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건에서 사태 대처에 무능했던 청와대를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해프닝 정도로 받아 들이는 경범죄자를 1급 강간치상범으로 만들어 나라가 시끄러운 것에 비판을 가했다. 윤창중은 죄가 있으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고, 개인의 문제가 국가간의 외교문제로 결부되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미외교가 통째로 매도 당하는 난장판을 비판했다. 결국 나는 희대의 수구꼴통으로 몰렸다. 파시스트에 매카시즘에 노사모 후예에 개수구꼴통 등등 나에게 내려주는 작위가 화려하기만 하다.
일전 미국 신문기사에 달린 미국민의 댓글을 보니 개인의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확대하는 대한민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미국의 사정이 이러할진데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토록 자그마한 경범죄에도 끓어 넘치는 정의감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뒤덮는 도덕군자의 나라가 되었는지 새삼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미국국적 한인의 총기난사사건에 용서를 구하는 대한민국에 당신들의 문제가 아닌데 왜 사과하냐고 되묻던 미국이다.
그간 대한민국에 그 흔하고 흔한 학력위조, 논문표절을 열거하자면 수십권의 책으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고 사건이 터져도 하루 이틀이면 언제 그랬냐는 등 사그라들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유독 타블로에게만 미 본토까지 날라가 진실규명을 해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스탠퍼드대학교 졸업한 머리 좋은 것이 죄가 된 타블로는 인생행로에 씻지 못할 오점이 남았다.
윤창중 사건은 2004.10.18. 이해찬이 독일 베를린에서 부린 추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이해찬은 대통령과 함께 국무총리 자격으로 독일 순방에 나선다. 당시 노무현은 호화유람으로 현지에서 국가적인 망신을 산다. 독일 일간지에서는 “ 그가 대동한 사람은 145명이며, 자기 요리사 그리고 가지고 온물 , 호텔방은 특별 히 만들어진 화장하는 방을 두고 단 하루밤 을 위하여 화장하는 방을 따로 필요로 하여 호텔수리를 하였으며, 65명의 기자가 대동을 하였으며 80개의 가방에는 온갓 산해진미를 가지고”라고 대서특필했다. 국가적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독일이 어떠한 나라이던가. 가난으로 몸부림치던 시절 광부와 간호사를 인력송출했고, 그들은 근검절약하며 돈을 벌어 조국근대화의 시드머니를 만들었던 눈물의 땅이 독일이다. 헌신적이고 성실했던 한국 간호사에게 코리안 엔젤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나라이다. 쿠테타의 나라 대한민국에는 돈을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을 대신하여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차관을 빌려 주던 조국근대화의 커다란 은혜를 입었던 나라이다. 독일에서의 노무현 초 호화 유람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졸부로 비춰 졌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해찬을 술퍼마시고 수행기자를 불러놓고 술주정을 한다. “조선 동아는 역사에 반역 말라, 까불지 마라, 조선 동아는 내 손안에 있다”라며 개차반이 되어 술주정을 한다. 일국의 총리가 술이나 처먹고 국가적 외교행사에서 천하를 가졌다는 권력에 취해 부렸던 개망나니 짓을 알려진 독일에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조롱 당했을까. 그런데 이러한 국가적 개망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조용했다. 너무도 조용했다.
그 흔하고 흔한 학력위조, 이제는 기사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로 만연한 학력위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어찌하여 타블로만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한 개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 넣으려 했는지 그 잔인한 광기의 시간은 한 개인의 가슴에는 비수가 꽃힌채 남아 있으리라.
반미면 어떠하냐고 객기 부리던 노무현은 미국에 가서 꼬랑지 찰싹 붙이고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며 알랑방구를 끼며 국가적 개망신을 샀음에도 성토나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창중 사건은 미국 현지에서는 4급 경범죄에 불과한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은 국가반역죄나 1급 연쇄살인범에 준한 죄를 묻고 있다.
타블로의 학력논란, 미국 순방길의 추태 두사건의 공통점은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 근대사에 가장 큰 영향과 도움을 주었던 나라이다. 가장 친한 혈맹국 이면에는 열등국이 가지는 미국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다.. 반도로 축소된 역사와 수없는 외침에 우리도 모르게 패쇄성과 두려움이라는 민족적 기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불만은 결국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표출되고, 미국과 결부된 모든 문제는 언제나 시끄럽게 분출된다. 세계 각국의 수입 소고기란 소고기는 죄다 사다 먹으면서 미국 쇠고기에만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고, 단순 교통사고였던 효순이 미선이 사고를 통해 한반도를 뒤덮었던 촛불들을 통해 미국이라는 트라우마 여전히 견고하다. 소위 배웠다는, 깨우쳤다는 자들은 더하다. 미제국주의에 거품물고 저항하던 임수경은 미국으로 유학가서 인권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결론은 미제타도 도루묵이다.
윤창중 사건을 바라보며 그냥 입다물고 있으면 간단한 문제인 것을 그토록 씹어 돌리는 불쌍한 인간들이 넘쳐난다. 대단한 성인군자들이다. 골목 골목 넘쳐나는 노래방에서 도우미에 대한 온갖 추태가 밤마다 횡행하는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군자의 나라가 되었는지 새삼스럽기만 하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불구하고도 핵개발을 추진했던, 그래서 완성을 눈앞에 두었던 당당한 박정희 대통령의 자존감이 필요한 시대이다. 6.25 사변에서 적화의 위기를 막아준 미국에 대한 은혜를 월남 파병으로 갚았던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의 자존감은 깡그리 묻어 버리고, 오로지 월남파병의 굴종만 주절거리는 미친놈들 그놈들이 대미 열등감의 근원이다. 개정은이 가진 열등감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 대한 열등감 언제나 사라질꼬. 이제는 나를 미국 똥구멍이나 빨아대는 숭미사대주의자로 지랄들 떨라나. 한심한 족속들. 나가서 뒈져라. 니들은 시체 치우는 것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