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현상학》 서론 (5)
인식을 도구로 보든 매체로 보든,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는 그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오히려 부조리한 것은 우리가 애초에 어떤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In both cases, we make use of means which immediately bring about the opposite of their goal; or rather, what is absurd is that we are making use of a means.의역 : 인식을 도구로 보든 매체로 보든, 절대자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더 나아가 절대자를 어떤 수단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주해]
이 글의 내용은 인식을 도구로 보든 매체로 보든 결과는 같으며, 우리는 절대자를 외부의 대상으로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아예 물자체(본질의 세계)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철학은 대체로 인간의 인식 능력을 절대적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해 왔다. 마치 망원경으로 별을 보듯 인간은 인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해 왔다. 혹은 공기를 통과한 빛이 눈에 들어오듯, 진리가 인식이라는 매체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진리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진리의 그림자만 붙들게 된다는 것이 칸트의 인식론이다.여기에 헤겔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제는 도구가 불완전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진리를 얻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려는
생각 자체가 부조리하다."
헤겔은 진리를 얻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이미 진리와 인식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헤겔은 절대자와 인식을 서로 분리된 두 실체로 보는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그는,
"현상은 알 수 있지만 물자체는 알 수 없다"
는 칸트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식은 이미 진리의 운동 안에 있으며, 진리는 인식과 분리된 저편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칸트가,
"먼저 인식의 한계를 조사하자"
고 말했다면, 헤겔은 되묻는다.
"그 조사를 하는 것은 누구인가?이미 인식 아닌가?"
헤겔의 입장은 분명하다. 절대자를 알기 전에 인식 능력부터 검사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인식과 진리를 따로 떼어 놓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정신현상학》은 칸트가 남겨 둔 '알 수 없는 영역'(물자체)을 변증법적으로 사유하려는 시도이며, 서론의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할애되어 있다. 헤겔은 현상과 본질을 서로 나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현상 자체가 자기 운동을 통해 본질을 드러낸다고 본다. 따라서 현상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진리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두 거인의 입장을 보고 있지만 인식이나 진리의 궁극적 자리는 계시여야 한다. 세계를 시작하신 분의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와 인식의 문제 등 본질적 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철학은 신학에 복종되어야 하고 신학은 성경에 복종되어야 참된 답을 얻게 된다.
2026.6.24. 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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