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웠던 시대 개조선은 개씹선비들의 성리학이 통치의 신으로 군림하는 신정일치,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힘 없는 군왕을 제사장으로 만들어 개씹선비들이 모여 동족포식을 하며 백성의 살과 뼈를 뜯어 먹고 발라 먹었던 인류의 그 어떤 이념도 범접하지 못할 악의 정점을 보여 주었다. 그것이 진화하여 인간 개백정 개정은 집구석의 주체사상이 되었다.
이는 그 어떤 국가 통치 이념도 범접하지 못할 악의 정점이었으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악의 임계점을 보여 주었다.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와 동족의 절반을 노비로 만들어 개돼지로 부려 먹었다. 이러한 악은 그대로 계승 되어 북괴는 출신성분으로 수십개의 계급으로 분화되고 인간 개백정 개정은 집구석과 4%에 불과한 공산당원 빨갱이들이 인민의 피를 빨고 살을 뜯어 먹는 동족포식으로 먹고 살고 있다.
양반이 노예를 때려 죽여도, 노비의 딸을 강간해도, 돼지새끼 번식시키듯 씨받이로 부려 자식을 번식시켜 노비로 팔아 먹어도, 그 외 어떤 죄도 책임과 잘못을 물을 수 없었던 악마의 세상이 개조선역사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노예는 흔한 일이었지만 동족을 노예로 부렸던 역사는 없었다. 전쟁을 통한 정복지 포로를 노예로 부렸다. 그 정복지에서 잡혀 온 그 노예들도 개조선 개씹선비 사회의 노비처럼 살지는 않았다.
구한말 초대 프랑스 공사로 재직한 콜랭 드 플랑시는 당시 극악(極惡)한 조선의 노예 제도에 대하여 본국에 “조선의 노비제도에 관한 보고”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조선 각지에 주기적으로 가뭄이 발생할 때 대규모로 여자와 여자아이들의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들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남편이나 부모들은 약간의 쌀이나 엽전 몇 푼에 남에게 넘깁니다. 이런 경우에 통상적으로 여자아이들이 6-8 프랑에 거래되지만 종종 더 싸게 팔리곤 합니다. 노예 상인들은 이들을 싼 값에 인도 받아 한양이나 큰 고을로 데리고 가 큰 이익(200-300 프랑)을 남기고 되팝니다.
가장이 양도하는 경우 외에도 노름에 져서 빚을 갚을 방법이 없는 경우에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채무자에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양도는 법에 따라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도자가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합니다. 만일 글을 쓸 줄 모른다면 종이 위에 오른손을 대고 붓으로 손 모양을 따라 그립니다. 원본을 베낀 사본을 본 보고서에 첨부해 보내오니 장관님께서 검토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노비는 죽을 때 까지 살아야 하는 집에 일단 들어가면 심한 노역을 강요당합니다.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노비를 다루며 노비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때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법적으로 노비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어긴다 해도 처벌은 유배형에 처해질 뿐이며 실제로 처벌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처벌을 피하고 만일 주인이 고위 관리나 양반이면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노비는 아무리 심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자신을 소유한 주인을 고소할 권리가 없으며 배상금을 지불하고 방면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노비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면 뒤좇아 오는 하인들에게 쉽게 붙들리거나 길가는 행인에게 납치될 것입니다. 혼자 다니는 여자는 처음 만난 남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관아에 도움이나 보호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주인집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제가 앞서 장관님께 말씀드렸다시피 사가[私家]에는 남자 노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하인들 중 한 명을 선택해 자신이 소유하는 여자 노비와 짝을 지어 줍니다. 만일 하인이 이 일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다른 이유를 내세우면 하인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인과 노비 사이에 태어난 남자 아이는 혼인적령기가 되면 자유를 줍니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엄마의 신분을 이어받아 주인집에 머물거나 주인이 마음대로 팔아 버립니다. 한편으로 이것이 주인의 중요 수입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흉측한 제도는 인간을 생식 능력을 가진 동물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백성은 엽전 몇잎에 자식도 마누라도 노비로 팔아 먹고, 성리학을 통하여 사람을 교화 할 수 있다고 개소리로 짖던 씹선비는 여자 노비를 돼지새끼 접붙이듯 접붙여 번식시켜 팔아 먹으며 돈을 벌었다. 그 돈은 개씹선비의 주요한 수입원이다.
도대체 성리학의 나라 개조선의 도덕적 타락,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의 한계점을 증명하는 그 저력의 바탕은 성리학이었다. 즉 죄책감 없이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강건함을 가르치는 학문이 성리학이다.
배고픔과 노름빚에 처자식을 노비로 팔아 먹고, 개씹선비는 여종을 임신시켜 돼지 번식시켜 팔아 먹듯 돈을 벌고, 양반이 노비를 때려 죽여도 처벌을 하지 않는 극단적 도덕의 타락은 성리학이라는 유교와 종교성이 합쳐진 돌연변이 때문이었다.
즉, 공자의 유학은 전국시대라는 전쟁이 일상화 된 난세에 출세하는 방법을 가르친 처세학에 우주의 존재론적 이치를 입히고, 하늘이라는 종교성을 가미함으로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유학은 깊이가 없는 그저 한없이 가벼운 개똥철학에 불과한 허접한 학문이다. 그저 요즘 서점 입구에 진열 된 처세학서에 불과할 뿐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개똥철학이다.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小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 인생은 시간이 없다. 공부도 젊었을 때 해야 하고, 공부 안하면 인생 망한다)”
이런 처세학, 자기개발에 불과한 개똥철학이 개조선 개씹선비는 우주을 입혀 이기지발이라는 천하의 개구라로 바뀌게 된다.
“이기지발(理氣之發, 세상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나타나는 것’은 기(氣)이고,
그 움직임이 옳은지 그른지를 정해주는 기준이 이(理)다)”
나는 60 평생에 가까워 오지만 기(氣)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무협지에 나오는 소림사 땡중의 손에서 나오는 장풍인지, 푸닥거리 하는 무당이 점을 치는 기술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정보를 모아도 기는 없다. 그냥 미친새끼들의 생날구라이다. 그 생날구라가 판을 친 것이 성리학이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공자의 처세학적 자기개발서적인 공부의 의미가 개씹선비의 성리학에서는 인간을 바르게 만드는 기술로 격상 되고, 성스런 개씹선비의 개뼉따구의 높으신 인격과 학식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특권이 되고 나아가 공부는 ‘기의 운용 능력’을 키우는 훈련으로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천하의 개구라로 변질 된 것이다.
유신론을 부정하는 유물론, 있는 놈 것 도둑질 해서 먹고 살자는 미르크스의 자본론이 주체사상이 되며 민족, 인간 개백정 개정은 집구석의 개뼉따구 족보, 개씹선비의 성리학, 사회적 영생이 덧입혀졌다. 주체사상은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 집계, 발표한 세계10대 종교의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하여튼 더러운 개씹선비의 피는 이 세상 거악(巨惡)의 엑기스만 뽑아 악마의 논리를 만드는데는 탁월한 재능을 보유한 것 같다. 성리학이 그러하고 주체사상이 탁월하다. 권력을 쥔 개뼉따구는 그 어떤 악을 저질러도 그것은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인류 최강의 지배 이념을 만들어 낸다.
일국을 다스리는 왕은 오줌 쌀 시간도 없이 바빠야 한다.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군왕은 하루를 시작하며 영의정을 비롯한 방구끼는 개뼉따구 관료 수십명이 매일 3시간씩 경연이라는 이름으로 성리학 원리주의를 왕에게 가르치거나 논쟁을 벌렸다.
아무리 할 지랄 없는 등신들이 모여 국정을 펼친다 하여도 국사를 논해야 할 시간에 지나가는 개도 웃고 지나갈 미개한 성리학을 주제로 공자 또는 주자가 씨부린 말 몇마디 놓고 똥이네 된장이네 가르치고 논쟁을 벌리는 등신새끼들이 인류 역사에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이런 등신 염병지랄은 인류상에 그 전례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개조선 개씹선비 사회는 미개한 등신새끼들의 염병지랄판이었다. 매일 군왕과 대소실료들이 모여 매일 3시간은 경연으로 시간을 허비 하고 개지랄을 하면서 처먹고 놀며 국사는 언제 돌봤는지 시간이나 있었을까 싶다.
우덜나라의 빛고을 광주는 제사의 도시이다. 518광주사태 제사부터 요즘은 빨갱이 작곡가 정율성 추모까지 하루도 향불이 꺼질 날이 없다. 지역사회 살린다며 죽어라 전통시장, 5일장은 고수하면서 대형유통마트 하나 없는 80년대 고전적인 건물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전라도를 보면 그 미개하고 추악한 개조선 개씹선비 사회가 생각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설렁탕은 제사의 나라 개조선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동대문구의 선농단(先農壇)은 농번기기 돌아오기 직전 개조선의 왕이 직접 제사를 주관하며 농사를 가르쳤다는 신농(神農)씨와 후직(后稷)씨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제물로 바친 소를 통째로 잡아 끓여 한그릇씩 백성에서 나누어 주던 음식을 선농탕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설렁탕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왕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죽은 귀신 달래는 제사였다. 농사와 비단치는 것이 잘되게 해달라는 선농제(先農祭)와 선잠제(先蠶祭), 몇천년전 뒈진 공자와 유교 성현을 위한 문묘 석전(文廟釋奠), 비안오면 기우제, 날씨를 달래는 기청제, 왕실 조상을 위한 종묘제례,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사직제례, 왕실 출생·혼례, 국상, 즉위, 책봉, 외교적 사건, 혜성, 일식, 지진, 홍수 같은 천문 이변 등등 왕의 무릎이 성할날 없이 죽은 귀신 불러내며 제사를 지냈다.
그 외에도 대신과 종친이 주관하는 제사, 지방관아가 주관하는 제사 등 조선 팔도 향불이 끓일 날이 없었다. 고을 집단 단위로 지방 군수나 백성이 주관하는 성황제와 산천제, 명산대천 제사, 지방 사직단 제사 등 제사라면 빤쓰 벗고 지랄 떨며 미쳐 날뛰었다.
일년 365일 향불 마를날 없는 제사는 통치의 정당성을 선언하는 것이었으며 종교행위를 통해 모든 악행을 정당화 시켰다. 왕과 양반이 백성의 살점을 뜯어 먹고 뼈를 갈아 먹으며 저지른 죄악 조차도 하늘의 뜻이라며 개구라를 치며 더러운 합리화 수단이 제사였고 성리학이었다.
허구헌날 향냄새가 나라에 진동하는데 그 나라가 잘된다면 또는 향불 피우는 것이 일상인 전라도 광주가 잘된다면 그것이 미친 세상인 것이다. 그 어떤 죄악과 개지랄의 정당성은 하늘(天)이었으며 염병 맞에 뒈질 왕과 양반 개뼉따구들의 정당성은 천명(天命)이었다. 즉,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해 정치, 도덕, 의가 통합된 이념 신정국가이며 무당 푸닥거리 국가였다.
따라서 맹목적 복종만 있었고 왕과 양반은 어떤 죄악을 저지르든 무슨 개지랄을 하든 정당화 되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노비를 때려 죽여도, 강간을 해도 무죄였고, 돼지새끼 접붙여 번식시키듯 팔아 먹어도 죄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피를 빨리고 살점을 뜯어 먹혀도 백성은 감히 저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북괴를 보면 인민들이 어떻게 피를 빨리고 살점을 뜯어 먹히는지 또 인민이 저항하지 못하는지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부산에 도착한 고니시 유키나카와 가토 키요마사는 15일만에 한양에 도착하여 선조의 목을 따려 했다. 지금도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면 15일은 걸릴 것이다. 즉 침략군이 부산에 도착하여 보름만에 한양이 털린 것은 사실상 군사적 대치나 저항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개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사무라이들은 전국시대 다이묘만 잡아 죽이면 전쟁은 끝났다. 경복궁에 입성하여 선조의 목만 따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선조는 똥줄이 빠지게 평양으로 신의주로 도망갔고 짱개국으로 망명까지 하려 했다. 그리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백성은 여전히 선조를 왕으로 섬기며 저항했다.
사무라이는 패닉에 빠졌다. 다이묘 즉 성주가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도망간 다이묘를 백성이 섬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이묘에게 전쟁 중에 죽으면 죽었지 도망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고,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비겁한 놈으로 길가에서 맞아 죽거나 또는 측근의 배신으로 모가지가 당장 날라갔다.
사무라이 눈에는 도망간 등신새끼 왕놈에게 충성하는 백성이 있어 도대체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이유를 성리학에 절여진 백성이고 주체사상으로 마취 된 인민으로 결론 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냅다 튄 왕놈에게 충성하는 백성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무라이의 충격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컸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약한 모습만 보이면 등뒤에서 칼을 꼽고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는 사무라이를 어찌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어떻하면 돈만 밝히고 수틀리면 칼질하고 배신하는 사무라이 즉 배신의 문화와 유전자를 없앨 수 있을까가 통치의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개조선을 생각했다.
“개조선을 정벌할 때 도망간 왕놈에게 백성이 충성한다. 도대체 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각은 성리학에 도달했다. 1년 365일 향불 끊이지 않은 신정 제정일치의 개조선의 성리학에 무릎을 쳤다.
“그래 이것이다! 성리학으로 절이면 된다. 그러면 배신하지 않고 노예가 되어 충성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는 동군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을 이어 받은 이시다 미츠나리를 따르는 서군이 세키가하라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렸다. 승리를 거머쥔 도코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를 손에 쥐었고 그 즉시 개조선 개씹선비의 성리학 보급에 나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주자학(朱子學)을 통치 이념으로 채택하고 유학자 하야시 라잔 등용한 후 막부 관학(官學)으로 삼았다.
드디어 개조선 개씹선비의 성리학이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이념이 되었다. 그 더럽고 추악한 개씹선비의 성리학이 사무라인 우물에 독약을 푸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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