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너머 간첩? 이석기 바톤을 이를 통진당 비례대표가 강종헌이라고 한다. 강종헌은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신분으로 서울대 유학 중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13년간 복역한 뒤 1989년 일본으로 추방되었던 인물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은 1975년 11월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등에 재학 중이던 16명의 학생이 간첩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 중 주모자로 지목된 강종헌은 공작선을 타고 입북해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던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강종헌은 추방 후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명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조국통일위원장을 지냈고, 역시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명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해외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당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판결문은 "피고인 강종헌은 1969년 고교 재학시부터 1971년 2월 모국 유학 시까지 재일지도원 김영일, 기무라, 하시모도, 다카하시 등에게서 주체사상 등 교양을 받고 포섭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1973년 8월, 북한 공산선에 승선해 한 차례 북한을 방문, 공작금을 수수하고, 김일성 회갑 축하선물로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맹세문을 작성하여 하시모도에게 제공, 고무 찬양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2010년 종북세력들의 '범죄무혐의'라는 이른바 범죄세탁소 역할을 해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종헌이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고 결론지어 일부 재심권고 결정을 내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강종헌은 재심을 청구한 바 있다.
판결문 내용처럼 김현장씨는 강종헌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강씨가 "평양에서 간첩 교육을 받고 유학생 신분으로 남한에 들어와 활동했던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김현장씨는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복역 중 제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대전 교도소에 복역중인 강종헌씨를 만났고 그 때 직접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위가 여기에도 끼어 든 것이다. 지난날 각종 반국가・반정부적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보안사법들이 줄줄이 무죄 또는 무죄를 위한 수순의 지랫대 역할을 했던 과거사위가 강씨의 간첩 행적이 당시 고문으로 조작됐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강종헌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간첩사건의 판결을 재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사실 강종헌의 반국가 범죄(국가보안법 위반)는 재심정구를 낸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보다 가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후가 더 심각했다. 민주화 바람에 휩쓸려 주사파 종북 세력까지 포옹하려했던 노태우 정부에 의해 가석방 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강종헌은 곧바로 범민련의 핵심간부 자격으로 공개적으로 이적행위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범민련은 동구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이전의 대남공작이 위기에 직면하자 북한정권은 계급혁명을 잠시 가면으로 가리고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 전술로 전환한 통일전신체(통일전선)의 간판을 단 이적단체다. 이후 김대중의 평양 방문 이후 통일전선 간판은 다시 범민련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로 바뀌고 여기에 조총련, 한통련 등 반국가단체가 모두 동원되었다.
강종헌은 바로 이 반국가세력들을 포괄하는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이었다. 그는 1996년 7월 한통련과 범민련 핵심 간부로 일본에서 '남조선 정치정세 및 통일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시국강연을 개최한 것을 비롯해 자신이 만든 '한국문제연구소'의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하고, 한국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김일성・김정일의 독재를 한 번도 비판한 적은 없다. 또 1997년 7월 '범민련 관서협의회' 주최 '한반도 정세의 위기구조를 해부한다'는 세미나를 기획하는 등 조총련과 일본 범민련 주관 행사에 핵심적・주도적으로 가담해 왔으며, 1997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8차 범민족대회' 때는 김일성의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고, 8・15민족대회에서 특별결의문을 낭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서 반역행위를 저지른 강종헌, 그가 활약했던 한통련, 범민련, 조총련 단체 등은 한국에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범원의 확정판결까지 흔들어대는 초법적 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국가보안법이 무력화 되면서 당당하게 민주화세력으로 둔갑한다. 이 시기에 강종헌도 한국에 입국한다. 이런 한통련, 범민련, 6・15일본지역위원회 등 강종헌의 활약을 가장 충실하게 전해온 매체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의 이석기가 관계하고 있는 '민중의 소리'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강종헌이 비례대표 자격으로 이석기의 바톤을 이은다는 것도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문제는 사정이 이러함에도 비례대표 자격 박탈 법조항 적용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석기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 요구안'이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된 상태다. 이석기는 재판에서 내란 음모 혐의로 금고이상 형이 확정되거나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제명안이 가결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비례대표인 이석기가 의원직을 상실하면 비례대표 강종헌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작년 통진당의 부정 경선 사태로 다른 비례대표 후보들이 사퇴하거나 탈당해 후보란에 남아 있는 유일한 후보는 강종헌이다. 전문지호 후문지랑(前門之虎 後門之狼)격이다. 강종헌은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의 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어쨌튼 법적 간첩 복역자인 강종헌이 국회 입성이라니? 대한민국 국회는 죽었는가? 통진당 해체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