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는 오일팔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강 육 약 식[强肉弱食]의 업보에 의하여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힘이 없는 자들은 힘이 있는 자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인류사가 지금까지 수만 년 동안 이어오던 운명이고 철칙인 것이다. 즉 힘이 없는 나라는 힘이 있는 나라에 종으로 살거나 저들의 집단에 노예로 살아 왔던 엄연한 역사를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보아왔다. 지난 왕조들의 역사를 보면 나라가 혼란하고 백성들이
강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 결국 그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다. 그리고 그중에서 힘이 있는 자들 중에 우수한 자들이 있으면 또다시 그 무리들을 이끌고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인류사 중에는 숱한 영욕[榮辱]의 역사가 펼쳐지고 피어났다가는 다시 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 민주대한민국이란 나라에는 참으로 이상한 역사가 있으니 바로 오일팔 광주사태인지 ? 내란인지를 가지고서 광주민주항쟁이라고 이름 하여
수많은 정치건달들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기들의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글 쓰는 역사학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서 조용히 침묵하면서 어째서, 광주사태가 내란이고 광주민주항쟁인지를 곱씹어 바야 한다. 안동 촌노가 알기로는 광주사태 당시에 수많은 언론과 방송을 통해서 그리고 현장의 실상을 보고서 느낀 것은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항쟁도 아니고 광주폭동이고 내란인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단 4, 19 민주화운동 하나밖에 없다.
그 외는 모두 내란이고 폭동이다. 일본 강점기에 일어난 광주민주 운동이나 삼일 운동사는 외적에 대한 반감으로 생긴 자발적인 독립운동사이고 4, 19 민주화 운동은 어린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3, 15 부정선거 잘못에 대한 시위였고 민주혁명인 것이다. 맨손으로 시위를 했고 민간인들이 총하나 칼 하나 잡고서 이승만 정권을 타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 당시 3, 15 총선 부정선거로 말미암아 어린 학생들부터 잘못된 선거에 불복종을 한 것이고, 결국 어린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최 류 탄과 총탄에 쓰러지자
전 국민들이 대동단결하여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원흉인 이기붕을 타도한 것이고, 이기붕 가족들은 자기들 스스로 자결까지 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하는 것 조차 몰랐다가 나중에 진실을 알고서 자기 스스로 경무대에서 내려온 것이고, 대통령직을 자기 스스로 사퇴하고, 하와이로 출국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오 일 육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이승만 박사를 하와이에서 모셔 와서 성대히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그것도 국부의 예로 말이다. 그런데 광주사태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와 혁명동지이고,
가장 친한 권력 서열 2 위인 김재규에게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를 당한 것이고, 그 시해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이 연류 되어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에게 수사를 받던 도중에 군부 간에 충돌이 생겼고, 결국 전두환을 따르는 신군부가 군부를 장악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되자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고, 모든 권력은 최규하와 이 희성 참모총장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야당인 김 영삼이와 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자기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최규하 정권과 군부타도를 외치면서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과 김대중의 고향인 목포에서 대대적으로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최규하 정권과 전두환 군부는 물러나라고,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고, 모든 시위가 전남 도청이 있는 광주로 옮겨간 것이고 데모 주동자로 김대중은 감옥에 들어갔고 김영삼은 가택 연금이 된 것이다. 그러자 광주시위는 폭력적으로 발생이 되고 경찰관서가 불타고 무기고가 민간인들에게 43 개가 네 시간 만에 모두 강탈당하고
경찰은 시위진압에 실패를 하자 그 당시 광주 위수사령부의 정 웅 사단장이 시위대를 진압하려 했으나 이미 중무장을 한 민간폭동자들을 진압하지 못하고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자, 이 희성 참모총장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서 공수특전사를 광주에 급파를 한 것이다. 그리고 광주 폭동은 한 달간 계속되었고 수십 톤의 화약과 수류탄이 광주도청 지하에 은닉되어서 언제 터질지 몰랐고, 만약 그것이 폭발하면 광주 시가지 전체가 날아가는 처참한 광경을 최규하 정권은 알고서 한편으로는 폭도들과
선무공작을 펴면서 그 폭발물을 폭발전문가가 들어가서 목숨 걸고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공수 특전사가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있는 폭도 잔당들을 진압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본다. 분명히 광주사태는 폭동이고 내란이다. 그것은 민간인들이 군경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중무장을 했고, 일급 방산 업체를 침탈하여 장갑차까지 몰고 군용트럭 수십 대를 타고 정부군과 싸웠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면 이것은 민주항쟁이 아니라 폭동이고 내란인 것이다. 김대중도 분명히 그 당시 사과를 하고 전두환에게 선처를 빌었고
자기의 잘못에 대한 선처를 요구했고 전두환 정부에게 사면과 복권이 되었고,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면서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 유관순 열사처럼 김 대중이가 최규하 정권과 전두환에게 불복했고 5, 18 혁명이 성공했다면 나는 분명히 광주폭동을 광주민주항쟁으로 부를 것이다. 그러나 광주사태는 김 영삼이가 정권을 잡으면서 광주사태를 정당화 하여주고 광주민주항쟁으로 소급입법해준 것이다. 김영삼은 전교조와 민노총을 합법화 해준 적색분자이다. 광주폭동이 민주항쟁이 맜다면
광주 오일팔단체들은 지 만원 박사와 전 국민들이 보는 언론에서 반드시 공개 토론하라 ! 역사는 오늘이 지나면 그것은 이미 지난 역사이다. 그리고 광주 오일팔 유공자들의 신분부터 정확하게 밝혀라 ! 그렇게 한다면 나는 오일팔을 광주 민주항쟁이 아닌,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격상할 것이다. 윤 석 열 대통령은 광주 오일팔과 제주 4, 3 사건을 진실 된 역사관으로 바로 돌려 달라 ! 오일팔의 역사를 바로 돌리지 못하면 동서간의 화합은 없다. 오일팔 역사를 바로잡는 길만이 조국 통일이고 동서화합이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