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僧)은 중인데 장가를 가고 마누라를 옆에 끼고 살림을 해가며 중노릇을 하는 중을 우리는 대처승(帶妻僧)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북쪽 괴뢰의 중들은 머리를 깎지 않는다고 한다.
종북좌빨이나 소위 통진당의 국회푸락치들은 조금만 수틀리면 대갈빡을 빡빡밀어 댄다. 이번에도‘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어김없이 대갈빡을 밀었다. 이 꼬라지를 본 많은 국민들이 그럴 바엔 차라리 통진사(統進寺)라는 절을 만드는 게 낫겠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통진사(統進寺) 주지격인‘이정희’그女는 이번에도 대갈빡을 깎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너는 어찌하야 대갈빡을 깎지 않나뇨?’하는 식으로...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 원래 이정희야 골수 빨/궤이 중에서도 상 골수 빨/궤이 아니든가. 빨궤이 중들은 대갈빡을 깎지 않는대도 그러네. 뿐만 아니고 그女니 대갈빡을 깎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밤이면 밤마다 신랑넘과 탱자탱자 하는 속세의 재미를 잊지 못하는 대부승(帶夫僧)이기 때문이다.
통진사(統進寺)라는 단어를 발 빠르게 만든 이는‘조토마’ 大논객 이자 이 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에 촌철살인ist ‘이활 선생’께서 만드셨다. 당시 그 분의 글을 잠시 소개해야겠다.
제목: 통진사 깊은 밤에
지은이: 이활
통진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빵간 가고
햇중들만 짖는구나! 저 중뇬넘들 마저
가막소 가면 불을 지를까 하노라 ~♫
남빨들이 아껴둔 마지막 카드
수령님 기쁨조 뇬넘들 중 이정희는 왜 삭발을 안 할까?
죠뇬은 대가리 밀면 뻐드렁니 밖에 안 남는데
아마 최후의 순간에 꺼내들 비장의 카드로 남겨둔 것 같다.
전국민들 상대로한 시각적 테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이활 선생의 통진사歌를 듣노라니 나 역시 문득 어떤 한 자락의 노래가 생각난다. 60년대 말 경 공전의 히트를 쳤던‘통진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다. 약간의 개사를 해 볼 참이다.
제목: 통진사의 여승
지은이: 오병규
인적없는 통진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대부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놈 잊을길없어
대갈빡도 아니깎고 버텨볼적에
아~ 통진사에 새벽이 운다.
통진사(統進寺)의 대부승(帶夫僧) 이정희의 심사가
이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