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곡 중 하나가 이별을 노래한 '가슴 아프게'이다.
거주지가 섬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세 번의 이별이 기억속에 있다. 첫 번째는 군대 갈 때 어머니와의 이별..
지금도 뱃머리 닿은 부둣가 철조망 울타리에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한 손을 철조망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힘없이 손을 흔들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두 번째는 부모님과 그리고 큰형, 작은형과의 사별이며
세 번째는 두 번째 사연(?)과 맞물려 도리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아내와 아들과의 생이별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법화경(法華經)에 나온 유명한 글이다.
약간 생소하지만 여기서 '회자정리(會者定離)'만 뚝 잘라서 보면 어딘가 낮 익어 보인다.
바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인용된 글이기 때문이다.
그 철학적인 깊은 뜻을 일개 범부(凡夫)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리오만은
아무래도 '이별'과 '만남'에 대한 어떤 고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횟수만큼이나 우리의 인생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사랑'과 '이별'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각각의 사연을 안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밤 하늘의 수 많은 별처럼
사랑만큼이나 어쩌면 '이별' 역시 수 많은 사연을 안고 맞이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하고
열창하는 노랫말 가사도 뒤집어 보면 '이별'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별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이별은 어떤 종류의 인간과의 교섭이나 관계를 절단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자연과 같은 존재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별, 어느 작가의 표현이다.
'이별은 일종의 적극적인 단념이고 포기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히, 그리고
치열하게 소망하였던 것이 있었던 사람에게만 이별의 슬픔이 있다. 이러한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욕망에의 정열이 없었던 것처럼 이별의 능력도 없다'
또 어느 책에는 이별에는 두개의 방향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망각에의 방향이요, 다른 하나는 불망(不忘)에의 방향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별이 일종의 단념과 포기의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요,
후자는 지속과 재생의 형식으로 표현된 경우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슬픈 이별은 그의 즐거운 인생의 한 역설이다.
위대한 이별은 항상 위대한 그의 생활을 대변해 주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별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별할 아무것도 없는 인생의 쓸쓸함이다.
일찍이 시드니 셀던이 그의 작품을 통해 '영원한 것은 없다'라고 했던 까닭도
'이별'에 대한 또 다른 역설적인 표현 방법이었을까?
개인적으로 노을을 무척 좋아한다.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빛속에 어둠이 있기 때문이며,
여명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둠속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會者定離)'라고 했지만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去者必返)라고 하지 않았던가?
노을(이별)이 져도 머지않아 여명(만남)의 설레임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시(詩) 구절이다.
그래, 나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어머니 품에 안겨봤으면..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었을지라도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어봤으면 원이 없겠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같은 상황이라면 손해 보는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며 욕심을 경계시키고,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라"며 틈만 나면 꼭 안아 주던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