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석탄일 즉 부처님 오신 날이다. 나도 한때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었다. 그렇게 다니던 교회를 아니 예수님을 멀리하게 된 몇 가지 동기가 있다.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글쎄다. 이런 경우가 가끔 있었는지...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이후로 교회에 발길을 완전히 끊었으니 비교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날,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이며 부처님 오신 날이 겹친 것이다.
그전 또 하나의 이유(?)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피력했던 얘기 한 자락을 잠시 퍼 와야 겠다.
(상략)
형님, 정말 불쌍한 우리 형님! 자주 얘기했지만 625사변으로 다리 병신이 된 후 요즘 같지 않은 세상(병신에 대한 편견)을 살아오며 그 무게가 너무 벅차 극단적 선택을 몇 차례인지 시도했던 형님이다. 문제는 좀 안된 얘기로, 병신들이 다 그런지 모르지만 옹고집에 외골수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뚫고 들어갈 수 없이 방어막을 치고 살아왔다.
젊은 날 술. 담배로 세월을 보내다 40대쯤이든가 신학대학을 가고 다시 목사안수를 받고 개척교회를 세우고... 그 덕분에 나를 뺀 나머지 다섯 남매를 기독교에 심취하게 했고 더하여 부모님까지 자신의 교회로 인도시킨 정말 대단한 목사님으로 변신을 했지만 도대체 형님의 설교는 잠밖에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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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저 양반 설교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집, 즉 안방 생활만 하며 성경만 연구한 탓일 것이다.’라며 비관론을 폈었다. 도대체 설교라는 게 성경 해설에 국한된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 속에서 일어난 다사다난한 경험들이 성경과 매치 되어 설교가 만들어져야 하는데(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 그런 면으로 내가 차라리 성경을 좀 공부 했더라면 설득력 있는 목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이를테면 성경 개론에 불과한 설교를 했으니 온갖 잡다한 인생 경험을 한 내 귀에 감동을 주는 설교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한 때 사업이 좀 될 때는 대형 교회에 십일조를 1.2등을 다투며 과시했던 적이 있었다. 매주 발행되는 교회주보 뒷면에 십일조 발표(?)가 나면 다음 주에는 내가 1등이 되어야지...하며 헌금을 냈었다.
다음 얘기는 혹시 독실한 분들은 안 보셨으면 한다. 내가 그 교회를 다니며 많은 신도들이 내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들을 했고 일부는 부자재 하청을 맡아 일을 하기도 했다. 그때 인천 모처의 작은 암자의 주지 스님 되시는 양반도 그 부자재를 가져다 그 절의 불도들에게 하청을 맡기고 했었다.
그런데 부도가 나고 하청공임이나 급료를 제대로 못 주게 되자, 나를 가장 먼저 고발한 사람들이 같은 교회 교우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청을 해 왔던 교우들과 합세하여 노동청에 고발을 했던 것이다.
지난 일을 원망하자는 게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그런 경우였어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주지 스님은 달랐다. 사업을 하다보면 이런 일에 봉착하는 경우가 허다 하니 하청공임은 자신이 불도들을 설득할 테니 걱정 말고 재기나 하라며 격려까지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스님을 한 번도 뵙지를 못했는데, 그 보다는 내가 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기도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마음의 안정을 찾자는 게 아니라 당시 가진 것들을 지켜 달라는 아니면 그 보다 더 큰 것을 달라는 기도였던 게 한심하고 부끄러워 그 이후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형님의 졸리는 설교를 가끔 들었을 때 속으로 비웃음만 머금었던 것이다.(하략) 비록 같은 교회의 교우들로부터 노동청에 고발도 당하고 악지가리를 뒤집어 썼지만 그래도 도망을 칠 수 없어 교회는 여전히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데서 교회와 발길을 끊는 계기가 된 것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오늘과 같은 그날, 그날도 그랬다. 그날도 일요일이며 부처님 오신 날이 겹친 것이다. 찬송가.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등 순서에 따라 드디어 담임 목사님(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분이다.)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부도. 고발...등등 뒤숭숭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에서 목사님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지금 서울의 도심에는 마귀와 사탄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뒷 얘기는 더 귀에 담을 필요가 없었다. 결국 그날, 부처님 오신 날과 주일이 겹친 자리에서 명망 높은 목사님의 설교는 내 마음을 완전히 떠나게 만들었다. 초파일 행사를 두고 ‘악마와 사탄의 행진’이라 규정하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발길을 들일 수 없었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서로 다른 길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배타와 혐오의 언어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종교의 본질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종교를 떠났다고 해서 삶의 의미를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종교를 광역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종교란 특정 교리나 의례가 아니라, 인간이 삶의 궁극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모든 시도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도덕, 심지어는 인간이 세운 이념과 사상까지도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적 성격을 띤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다시 생각한다.
종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도 결국 인간을 위로하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거대한 거울이어야 한다. 나를 고발했던 교우들과 달리, 재기를 격려해 주었던 스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다. 그것이야말로 종교의 본질, 즉 인간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는 힘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니지만, 종교의 광역적 의미를 존중한다. 종교는 배타가 아니라 포용이고, 저주가 아니라 위로이며,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어야 한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종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도 결국 인간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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