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에 즈음하여 전두환과 5.18에 대해
전두환과 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떼어 놓고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2.12는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 김재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사안이었다. 궁정동 안가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김재규의 요청에 따라 대기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이 김재규인 것을 알아차린 즉시 그를 체포하였다.
그러나 정승화는 김재규가 법인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전두환에게 지시하여 범인을 체포하도록 명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범인 김재규의 요구에 따라 안가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조사는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다. 그렇지만 정승화는 자신의 지위에 기대어 조사를 받지 않으려 했다. 이에 전두환 보안 사령관은 특별 조치를 강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여러분이 전두환 보안 사령관과 같은 직책을 맡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본분이다. 설혹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러나 1979.10.26 밤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엄청난 대통령 시해 사건에서 공직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살펴보면 너무나 기회주의적이며 자신의 안위가 공직자로서의 대처나 국가의 안위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이 읽힌다. 전두환은 상관인 정승화를 수사하기 위해 체포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치르지 않으면 아니 될 만큼 중대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대로 따랐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통령이 살해되고 권력 공백기를 맞아 권력의 향방에만 촉각을 세우고 새로운 권력을 좇아가려고 눈치를 살피는 자들과 전두환이 같은 마음이었다면 목숨을 담보한
정승화 총장 체포를 흉내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전두환이 비겁한 약골이었다면 김재규를 체포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은 독재 권력을 무너뜨린 혁명으로 둔갑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굳이 혁명과 쿠데타를 갈라 논한다면 피지배자로부터의 봉기로 지배층 권력을 무너뜨려 차지하는 것을 혁명, 권력 핵심부에서 무력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권력으로 단순 이동하는 것을 쿠데타라고 한다면, 김재규의 뜻대로 10.26 시해 사건이 마무리되었을 경우 쿠데타가 옳겠지만 아마도 이 세력은 후일을 위해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니 내가 그들을 대신 혁명을 했노라고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혁명이든 쿠데타이든 그것으로 인한 결과가 국리민복에 더 다가갈 수 있다면 무엇이 되었든 피지배층에서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본다면 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김일성의 오판을 부르지 않고 전광석화로 일단락 짓고 수습한 전두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과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 1980년 광주 5, 18사태다.
이 사건은 간단히 말하면 10.26 사건으로 권력을 차지하려던 세력이 뜻밖에 새로운 신흥권력이 나타나 자신들이 노리던 권력을 차지하자 이에 민주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적과 야합하여 일으킨 실패한 국가 반란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5.18은 전두환이 실권이 있을 때 벌어진 사건이며 잘 수습된 사건이다. 당시의 대통령은 최규하였지만 소위 민주화 세력이란 자들은 지금도 전두환을 괴롭히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으로 민주화 바람을 타고 권력이 순조롭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박계동의 노태우 정치자금 폭로로 곤경에 처한 김영삼이 김대중에게 정치적 추파를 던져 이전의 5·18 사태를 특별법을 만들어 5.18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킨 사건이다.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시민 또는 북한군이 총이나 장갑차로 무장하고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한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 사태를 평정하기 위해 광주에 진입하는 20사단 지휘부를 공격하여 괴멸시킨 정체불명의 자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은 고도의 정보력을 갖춘 북한군 이거나 간첩이지 민주화운동 세력이 아니다.
● 이들 무장세력은 방송국과 국가 시설물에 방화하였다.
● 광주 교도소를 무려 다섯 번이나 무장공격으로 장악하여 죄수들을 이용 국가를 혼란에 빠뜨려 국가를 전복하려 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 경상도 군인에게 환각제를 먹이고 전라도 사람들 씨를 없애려고 왔다. 는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말로 선량한 시민을 선동하여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
● 광주 전남도청에 폭약을 장치하여 폭파하려 했다. (이것을 해체한 것은 계엄군이다.)
● 치안 부재 상태의 현장에서 한가로이 교통정리 하는 경찰의 모습을 연출하는 장면 등
무수히 많은 조작 연출 된 장면들은 민주화운동의 궤를 벗어난 전쟁상황의 모습이다.
사태의 규모에 비해 적은 희생으로 잘 수습된 5·18 사태가 오로지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김영삼이 특별법을 제조하여 정치적으로 재단한 사건이지만 역사는 전두환의 탁월한 능력을 다시 조명해 원위치로 환원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