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時間旅行 소재의 S·F영화나 소설들은 많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가 실수로 나비 한 마리를 죽이고 돌아왔더니 세상이 달라졌더라는 식의 얘기는 얼마든지 있다.
선승禪僧들께서는 시간이란 우리가 인지하듯 전후개념前後槪念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순간瞬間이 영원永遠이고 영원이 순간일 뿐, 과거와 현재, 미래란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는 거다. 따라서 과거에는 이랬는데 현재는 저렇고 미래는 그렇다는 등식等式은 성립되지 않는 다던가. 깨우친 눈에는 그 모든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리학적物理學的으로도 광속光速으로 들어서면 시간이 정지한다는 이론이 있지만 시간에 관련된 이런 논리들은 범인에 불과한 내게는 아무래도 헛갈릴 수밖에 없다. 직관이 가능할 만큼 도통道通한 선승이나 아인슈타인쯤 되는 분들이라야 느낄 수 있는 경지라는 거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야 알까말까 한 시간문제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있다. 1984년에 제작된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의 ‘터미네이터’다.
나는 이 영화를 만났을 때 흥행을 목적으로 제작된 3류 액션영화정도일 거라는 인식을 지녔었다.
그러나 처음 인식과는 달리 이 영화에 내포된 이야기들이 긴 시간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게 만들더라는 거였다. 논리의 기준점이 헛갈린 것이다. 그 헛갈림은 이어서 제작된 2편과 3편에서 더욱 심해졌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히려 이 영화의 T-101을 통해 인간의 집착執着을 볼 수 있었다.
서기 2029년 LA.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기계들이 인류소탕 작전을 벌인다.
2029년의 기계들은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를 낳은 어머니 사라 코너(린다 헤밀턴linda hamilton 분)을 죽여 존 코너의 태어남 자체를 말살하려고 과거의 LA로 사이보그인간 T-101(아놀드 슈왈츠네거arnold schwarzengger 분)을 보낸다.
이에 맞서 미래의 존 코너는 자신의 어머니가 될 20세기의 여인을 T-101로부터 보호하려고 젊은 용사 카일 리스(마이클 빈michael biehn 분)를 보낸다.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던 사라 코너는 터미네이터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사라 코너를 보호하는 리스와 터미네이터의 쫒고 쫒기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지나는 동안 리스와 사라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러닝타임Running-time 108분간의 치열한 추격전도 끝날 즈음 마지막으로 리스는 자신을 희생하는 대폭발을 유도하지만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를 죽이려는 T-101의 집념은 계속되는데…….
인간과 기계는 어떻게 다른가.
아무리 판단기능判斷機能이 첨가添加되고 인간보다 강력한 파워를 지녔더라도 기계에게 없는 것은 영혼靈魂이다. 영혼이란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자신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영혼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기계에게는 그런 작용이 없다. 프로그램program 된 바에 따른 시행이 있을 뿐이다.
터미네이터 T-101이 20세기에 도착했을 때 옷을 구하기 위해 양심의 가책呵責없이 망설이지 않고 살인하는 것이나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름 순서대로 모조리 사살하는 것들은 영혼이 없기에 나타나는 행동양식行動樣式이다.
그러나 사라 코너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뒤따라 온 카일 리스는 다르다. 옷을 구하느라 거지의 바지를 빼앗았더라도 살인은 하지 않는다. 경찰에게 쫒기며 총을 훔치지만 터미네이터를 상대하기 위한 용도일 뿐, 인간을 대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터미네이터에게는 사랑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고 없고가 기계와 인간을 가장 분명하게 구분해주는 분기점分岐點이다.
사라 코너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들의 연쇄살인사건連鎖殺人事件으로 공포에 떨면서도 자신으로 오인誤認한 터미네이터에게 희생당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나 터미네이터에게는 목적만 있을 뿐 연민憐愍의 감정이 없다.
감정이 없으니 사랑이 있을 리 없다. 기계이기에 사라 코너를 쫒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정심同情心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쫒고 쫒기는 와중에도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서로 사랑한다. 카일 리스는 존 코너가 지닌 사라 코너의 사진을 보고 스스로 임무를 자원했으니 처음부터 사랑의 감정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기계와 인간이 극명克明하게 다른 점이다.
인간과 기계의 판단이 같을 수는 없다.
인간은 매사에 선택選擇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계에게는 오직 행동이 있을 뿐, 판단하거나 선택하지 않는다. 망설임도 없다. 판단하더라도 프로그램에 입력入力된 목적을 수행하는데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터미네이터와는 달리 실수失手를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인간 판단력의 한계限界는 사라 코너와 경찰을 통해 나타난다.
자신을 구하려고 미래未來에서 왔다는 설명을 듣고도 사라 코너는 믿지 않는다. 터미네이터의 공격을 받고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가 카일 리스의 구원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20세기 인간으로써 경험의 한계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건 경찰도 마찬가지다. 사라 코너를 구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카일 리스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의사는 오히려 카일 리스를 정신병자로 몰아 버린다. 경찰서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쳐들어온 터미네이터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도 여전히 카일 리스를 믿지 못하는 경찰과 의사다.
반면 터미네이터는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기에 망설임이 없다. 망설임이 없기에 강력하다.
사라 코너는 쫒기면서도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그 전화를 도청한 터미네이터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감정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인간의 무궁무진한 사고능력은 막강한 터미네이터를 물리친다. 인간이 지닌 영혼의 학습능력 덕분이다. 비록 카일 리스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승리이기는 하지만.
시간時間이란 무엇인가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가 사랑함으로써 존 코너가 태어난다. 존 코너의 아버지는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존 코너의 생명은 미래에서 시작되었다는 논리인 셈이다. 미래에서 카일 리스가 오지 않았다면 존 코너는 없다는 논리가 되는데 여기에서 시간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깨부순다.
과연 이 영화의 작가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구분된 것이 아니라 순간이 영원이요, 영원이 순간이므로 모든 사건은 동시에 벌어진 것이라는 선승들의 말씀을 깨우쳐서 이런 설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광속光速에서는 시간이 정지하거나 개념이 달라진다는 물리학이론物理學理論도 있지만 그건 광속 안에 있었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광속우주여행을 일 년 간 하고 왔더니 지구시간은 이미 천년이 지났더라는 식의 이론이다.
이런 설정이 ‘그럴 수도 있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명료하게 그건 이래서 그렇다고 설명할 자신은 없다. 차라리 선사님들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면 속 편하게 헛소리로 넘어갈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간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기에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가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된다는 설정을 부정하기 어렵다. 흔히 말하는 ‘이 시간 말고는 어떤 시간도 없고 이 순간 말고는 어떤 순간도 없다.’라는 개념은 달리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아리송하지만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시간은 연속체連續體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위아래도 포개어진 체 동시에 일어나거나 발생하는 순간들이나 사건들을 지닌 틀 속에 존재하는 상대성의 한 측면이다.’
‘우리는 전全시간의 영역 속에 있는 현실들 사이를 끊임없이 여행한다. 기시감은 이걸 알아차리는 방식 중 하나다.’
‘지금껏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의 사랑으로 존 코너가 태어난다는 설정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터미네이터는 얼핏 보면 흥미위주의 액션 S·F영화로 넘길 수 있다. 무차별살인無差別殺人 장면,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차량추격 장면, 참혹한 폭력 장면, 가슴조리는 위기 장면 등, 흥행목적의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골고루 가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흥행목적의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때로는 지나친 집착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오직 권력을 얻고자 온갖 거짓말을 부끄러움 없이 내뱉는 정치판을 바라볼 때, 세력을 얻기 위해 역사까지 왜곡歪曲하는 부류들을 보면서 과연 터미네이터와 우리가 다른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여하간 나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S·F영화를 좋아한다. 나 나름대로의 이해력을 바탕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