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도 교육을 포기한 놈이 있었다
3년 전 썼던 칼럼 하나를 꺼내본다. 그리고 다시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심각한 교육적 혼돈 하나를 생각해 본다. 흔히 교직을 말할 때, 우리는 교편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교편(敎鞭)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편에 대한 개념조차도 혼돈 속에 빠져있다. 훈육과 체벌에 대한 혼돈이 그것이다.
교편(敎鞭)이란, 교육을 위한 스승으로서의 위엄과 선도의 상징이다. 거기엔 열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교편을 놓고 무관심하다면 어찌되는 것일까. 그것은 교육이 방임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탁을 회초리로 치면서 시끄러운 교실을 잠재우는 그 소리가 사라지면 교실은 통제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그래서 교육적 방임 상태란, 교단에 스승이 사라지고, 스승과 제자의 가름이 없는 개판이 되는 현실을 말한다. 스승이 무너지고, 인성과 창의를 가르치는 선도자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선도자이다. 그러나지금 우리 선생님들은 가르침에 있어 학생을 향한 정열이 사라지고, 곧 훈육을 상징하는 채찍(鞭)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날 서당 풍경 하나를 소개해 본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겨울 농한기를 맞아 서당이 문을 연다. 그러면 서당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아이들 손에 훈장님께 보내는 선물을 들려 보내는데, 그것은 곧 술병과 회초리였다. 김홍도가 남긴 서당 풍경을 담은 그름 속에도 종아리를 맞고 울고 있는 어린 학동이 있다. 옆에 아이들은 웃고 있고, 훈장님은 우는 아이를 짠하고 바라보고 있는 풍경. 필자(筆者)는 그 훈장님의 짠한 표정 속에 제자를 사랑하는 속 깊은 의미기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술병은 가르치는 훈장님의 노고를 위해, 회초리는 잘못된 아이들을 바로잡는데 써달라는 의미였으니, 우리 선인(先人)들께선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잘 알고 계셨음이다. 술병과 회초리, 얼마나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은 선물인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술병은커녕 회초리마저 폭력으로 치부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마 한번이라도 남을 가르쳐본 사람들은 때론 학생들을 통솔하거나 지도하기 위해 기합이나 회초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히초리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훈육하는 성스런 도구로 인정되는 게 아니라, 가르침이 폭력으로 인정되는 우울한 시대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별나고 별난 수많은 아이들, 그것도 사춘기적 반항의 시기를 맞는 아이들. 저마다 가정교육이 틀리고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하나로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일 것인가? 아마도 학부모들은 이 사정을 모를 것이라 짐작한다.
수업시간에 자는 놈, 장난치는 놈. 숙제 안하는 놈부터 오만잡가지 일들이 발생하는 교단에서 학부모와 법은 선생님들에게 회초리라는 교편을 앗아간 것이다. 꾸짖거나 회초리라도 칠라치면, 즉시 돌아오는 것은 욕이요 반항이다. 선생님도 폭력혐의로 처벌하는 현 사회에서 누가 소신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할 것인가?
공자님 이야기다. 공자님이 6국을 순행할 때, 한번은 길가에서 똥을 싸는 놈을 보았다. 그걸 본 공자님은 제자를 시켜 ‘똥 싸는 놈’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리곤 인간의 윤리를 들어 엄청나게 꾸짖는 것이었다.
“사람이 개나 소, 까마귀 같은 금수(禽獸)가 아닌 이상, 어찌 가리고 못 가릴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가? 길가에 똥을 싸다니, 너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그러자, 똥 싼 사내는 머리를 두 손으로 싸매고 도망쳤다 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가다보니, 이번에는 아예 길 가운데다 똥을 싸는 놈을 만났다.
그러자 공자님은 제자들더러 “지금 길 가운데 똥 싸는 놈을 피해서 가자”고 했다 한다. 제자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스승님, 어찌 길 가운데 똥을 싸는 자는 피해갑니까? 저놈은 길가에다 싼 자 보다 더 나쁜 놈 아닙니까?”
공자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 자는 아예 일말의 양심도 없는 자이다. 길가에 싼 자는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이라도 있으니 가르치면 되겠지만, 아예 길 가운데서 싸는 자는 그것조차도 없는 자이니,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학생 중에는 아예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사회는 교사에게 회초리를 앗아가고 있다. 성인(聖人)인 공자님도 가르침을 포기한 사람도 있는데, 하물며 평범한 우리 선생님들은 어찌 할 것인가?
“규율을 견디는 아이는 받아서 가르치고 참을성이 없는 아이는 제자로 받지 말아야 한다. 집안 살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식은 결혼을 시켜주고 바람기가 있는 여자는 아내로 삼지 말아야 한다. ”
주역의 산수몽(교육)편에 나오는 말이다.
참으로 귀담아 들을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살다간 위대한 스승님들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부디 선생님을 귀하게 여기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가르치는 수고는 이 세상 만 가지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가문과 내 집안이 세상에 빛을 내는 일은, 바로 내 자식들이 공부 잘하고, 얼마나 훌륭한 인품을 지닌 인간으로 성장해 주느냐에 달린 일이다.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 학교 선생님들이다. 집안의 흥망을 좌우하는 교육 문제에, 선생님의 회초리조차도 허용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더 가르쳐 달라는 이야기인가?
오늘날 진보좌파 교육감들의 교육파괴 현상을 보면서, 교단에서 선생님들이 맞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대통령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아무리 지방자치가 좋다 하더라도 교육만큼은 국가교육의 목표와 기준에서 일탈해서는 안 된다. 부디 대통령께선 공자의 일화를 귀담아 새겨들으셔서, 좌파교육으로부터 대한민국 교육을 지키셔야 할 것이다
정재학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