 국기아래서,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시건방지고 오만(傲慢)함 보다는 애국적 엄숙함에 숙연한 기분으로 부지불식간 충성(?)을 하고 말았다.
만리장성은 뒤로하고 잠시.....
내가 적국(赤國)의 국기 아래서 잠시 숙연한 기분이든 것은, 중국인 그들의 애국심을 그 자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에 연유한다. 욱일승천하는 그들의 국력신장과 유례가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제성장 따위는 난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紙上이나 보도에 오르내리는 그러한 것들의 원동력과 실체를 직접 천안문광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 바로 이게 이들의 힘이요 밑천이리라!’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10년이 훨씬 넘는 중국생활의 타성에 젖어 내 개인적으론 중국이 한국 같고 한국이 중국 같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었지만, 중국생활 초창기 얼마간은 티브이에 나오는 태극기만 보아도 눈물이 핑그르르, 어디선가 가늘게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도 가슴이 떨리도록 저며 오고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느 놈의 정권에서인가 여름날 삼베. 모시잠방이 사이로 방귀 빠져나가듯 슬그머니 국기 게양과 강하식이 없어지고, 심지어 어떤 놈은 국경일이나 기념식장의 국민의례 시의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도 비민주적이라는 망발의 주둥이를 놀렸으니 亡國이 달리 있겠는가? 진정한 애국심의 발호는 국기와 국가(國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천안문광장에서 새삼 느꼈다. 국기 게양과 강하식을 말살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가 비민주적이라고 주둥이 놀리는 놈들이 이 땅에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에이그~ 속 터져 본들... 기왕 나서기로 한 만리장성 등정이나 계속하자.
팔달령(八達嶺)으로 향하다.
중국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부도장성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 즉, 장성에 가지 못하면 사나이가 아니다.’라는, 만리장성은 중국의 동에서 서로 굽이굽이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중국북방 대지에서 기복(起伏)하여 인류 건축사의 기적으로 세계인의 감탄을 받고 있으며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秦, 趙, 燕나라가 쌓은 성벽을 연결하고 연장하여 최초의 만리장성이 형성 되었지만, 그 후 漢나라와 明나라 때에 구축한 장성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은 거의가 明나라 때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팔달령은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70여km에 위치해있다. 추측컨대 내가 탓던 여객기가 북경국제공항에 안착키 위해 상공에서 기수를 낮출 때 얼핏 보았던 산맥이 틀림없으리라. 만리장성 등정하는 사람 가운데 십중팔구가 팔달령을 통한 만리장성을 보게 된단다. 북경에서 가깝고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으며 관광지로 잘 개발된 때문이란다. 팔달령이란 이름은 四通八達의 교통요지 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팔달령에는 3개소의 관문이 있는데 두 개의 관문 설명은 잊어먹었고, 그날 관광객이 오르는 문은 水關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올랐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황당한 얘기는 3부로 넘겨야겠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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