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올의 좌충우돌 촐랑거림의 끝은 어디일까 늘 지켜 보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강의라고 나불거리지만 절반은 지 잘난 푼수질이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세월 동안 수학했으면 자칭 세계적 철학자라고 떠들지만 지나가는 똥개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만해를 부른다며 거창하게 판을 벌려 나불거리고 최근 만해 추모예술제 특강까지 만해 한용운을 빨아주고 있다. 하지만 구라와 날조, 곡학아세가 특강을 채웠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근세사에서 가장 쪽팔린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동학반란일 것이다. 동학반란 빨아주느라 도올의 이빨에 땀이 차더니 이제는 만해 한용운 빨아 주는 것으로 전환한 것 같다.
도올은 만해를 한국 불교 개혁의 화신으로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로 구라를 치고 자빠졌는데 그 당시 한국 불교는 산속에 틀어 박혀 굿판이나 벌려 아낙네들 주머니나 털어 먹고 사는 수준으로 불교의 본질은 사라졌고 존재는 미약했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성리학이 조선의 국가 이념이 된 후 조선초부터 불교의 씨를 말렸고 중은 기생과 백정과 같이 팔천 중의 하나로 한양 땅은 밟을 수도 없었던 세월이 500년이 넘었다. 따라서 조선불교는 사실상 없었던 것이고 산속에 처박혀 박수무당으로 아낙네를 위하여 돈받고 굿판이나 치성을 드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한용운은 20대때 불교에 관심을 가지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불교에 대한 엄청난 감명을 받는다. 당시 많은 승녀들이 일본 불교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들이 귀국한 후 일본 불교 유학파들이 모여 불교학원을 세우고 일본불교 포교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불교학원이 동국대학교의 전신이 된다. 따라서 현재의 불교는 일본불교의 막대한 영향력하에 교단이 세워지고 발전하여 온 것이다.
1908년 일본에 유학한 한용운은 귀국 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원과 조선불교중앙학림에서 강사로 교편을 잡았다. 폭삭 망해 박수무당질로 밥처먹고 사는 중놈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일본불교처럼 새롭게 태어나자고 외쳤다.
한용운은 조선불교 유신론을 집필하여 절간에 처박혀 박수무당으로 푸닥거리나 치성을 드리며 혹세무민하는 중놈들을 개혁하여 승녀의 결혼 허용, 육식허용, 장사, 농업, 제조업 등 돈벌이 허용 등 일본불교 시스템으로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신(維新)은 메이지 유신의 그 유신에 따왔다. 저짝 빨갱이새끼들은 한용운을 독립운동가로 빨아주며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維新)헌법을 공격하며 친일파라고 염병지랄 발광한다. 하지만 만해는 박정희 대통령보다 60년을 앞서 일본 불교처럼 조선불교를 유신(維新)하자고 했던 원조 친일파가 만해이다.
도올아~~~
한용운 빨아주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사실과 팩트에서 벗어나지 마라. 너가 구라까는 버르장머리야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이제 벼름빡에 똥칠 할 나이라면 진중해졌으면 한다.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는 것이 아니다.
무식한 도올이 불쌍해서 어이할꼬.......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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