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은 사과하지 않는다
논객이 사과를 한다면 논객은 사과 장수가 될 것이다.
요새는 글빨에 힘이 떨어져서인지 옛날처럼 고소장이 날라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잊을만 하면 심심찮게 고소장이 날라오곤 했는데,
보통 고소장이 오기 전에 예고편이 날라오게 된다. 단골로 연락오는 쪽이 여기다.
민주당의 모 국회의원 비서관이라면서 말하길,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비서관의 말투나 억양에 따라 대응도 달라진다.
상대방이 법적 조치 운운 나올 때는, 조까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럴 때는, 저는 사과를 팔지 않습니다.
내 글에 팩트가 틀렸을 때는,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겠습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대응을 했었다.
논객이 사과를 팔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팩트가 틀렸을 때, 단 하나다.
그렇다고 꼭 사과를 할 필요는 없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기 때문이다.
논객은 자존심으로 글을 쓰고, 자존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논객은 틀린 글을 수정이나 삭제를 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논객은 일반 언론사에 비해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지고
일반인 신분이기에 팩트가 틀리는 일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옛날 논객 초창기 시절에는 글을 수정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수정했다는, 비겁하게시리 몰래 수정했다는 공격을 받을까 봐서였다.
팩트가 틀리거나 단어가 틀린 것은 댓글란에 수정 댓글을 다는 정도로 했다.
논객이 게시판에 올린 글은 그 누구도 건들릴 수 없고,
하느님도 내 글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그때,
일개 의원 비서관 하나가 감히 내 글에 트집을 잡다니,
물정 모른 풋내기이거나 겁대가리가 상실한 놈이 틀림없다.
이런 놈은 국회의원과 함께 도매급으로 욕을 한 바가지 먹게 된다.
논객이 소신을 가지고 쓴 글이라면 더더욱 사과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소신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이다.
차라리 모가지를 줄 수는 있어도 사과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김진 논객은 한강에 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장차 민주당 독재가 강화되고, 민주당에서 광주5.18이나 제주4.3에 대해서
말을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보내거나 사형을 시킨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자아비판을 하고 목숨을 구걸할 것인가,
자아비판을 하자면 자기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논객은 사과하지 않는다, 4.3폭동이나 광주폭동은 나의 소신이다.
그러니 알아서 빼를 째든 구워 드시든 꼴리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서 모가지를 내밀 수밖에 없다.
논객넷의 대표 논객들은 사과를 팔지 말자.
물론 사안에 따라 사과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잘못했더라도 사과를 팔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을 가진 논객이 되자.
물론 사과를 않는 것이 곧 자존심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논객은 사과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그런 논객이 멋져 보이기는 한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