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글제만 놓고 보면 누구라도‘임진왜란’을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상황에서 정작 가장 핵심이자 주요 인물인
이순신 장군이 보이지 않음은 유감이다.
‘이순신 장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백의종군(白衣從軍)’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정유재란이 발발하는 1597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일기는 빠져있다. 그 당시의 역사를 잠시 기록으로 뽑아보자. 1597년(선조30)1월 정유재란 발발.
1월 21일: 왜군이 거짓으로 꾸민 밀서를 그대로 믿은 조정에서 출동 명령을 내리나 이를 어기고 출동하지 않음
1월 27일: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됨
2월 24일: 한성으로 압송됨
3월 4일: 모진 고문을 받고 투옥됨
4월 1일: 투옥 된지 28일 만에 출옥하여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함
2월 24일 한성으로 압송 될 당시의 상황을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삼문밖에는 이순신 장군을 실어갈 함거(檻車)가 놓여있다. 장군은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오랏줄에 결박된 채 부자유한 몸으로 나졸에게 붙들려 함거 속으로 들어간다.
만고의 영웅인 장군이 까닭 없이 누명을 쓰고 한성으로 잡혀간다니 그곳의 백성들은 모두가 부모상을 당한 듯 황황하고 초조하다. ‘우리 사또를 왜 잡아 가시오, 사또가 가시면 우리는 어이 살라하오, 망극하오. 우리는 장차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하고 산단 말이오,,,,,,,함거에 오르는 장군의 모습을 보자 백성들은 통곡을 하며 함거를 둘러싸고 장군을 얼싸 안는다.
금부나졸이 육모방망이를 휘둘러 백성들을 내쫓는다.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은 매를 얻어맞으면서도 흩어지지 않는다.”이상 두 가지의 역사적 사실은 영웅이나 성웅이 관리 또는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거나 위해(危害)를 당할 시, 그들의 공덕에 감화를 받은 백성들이 안타까워하고 미력이나마 항거를 했다는 기록이다.
근간 들어 소나 개나 하던 짓거리에 제동이 걸리거나 낯짝이 붉어지고 쪽이 팔리면, 특히 정치권에서 가장 흔해 빠지고 평가절하 된 말이 아마도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는 단어가 아닐까….?생각된다. 백의종군이 그렇게도 만만하고, 할 일 없고, 별 볼 일 없는 단어인가?
언제부터인가 백의종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윗 썰의 이순신 장군인데, 그 양반이 그토록 소나 개나 마구잡이로 함부로 입에 담을 작태를 벌이며, 하다하다 안 돼서 백의종군을 하셨다는 말인가? 그 양반이 백의종군 할 때는 안티 이순신으로부터, 당시로는 불가항력(不可抗力)적인 질시와 모함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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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김영환 컷오프 효력정지… 국힘 공천 대혼란 작금 국힘당의 대표라는 자와 공관위원이라는 자들이 꼭 임란 당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주연: 찌질이 선조(장동혁) 조연: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몰사한 신립(이정현) 엑스트라: 완패한 전선(戰線)에 전선(戰船)몰고 나가 죽은 원균(???) 이상 주. 조연과 엑스트라까지 완벽하게 짜여져 있지만
마지막 남은 퍼즐“백의종군 이순신”이 없는 국짐당. 헛 말이라도 백의종군 하겠다는 인간 하나 없으니...
정말 한심한 국짐당 등신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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