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각하의 영전에 이글을 올립니다.
먼저 안동 촌노 김 성복은 삼가 故 전두환 前 대통령 각하의 서거에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면서 영부인 이순자 여사님과 유족 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故 전두환 각하와 안동 촌노 김 성복과는 대통령이란 최고 통수권자와 이름 없는 무명의 시골 촌놈과 깊은 인연이 있는 분이십니다. 저가 몇 번인가 이곳 논장에 전두환 각하에 대한 글을 몇 번인가 간단하게 올린적은 있었지만, 세세히는 올리지 못했습니다. 안동 촌노 김 성복이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도록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 만나고
교우하고 지내왔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생각만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혹자들은 전두환 각하를 독재자 광주 5,18 의 살인자 군 반란의 수괴라고 들 헛소릴 하지만, 실은 전두환 각하는 힘 있는 권력과 몹쓸 깡패들에게는 가혹했을지 모르지만, 그분의 본심은 그야말로 다정다감했고 의리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한 때는 좌파들에게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그분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부하들에게는 엄정하면서도 인정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전직 대통령들은 정권이 바뀔 적마다 부하들과 지인들이 배신을 하면서 자기들 혼자만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전두환 각하의 부하들 거의 대부분은 전두환 각하를 배신하지 않았고, 특히 전라도의 출신인 장세동 같은 분은 일구월심 전두환 대통령의 죄를 덮어 주고 오히려 자기가 대신 짊어진 일화는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두환은 부하들 하나는 잘 두었다고 말입니다. 부하들의 집에 식량이 떨어지면 자기 집에 식량을 보내줄 정도로 부하들을 극진히 챙겨 주었고,
총탄이 비 오듯 하는 월남전선에서도 자기의 몸 보다가 부하들의 안위부터 챙긴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미국에 가서 특공 전술 훈련을 배워서 공수 특전사를 우리 군에 처음 창설을 한분이 바로 전두환 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가장 친한 전우고, 혁명동지인 김재규에게 1979 년 10 월 26 일에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를 당하면서 그것도 한국의 좌파들과 미국의 카터일당들이 김재규를 조종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 한 것이고, 그로인해 그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특명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에 대하여 책임 수사를 지시했고, 정승화 참모총장이 사건에 연류 된 것이고 정승화가 수사에 불응하자, 결국 12,12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나라가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김재규를 검거 했고, 정승화 참모총장까지 경질된 것이고 김영삼과 김 대중이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자기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사실 민란을 일으킨 것이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경남 김해와 전남 목포에서 발생한 민란이
결국 광주로 집결하여 5,18 사태가 발생한 것이고, 경찰관서가 반란군에 의해 점령이 되면서 그 당시 광주 위수사령관이고 0 0 사단장인 정 웅이가 반란군을 진압하였으나 이미 반란군은 경찰관서와 예비군 무기고까지 털어서 현역처럼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정 웅 사단장 역시 반란군을 진압 하지 못하자, 그 당시 계엄 사령관인 이 희성 사령관에게 구조지원 요청을 했고, 이 희성 사령관의 명령으로 공수특전사 정예병이 광주로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먼저 사격을 했던 간에 이미 민간인이
중무장을 했고, 군경과 민간인들 다수가 총상을 입었다면 당연히 정부군은 이에 대항하여 총을 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광주사태는 겉 잡 을 수 없이 정부군과 무장 폭도들과 교전상태로 돌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광주사태는 누가 무어라 해도 민간인이 군경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군용차와 군용탱크 장갑차까지 탈취해서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렸다면, 이것은 민주화투쟁이 아니라 전쟁이고 내란인 것입니다. 그것을 김 영삼이가 정권을 잡고서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항쟁으로
이름을 명명했고, 전두환과 노태우 장세동과 그 당시 신군부를 작살낸 것입니다. 정치란 혁명이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고, 성공하면 바로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에는 광주 사태 였다가 김 영삼 이가 집권하면서 광주사태를 광주 민주항쟁으로 이름 지으면서 그 당시 희생된 사람들과 유가족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인 것입니다. 만약에 고려 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못하고 역적으로 잡혀서 죽었다면 전주이씨는
모두 역적으로 멸문지화를 당했을 것이고, 이씨 조선의 오백년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움직이는 생물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혹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셨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 야 정치인 모두가 전두환 대통령 같은 분이 계셨기에, 오늘날 자유 민주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우리 같은 힘없는 서민들은 참으로 활개 펴고 잘 살았습니다. 여 야 후보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빈소에 가니, 못가니 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죽은 자에게는 그 어떤 죄도 묻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사입니다. 전두환 대통령과 안동 촌노에 얽힌 얘기는 곧이어 개제 할 가 합니다. 그분의 올곧고 정직한 성품에 대하여 사실적인 체험담을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전두환 각하의 영전에 부복 재배 올립니다. 유가족 분들께도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 부디 걱정 근심 없는 극락정토에서 영면[永眠]하소서 !
-- 안동 촌노 -- 김 성 복 哀哭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