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절기면 해 짧으니 점심은 그르고 저녁이면 그마저도 시커먼 보리밥 남은 것과 집에서 기른 콩나물과 김치나 시래기 따위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죽을 끓였으니 그게 ‘갱시기(갱식羹食)’이라는 경상도 일부지방의 토종음식이다. 언젠가TV에서 그‘갱시기’를 재연하며 출연자들이 추억의 맛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추억의 맛? 맛 같은 소리다. 난 그때 하도 질려서 지금도 죽이라면 돌아앉는다. 그게 하다못해 전복이니 기타의 갖은 영양식 죽이라도....
특히‘춘궁기’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요즘 아이들이‘춘궁기’를 알 턱이 없지만, 그 땐 정말 왜 그리 배가 고팠던지? 유소년 시절 우리 집은 그나마 중농 축에 들었음에도 배가 고팠으니 다른 이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초등학교 6학년 때 516혁명이 일어났고 그 덕분이었는지 집안의 형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말 타면 말구종 부리고 싶다든가? 어쨌든 516혁명 이후 생활형편이 나아지고 비록 보리밥이지만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먹게 되는 호사를 누리자 이번엔 밥반찬이 문제였다. 매일 김치깍두기만 먹는 게 지겨웠던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 가지고 가는 도시락 반찬도 김치깍두기였으니 지겨울 만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밥투정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6년 때로 기억이 된다. 그날도 학교도시락이 시커먼 보리밥과 시어빠진 깍두기와 고추장에서 빼낸 무짠지였다. 짝꿍 놈은 하얀 이밥에 계란말이였다. 아마 지금 같으면 ‘동무! 하나 쯤 주시게!’하며 넉살 좋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순간 그 놈의 도시락이 부럽거나 먹고 싶은 것보다 내 도시락의 초라함이 한 없이 부끄러워 깍두기 쉰내가 풀풀 나는 도시락 뚜껑을 얼른 덮고 운동장으로 나와 버렸던 것이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알 수 없는 수치심 때문에 저녁도 그르며 심통을 부리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아침도 먹지 않고 학교를 갔던 것이다. 정확히 이틀을 굶고, 결국 속내를 모르는 엄마의 회유와 추궁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고백하는 순간 어린 나의 왼쪽 뺨에서 불이 나며 허기로 가득한 머릿속에는 별똥이 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일갈이“이놈이 배가 불러 환장을 했구만...처먹기 싫으면 그만 도!”하시며 차려온 밥상마저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순간이라도“엄마! 잘 못 했어요!”라며 가지고 나가시는 밥상을 막고 싶었어나 그 어린 마음에도 이상한 자존심(?)같은 것이 발동하여 그리하지 못했고, 엄마에게 반성의 사죄를 드린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결국 사흘 쫄쫄 굶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었고 반찬은커녕 맨밥(비록 꽁보리밥이지만)에 물이라도 말아 먹으며 허기를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반백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지났지만 이런 아픈 과거사(?)가 떠오르는 것은 남북관계에 있어 마지막 보루(무엇을 위한 보루인지는 잘 모르지만...)라는 ‘개성공단철수’과정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 우리 엄마의 교훈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날 단호했던‘엄마의 교훈’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불이 번쩍 튀고 별이 나는 아픔의 교훈이 없었더라면 내 버르장머리는 지금쯤 형편무인지경이었을 것이다.
좌익정부든 뭣이든 간에‘개성공단’이 조성 될 당시는 일부이지만 저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한 방편이요 수단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 결과가 좋아진다면 제2, 제3의‘개성공단’이 조성되며 남북관계에 일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피죽도 못 먹고‘춘궁기’를 맞아야 했던 놈들이‘개성공단’이라는 보리밥이 생기며 삼시세끼를 먹게 되자 반찬타령을 해? 배때기 부르다고 남이 먹는 이밥이랑 계란말이를 부러워 해? 말을 탔다고 벌써 구종부터 부리려 해?
반찬투정을 하고 이밥에 계란을 부러워하기 전, 제공해 주는 보리밥을 먹지도 않은 채 감추었다가 미사일을 만들고 핵을 만들어 배은망덕 하는 행태가 괘씸한 것이다. 솔직히 꽁보리밥 삼시세끼를 감지덕지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516혁명이후 투정부리지 않고 모두가 열심히 일하다보니 이밥도 생기고 고깃국도 먹게 된 것이다. 하나의‘개성공단’성과가 열 개의‘개성공단’을 만들 것이라는 진득한 기다림을 모르고 배때기 부르다고 반찬투정을 하는 놈들에게는 우리‘엄마의 교훈’같은 따끔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철수’는 반찬 없는 보리밥상이지만 그것마저도 네 놈에게는 과분하다며 상을 물리셨던 내 엄마의 심정 같은 것이다. 그날 저녁 알 수 없는 자존심 때문에 상다리를 붙들고 매달리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아침을 맞으며 반성의 사죄를 드렸던 내 마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공은 놈들에게로 넘겨졌다. 단호한‘엄마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놈들에게 있는 것이다. 버르장머리 고치고 말고는 놈들 스스로에 달린 것이다.
덧붙임,
본썰을 올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작 올리고픈 말을 못 올렸다. 다음날 엄마에게 속죄를 한 결과 항상 할아버지에게만 올리셨던 이밥의 반이 내 밥그릇에 담겨져 있었고 옆집에서 얻어온 계란 하나가 후라이로 올라 왔다. 물론 할아버지 안 보실 때.....^.^;;; 아무튼 이젠 C부럴름들이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 이밥을 처먹든 계란 후라이를 얻어 처먹든 지들 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