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올 김용옥이 동학에 심취하여 주구장천 동학 역성 들기 바쁘다. 동학반란군 현장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입만 열면 동비어천가 부르느라 정신이 없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유교에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까지 모두 섭렵한 자칭 세계적 석학이 다 늙어 뒷방 노인네가 되어 동학에 심취하고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성경을 통달하여 성경에서 구약폐기까지 부르짖는 도올의 지성에 심각하게 의문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뭐 세계적 석학이라면 한 시대 획을 긋는 저서 정도는, 세계적으로 읽히는 저서 한권 정도는 있어야 체면이 설 것인데 글쎄 도올이 쓴 책 중 센세이션을 일으키거나 외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는 책한권 조차 없는 것을 보면 도올이 한참이나 부족한 학자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핍박 받고 있는 천재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래도 국제적으로 뽀대 나는 저서 한권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동학은 살펴 보아야 할 일고의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천박하기 그지 없는 종교요 철학이며 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학이 탄생한 것 조차 한심하다. 오죽 열등감이 심했으면 서양과 서학에 반대한다고 동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을까 애절하기 짝이 없다.
동학의 마지막 법통을 자처하는 손병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위 양아치질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다 동학에 입문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고 당대를 아울렀던 자산가로 지금의 재벌 정도는 찜쪄 먹은 것이 손병희이다.
일본에서 자산가 행세를 하며 일본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호의호식하였고, 러일전쟁이 벌어지자 통크게 1만원이라는 거금을 일본에 납작 엎드려 군자금으로 바쳤고 이용구를 보내 일본군 후방지원을 하게 만든 것이 손병희이다. 당시 1만원은 지금 돈으로 족히 수십억에 이른다.
손병희가 일본으로 간 것이 동학을 핍박하는 일본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인데 아무리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것이 근현세사의 일상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갔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아닌가 싶다.
손병희는 단군 이래 최초로 자가용 승용차를 굴린 거부였다. 고종이 어차를 캐딜락으로 구입하자 손병희는 자신의 자가용을 고종에게 바치며 임금 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수 없다며 자신의 캐딜락을 고종과 바꿔 타고 다녔다. 이정도의 부라면 이병철이나 정주영이 가졌던 부도 울고 갈 것이다.
손병희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산제 국가 최고 부자 고종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정도의 부를 축척한 것은 동학활동을 통해 돈을 긁어 모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우금치 전투에서 총알도 비켜 간다는 궁궁을을(弓弓乙乙) 부적을 붙이고 우금치 계곡에 참전 농민 9할의 생명을 갈아 넣을 때 지휘관 전봉준이 살아 남은 것도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과부적 화력의 열세를 벗어날 수 없어 그토록 죽어야 했다면 전봉준은 살아 남아서 전장을 벗어 나서는 아니 되었다. 그리고 게틀링건으로 우금치 계곡을 피바다로 만든 조선관군은 방어에만 주력했을 뿐이다. 따라서 언제든 퇴각하면 대부분 농민의 생명은 살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인명을 우금치에 갈아 넣은 전봉준은 나뿐놈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어야 할 것이다.
처연하리만치 궁궁을을 신통한 부적으로 혹세무민하며 수 많은 생명을 죽음의 우금치 계속에 밀어 넣은 글줄이나 읽었던 몰락한 양반의 후예 전봉준은 양심가 도올이 재평가 해주었으면 한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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