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로 12시간 걸리는 거리… 미군, 우주 거쳐 1시간 '로켓 배송'
미군, 우주 거쳐 군수물품 배달
스페이스X 지구 귀환 캡슐 활용
표태준 기자
입력 2026.10.27. 00:53 업데이트 2026.10.27. 07:09
◇전투기로 12시간 걸리는 거리… ‘우주 택배’는 1시간 만에 배송 완료
미 공군의 구상이 실현되면 배송이 얼마나 빨라질까. 플로리다주에서 지구 반대편에 가까운 호주 퍼스까지 최단거리는 약 1만8000㎞다. 초음속 전투기인 F15가 항속 속력인 시속 약 1470㎞로 12시간 넘게 쉬지 않고 날아야 도착한다. 게다가 초음속기는 연료 소모가 극심해 항속 거리가 약 2000km에 불과하다. 플로리다를 출발해 최소 8번은 기름을 넣어야 해 실제 비행시간은 더 늘어난다. 게다가 육상 상공에서는 소닉붐(음속 폭음) 규제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하고, 타국 영공을 통과하기 위해 복잡한 외교적 허가를 받거나 수천㎞를 우회해야 한다. 도착지에 최소 1km이상급 활주로가 없거나 적의 공격으로 파괴됐다면 착륙조차 불가능하다.
스타폴은 이 모든 물리적·지정학적 제약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플로리다에서 발사된 로켓이 10분 만에 대기권을 돌파하면, 스타폴은 로켓 2단부에 붙어 고도 200㎞ 이상의 지구 저궤도를 돌다가 하강 명령을 받으면 떨어져 나와 지구로 돌진한다. 이곳엔 영공의 개념도 없고 급유를 위해 중간에 멈출 필요도 없다.
스페이스X와 미군은 스타폴의 지구 재진입 과정을 극비에 부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저궤도를 도는 속도와 대기권 진입 후 감속 등을 고려하면 1~2시간이면 지구 어디든 스타폴이 도착할 수 있다고 본다. 플로리다 저궤도 상공에서 퍼스까진 약 1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초음속 제트기가 플로리다에서 이륙해 대서양을 채 절반도 건너기 전에, 스타폴은 지구 반대편 호주에 낙하산을 펴고 내려앉는다. 활주로가 없는 험준한 산악 지대나 망망대해의 함정 옆이라도 물자를 투하할 수 있는 것이다.
◇초음속기로 12시간 걸리는 지구 반대편, 1시간 만에 ‘논스톱 직배송’
이 실험의 바탕에는 스페이스X가 쌓아 온 재사용 로켓 기술이 있다. 로켓을 회수해 다시 쓰고 발사를 반복하는 능력이 위성을 올리는 사업에 이어, 화물을 되가져오는 사업의 발판이 됐다. 이번 군수품 시험에도 여러 위성이 함께 타는 합승 발사를 이용했다. 여기에 정교한 궤도 제어와 열 차폐 기술이 더해졌다. 자체 무게 2.1t인 스타폴은 최대 1t의 화물을 싣는다. 자체 엔진은 없지만 압축 질소를 뿜어내는 냉가스 제어시스템을 통해 우주 공간에서 자세와 방향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저궤도에서 90분마다 한 번씩 지구를 돌다가, 목표 지점이 정해지면 로켓 2단부의 엔진 추력을 이용해 궤도를 조절하고 떨어져 나온다. 이후 중력에 몸을 맡겨 하강하는 방식이다.
시속 2만8000㎞의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수천 도의 마찰열은 캡슐 하단에 덧댄 특수 탄소섬유 방열판이 막아낸다. 앞서 스페이스X는 지난 6월 23일 첫 시험 발사에서 팰컨9 로켓으로 스타폴을 띄워 지구를 한 바퀴 반 돌린 뒤, 미 서부 해안에서 1300㎞ 떨어진 태평양 해상에 낙하시켜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캡슐에 위탁 화물을 실었던 민간 기업들이 멀쩡하게 회수된 물품을 공개하면서 상업적 가치도 보여줬다.
안재명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 배송은 당장 일반 택배 같은 대중적 수요보다는 분초를 다투는 군의 긴급 보급이나, 미세중력 환경에서 만든 고부가가치 신약·반도체 소재 등을 지상으로 안전하게 회수하려는 기업들을 겨냥한 모델”이라며 “이틀에 한 번꼴로 재사용 로켓을 쏘아 올리며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스페이스X가 이제 ‘우주 물류’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호품 대신 폭탄 실으면?
군이 기대하는 쓰임새는 활주로가 파괴된 섬, 도로가 끊긴 전장, 구조대 접근이 어려운 해상에서 통신장비나 응급의료품이 떨어졌을 때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스타폴의 진짜 잠재력이 단순한 보급을 넘어 전쟁의 판도를 뒤흔들 전략 무기화에 있다고 말한다. 미 공군은 이미 2021년부터 대형 로켓을 이용해 화물 100t을 지구 어디든 90분 내에 수송하는 로켓 카고(Rocket Cargo)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100t은 미군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럼스 1대 반, 혹은 중무장한 특수부대원 수백 명과 장갑차를 동시에 실어 나를 수 있는 규모다.
더 나아가 스타폴 같은 재진입 캡슐을 저궤도에 수십 개 띄워놓고 우주 물류창고처럼 운용할 경우, 적국에는 재앙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평시에는 의약품과 식량을 담고 돌지만, 유사시 이 캡슐 안에 정밀 유도폭탄이나 자폭 드론 군집을 채워 넣으면 지상의 어떤 방공망으로도 막기 힘든 ‘궤도 타격 무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지상을 직접 타격한다는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로켓을 저궤도에 올려 지구를 공전하게 한 뒤, 원하는 시점에 적의 머리 위로 떨어뜨리는 부분 궤도 폭격 시스템(FOBS)을 경쟁적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로켓 한 번 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고 정밀 유도 기술도 부족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팰컨9이 발사 단가를 과거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뜨리면서 사장됐던 냉전의 구상이 부활하고 있다.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