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썰에 주신 댓글을 읽고 정말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 묵묵부답(黙黙不答) 내지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일관하려 했으나 몇 말씀 드리지요. 특히'대통령이 장관에게 배신을 한다?'는 말씀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근간 찢명이와 정걸레의 갈등설을 보셨습니까? 제 얘기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관계가 아니라, 배신설과 갈등설이 있을 당시는 한동훈은 비상위 대표였거나 당 대표 때입니다. 상식적으로 장관이 어찌 자신을 임면권자에게 덤벼듭니까? 임면권(任免權)이라는 단어를 모르십니까? 따라서 그것은 같지도 않은 말씀을 하신 거고요.
자~! 그럼~!! 배신(背信)에 대해 생각해 보실까요?
우선 배신이라는 단어에는 계급의 높낮이 상하가 따로 없습니다. 배신을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가 먼저 내치고 신뢰를 깨뜨렸다면, 그것이 곧 배신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어떤 놈이 먼저 배신 했는지 저와 논쟁을 해 보시겠습니까? 정 선배 같은 논지라면 사흘이고 한 달이고 논쟁할 자신 있습니다.
생각을 가다듬어 보세요. 정치사에서 배신은 언제나 위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나 조폭 영화에서도 부하가 먼저 배신하는 경우보다, 보스가 먼저 의심하고 내치는 장면이 더 많지 않든가요? 커가는 아랫놈이 두려운 것입니다. 조선조에 그 많은 사화(史禍)는 왜 일어났을까요? 소위 찌질한 왕이라는 자들이 신하를 불신하고 팽시키며 일어난 것들입니다. 결국 상하 신뢰가 깨진 순간, 반발은 불가피했던 것입니다.따라서 한동훈의 이탈은 원초적 배신이 아니라, 이미 내쳐진 자의 생존이었습니다. 또한 “한동훈이 역적질을 방관했다”는 지적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귀결될 수는 없습니다. 역시 봉건사회에서 난이 일어나는 것은 군왕들의 처신이나 국정 다스림이 잘못 됐을 때 그 반발력이 곧 역적이고 난인 것입니다. 저 같은 산골의 촌노 눈에도 윤석열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마누라 치마폭에 쌓여 있는 꼬락서니는 마치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놀아난 연산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적질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 번을 얘기 하지만, 저도 한동훈이 밉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 문제입니다. 정말 미운 놈이지만, 보수를 응집시키고 빨갱이들과 싸울 수 있는 그만이 가진 독특한 전력(戰力), 즉 전투력이 당을 살릴 수 있습니다. 보수의 길은 감정적 배척이 아니라 현실적 수용입니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할까요? 나는 매일 찢명이 정권을 그리고 그 패거리들의 비위를 고발하며 빨갱이들과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인간들 중 보수끼리 싸움 붙이는 무뇌아는 많아도 찢어진 보수의 균열을 꿰매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있었습니까? 그저 저희끼리 패거리 지어 추천 때리고 희희낙락하는 그 꼬라지란...그렇기에 더욱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배신의 본질은 위에서 시작되었고, 한동훈의 선택은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것을....늘 노옹(老翁)이라 말씀 하시니 그리 알겠습니다마는 늙어 갈수록 세상을 관조하는 노력을 하십시오. 저 역시 내일이면 80입니다. 이제 이 나이에 무슨 영광을 얻겠다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겠습니까? 세상이 잘못 되가면 할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게 늙은이들의 세상사는 도리입니다. 늘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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