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TV 토론으로 시끌시끌하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 토론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서너 권이 보인다. 그중 눈길을 끄는 책이 후베르트 슐라이허르트의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 그리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이다.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꼴통’이라 표현한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에서의 꼴통은 기독교 근본주의자, 광신도를 일컫는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광신도들과 얘기를 해보면 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그래서 ‘꼴통’이라 번역한 것에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원제에 충실하려면 <근본주의자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이라 번역했어야 옳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은 마녀 사냥, 종교 재판 등 예민한 종교 문제가 얽혀 있어서 피하고 싶다. 때가 때인지라 대선을 앞둔 토론에서는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와 관련한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을 다루어야 어울릴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악연이 깊다. 헤겔의 관념론 철학이 판을 치던 19세기 초,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철학을 내세우면서 헤겔에 맞섰다. 베를린대학에서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맞짱을 뜨기 위해 의도적으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했다. 그러나 헤겔의 강의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던 반면에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파리만 날릴 뿐이었다. 패배한 쇼펜하우어는 강의를 때려치우고 학교를 떠난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현실성 없는 책상머리 철학자, 입에 발린 수사학으로 인류를 현혹하는 소피스트라고 맹비난했다. <토론의 법칙>은 그따위 저질 협잡꾼 헤겔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교묘한 수사학에 맞서기 위해 쇼펜하우어가 절치부심한 끝에 쓴 책이다.
옮긴이 최성욱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 지침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토론에서 이기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청중들에게는 자신이 정당하게끔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토론술은 정신이라는 칼을 들고 하는 검술’이라 하면서 토론에서 이기기 위한 38가지 기술을 제시한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선다
질 것 같으면 진지한 태도로 갑자기 딴소리를 한다
반론할 게 없으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한다
인신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
쇼펜하우어는 덧붙여 말한다.
‘토론술에서 진리를 찾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검객이 결투를 초래한 언쟁에서 누가 옳은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칼로 상대방을 찌르고, 상대방의 칼을 방어하는 것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이것은 토론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을 앞둔 TV 토론에서 상대는 헤겔과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다. 거기에 더하여 천하의 뺀질이, 막 되먹은 인간, 뻔뻔스러운 인간, 잡아떼기의 달인, 닳을 대로 닳아빠진 인간, 약삭빠르고 얍삽한 인간이다. 윤석열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