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최민식 주연의 대호(大虎)를 보았다. 일제의 고위급 장군이 조선의 호랑이 사냥꾼을 고용하고 수백명의 군대를 동원 하여 호랑이를 사냥하는 영화였다. 남한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발견 된 것이 1930년대 초 일본인 사냥꾼에 의해 포획 된 것이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 그런 기록 탓인가 일제가 조선의 혼을 말살하기 위하여 호랑이를 멸종시켰다는 것이 흔히 회자 되었던 호랑이 멸종 이유이다.
금수강산 기맥을 끊어 장군이 나오지 못하게 쇠말뚝을 박았다는 신화는 아직도 지겹도록 듣는 소리다. 배산임수, 바람은 피하고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찾아 집을 짓는 것은 어느 민족이든 똑 같다. 평범한 생각에 불과한 배산임수가 어쩌다가 미개성리학을 만나 매장문화가 만들어 지고 묘만 잘 쓰면 천하의 등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미신을 맹신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풍수지리를 믿고 명당 찾아 다니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이왕가는 조선의 모든 명당의 기는 다 빨아 먹었을 터인데 나라를 팔아 처먹는 역적질을 하고, 자손은 하나 같이 등신 똥자루 같은 새끼들만 싸지르고 결국 왜놈 똥구멍이나 빨아주다 지금은 왕족이라는 놈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고종 자식새끼들이 돈 벌었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잘난 조상 두고 명당이라는 명당의 좋은 정기는 다 빨아 처먹었는데 어찌 그 꼬라지로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에는 아예 풍수지리 자체가 없고 중국도 풍수지리는 묘자리만 잘 쓰면 등신도 대통령이 된다는 미신은 없으며, 중요하게 취급 되지도 않았다. 북괴는 백두산을 신령한 산으로 만들고, 백두혈통 개뼉따구 자랑질 하는 풍수지리적 미개함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개정은 생겨 처먹은 것 봐서는 백두혈통 개뼉따구는 죽어도 되고 싶지 않다. 성리학과 빨갱이의 만남, 성리학과 공산주의의 만남은 주체사상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말뚝을 박으면 민족의 정기가 끊긴다는 것 자체도 웃기는 일이지만 도대체 민족의 정기라는 실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판타지 영화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돌에 박힌 명검을 뽑는 것도 아니고 이 문명한 사회에 소위 배웠다는 자들까지 나서서 쇠말뚝 신화를 울궈 먹고 있다. 쇠말뚝 때문에 민족의 정기가 끊겼으면 박정희 대통령은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시대를 어떻게 창조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깟 쇠말뚝이 민족의 정기를 끊을 수 있는 흉악한 것이라면 조선의 그 많은 산을 허물고 허리를 잘라 도로를 뚫고 철마가 달리고 있다. 쇠말뚝 보다는 만 배는 큰 고압송전선 철탑이 곳곳에 박혀 있고, 수천개의 터널이 산을 관통하고 있다. 경치 좋고 물 좋은 계곡마다 위락시설과 별장, 주택이 들어서 땅을 파고 수십 수천톤의 철근을 박고 콘크크리트로 고정까지 하였다.
문재앙 시다바리들이 태양광으로 돈 빼 처먹느라 산등성을 밀어 어마 어마한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가 끊고 있다. 그래서 크게 될 인물이 끊긴 것인지 요즘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따구인지도 모를 양아치 새끼들이 고위관직을 해 처먹고 조국 같은 놈은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것 같다. 태양광 발전소 자리는 햇볕 잘 드는 명당자리만 골라 건설하고 있는데 앞으로 닥칠 환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참으로 걱정 스럽다.
이토록 유독 일제 쇠말뚝에만 게거품 물고 염병 떠는 미개함의 극치를 보이며 추태를 부리야 하는 것인지 미개한 대한민국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조선시대 인구는 500만명에서 700만명 정도로 추산 되고 있다. 18세기 들어 세계는 인구가 폭등한다. 16세기 중국의 인구는 1억 5천만명 이었다. 18세기 들어 청나라의 인구는 4억3천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러한 인구증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가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 온 구황작물인 옥수수와 감자의 보급에 그 이유를 들고 있다. 옥수수와 감자는 기후와 풍토를 가리지 않고 악조건 속에서 가장 자라는 작물이며 여타 작물에 비하여 생산성이 월등하다. 옥수수는 생장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여 년간 3작까지 가능하다. 감자는 시베리아에서도 경작할 정도로 추위에 강하며 생산성도 쌀의 3배가 넘는다.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이 돌면서 기록적인 기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100만명이 굶어죽고 100만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아일랜드의 감자 흉작에서 보듯이 옥수수와 감자의 보급에 힘입어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구가 늘었다는 것은 꽤나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북괴에 감자와 옥수수가 없다면 아마도 인민은 다 굶어 죽을 것이다.
이란왕족 압둘 레자 팔라비가 1974년 북한에서 사냥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의 사진.
조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면서 한일합방이 되던 당시 인구는 1,200만명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농업생산성의 증가, 공중보건의 도입, 서양의학의 보급으로 또 다시 인구가 폭등하여 해방을 맞을 때는 두 배로 늘어 2,400만명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인구의 폭발은 거주지의 확대, 농지의 개간 등으로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산림의 훼손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체격을 자랑하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100km2~ 400km2의 활동범위가 필요하다. 조선시대 최소 4배 이상의 인구가 폭발하면서 한반도의 산림은 급격하게 황폐화 되고 면적이 줄어 들었다. 그로인한 서식지 파괴는 결정적으로 호랑이의 멸종을 불러왔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대부분 칠성각을 따로 두고 토테미즘 숭상도 같이 이루어진다. 많은 칠성각에는 가보면 호랑이 타고 있는 백발의 산신령을 만나게 된다. 과거 호랑이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런 숭배의 대상까지동원하여 일본에 근거 없는 욕을 하고 있다.
쇠말뚝 신화와 호랑이까지 동원 된 일본에 대한 열등감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문명개화의 태양이 떠오른지 한세기를 넘기고 있는데 아직까지 말도 되지 않는 미신을 앞세워 부끄러운 열등감을 드러내야 하겠는가 말이다.
언젠가 정감록을 들먹이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판의 개가 있었다. 아직까지 정감록과 같은 미개한 도참서를 믿는 현실이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그깟 종이조각에 써갈긴 뭔말인지도 모를 암호와 같은 그림문자를 수백년, 수천년 후의 미래예언이라며 열광하는 한국인의 미개함, 미신에 미친 부끄러운 한국인이 현실이다. 달나라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고 조선시대 출판한 모든 책을 손톱만한 메모리칩에 담을 수 있는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음에도 한치 앞을 예측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조선시대 미개학문 성리학이나 읽은 무식한 선비들이 미래를 예언한 미치광이 도참서가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인은 조선시대 미개함을 유전자처럼 품고 산다. 길을 나서면 “도를 아십니까?‘를 시작으로 죽은 귀신 불러 밥먹여야 한다고 하고, 골목 골목 무당들이 깃발세우고 죽은 귀신 불러들이겠다고 난리다. 사는 꼬라지는 동네 양아치만도 못한 잡것들이 죽은 조상 묘를 잘 쓰면 팔자 바뀐다고 온 산하를 뒤지고 다닌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예수 재림을 맞이 한다며 광란의 밤을 보낸 다미선교회의 미개함도 엊그제 일이다. 도대체 한국인이 미개해도 이토록 미개한 이유가 뭘까?
조선은 음양과를 두어 풍수지리, 점성학, 택일, 관상을 보는 사람까지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조선 건국자 유교탈레반 정도전은 풍수지리에 미친놈이었다. 주자가례를 통하여 무당이나 불러들이는 귀신을 집집마다 불러들여 푸닥거리를 하라고 가르친 것이 성리학이었다. 그저 처세학에 불과한 공자의 유학이 주제 넘게 우주질서와 자연과학을 가져다 붙이고, 토테미즘, 애니미즘 밥그릇인 종교의식까지 가져다 죽은 귀신 봉양을 최고의 미덕으로 숭상하게 만들더니 급기야 "조상님을 잘 모시면 복 받고, 잘 못 모시면 벌 받는다"라며 개소리 까지 하는 지경이 되었다. 정작 유학을 만든 공자는 나는 죽은 뒤 저 세상을 모른다며 죽어 갔는데 말이다. 작두 타는 무당이나 제사에 목매달던 개조선 씹선비나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딴에 글줄이나 읽었다고 무당을 천시하고 사문난적이라는 빨갱이 인민재판을 하던 씹선비가 너무나 가소로운 이유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미개함과 미신은 고질적 병폐로 한국인의 가치관을 지배했고, 풍수지리, 도참설, 미륵신앙, 천지개벽, 기복종교, 도참신앙과 같은 미신이 지배하는 미개 조선을 만들었다. 유학은 철저하게 미신을 배척했었다. 그러나 유학과 미신의 이종교배, 그렇게 태동 된 성리학은 백성은 뜯어 먹고 팔아 먹어야 할 씹선비의 개밥그릇을 채우는 도구에 불과했고 지배 데올로기 밖에 없는 쓰레기 학문, 괴물이 된 것이다.
유교탈레반 교주주의 하에서는 백성에게 지금과 같은 국가관은 존재할 수 없었고, 더욱이 문화를 향유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더더욱 존재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숱한 백성이 왜군에 합류하여 한양 진격에 동참 하고, 조선백성이 왜군의 복장을 하고 노략질에 나선 기록은 징비록에도 나온다. 이와 유사한 기록은 차고 넘친다. 무관이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한 쇄미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아랫 것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오히려 일본군을 환영해줘서 걱정이다."
왜군이 처들어 왔으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양반이 나가 칼을 맞고 죽던 총을 맞고 머리통이 터지던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랫것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투정이나 부리던 양반무관의 싸구려 가치관이 더 슬프다.
개조선 씹선비는 조선의 모든 국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세금한푼 내지 않는 거머리였으며, 그저 피를 빨리고 살을 뜯기는 수탈의 대상에 불과한 백성의 입장에서 희망 없는 세상에 기대할 것은 미래에 누군가 나타나서 세상을 뒤집어 엎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삿된 희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아니면 조상의 묘라도 잘 써서 한순간 출세길이 열리는 한탕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노력을 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악질의 계급사회에서 백성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도참신앙이었다. 자아성찰이라는 종교의 근본가치는 사라지고, 복을 기원하는 기복종교, 미래에 세상을 구원할 미륵신앙이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태동 된 것이 혹세무민 최재우의 후천개벽 동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