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바로 어제 2023 년 11 월 17 일이었다.
필명 [筆名] 안동 촌 노 [安東村勞] 김 성복이가 이곳 논장과 좌우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 신문사 토론방의 문지방이 닳도록 무려 15 년 동안 소위 논객이랍시고, 동서 팔방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수억 자의 횡설수설에 잡설을 쓰고 다니면서 수십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글줄이나 쓴다는 수 많은 논객 분들과 수없는 토론도 하여보고 어떨 적에는 사상과 이념과 종교의 색체가 다르고 정신적 사고가 틀린 논객 분들과 밤을 새워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던 그때가 지금은 그립습니다.
이미 저의 글을 보신 분들은 안동 촌 노 김 성복이가 무식하기로 소문이 났고 간덩이가 배밖에 나온 어리석은 자라는 것은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허나, 저가 단 한 가지 자랑할 것은 지금까지 여든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직까지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도둑질을 하지 않았고, 약속을 칼같이 지켰고, 내 몸이 희생이 되더라도 남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는 것을 나의 신조로 삼고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저가 이토록 진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본에는 저가 어릴 적
지금으로부터 65 년 전 초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지덕노체[知德勞體]의 이념인 4-H 생활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국가 경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과 북의 사상과 이념에 의한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육이오의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인한 남 북한 주민들이 무려 350 만 명이나 전쟁으로 죽었고, 부상자만 해도 군인과 민간인들이 850 만이고, 남북한 이산가족 또한 일천만이 넘었습니다. 그야말로 남북한이 폐허가 된 상태였고, 그 후유증으로 인한 우리의 경제는 지디피가 그 당시 국민 일인당 45 달러였고,
우리는 미국의 경제지원과 식량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 갔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의 후진국보다도 더 못살던 그 시절에 우리는 생소한 사회단체를 알았고, 외국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4-H 봉사단체가 생긴 것이고, 저 역시 어린 나이에 농촌을 발전시키고 우리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봉사 할 수 있는 단체라는 것을 알고, 저는 가정이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간신히 마치고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그 시절에
우리 마을에 매화 4 - H 를 조직한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저의 나이 열 네 살 인 1960 년입니다. 그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오 일 육 군사혁명을 하던 때입니다. 우리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임시로 마련된 회관에 모여서 4-H 서약과 노래를 불렀고, 농촌 과제 활동 마을 봉사활동에 관한 토의와 4-H 회관 건축에 관한 문제 토의 등, 그야말로 우리는 주경야독의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동변 상련의 친구들과 모여서 마을발전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힘 드는 줄 모르고 보람을 가 졌습니다. 특히 일 년에 한 번식 개최되는 농촌지도소의 경진대회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저는 육형제의 막내라서 상급학교에 갈 여력도 없었지만, 부모님을 모시는 가장으로서 이미 주어진 운명 또한 어쩔 수 없었기에 저는 저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저의 삶으로 받아 드린 것이고, 지금 것 지나온 삶에 대하여는 원망을 해본적은 없었습니다. 남들 보다가 더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아왔고
지덕노체의 4-H 인의 정신으로 살아왔기에 오늘날 그래도 김 성복이란 이름 석 자는 남기지 않았을 가하는 위안도 가져봅니다. 그래도 대대손손 남겨질 족보 한 자락에 김 성복의 이력 난에 청백리상과 효자 상까지 받은 것이 기록되었다면, 그래도 지덕노체의 4-H 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해 봅니다. 그동안 저가 살아온 이력에 대하여는 독자님들께서 저가 여기 올린 수억 자의 글을 보시면 김 성복이란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에 대하여는 충분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 것 안동 송현 초동학교 그것도 가난하여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매년 받아보는 성적표에 전교에 꼴등만 하던 김 성복이가 그래도 지금은 잡설일망정 책을 열여섯 권이나 내엇고, 전국에 기라성 같은 대 논객 분들 틈에 끼워져서 그나마 대표논객이란 간판을 걸고 칼럼이라도 쓸 정도가 되었으니 그래도 정치인들처럼 자고 새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 보담은 멋지게 살았다고 봅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도 그 사람이 빨 갱이던 노랑이던 파랑이던 잘한 것에는 칭찬을 하여주고 잘못한 것에는
비록 그 사람이 최고 권력자라도 이놈 ! 저놈 ! 때로는 쌍욕까지 하면서 올바른 길로 가라고 글을 씁니다. 글쟁이는 사실적으로 펙트가 있고 진실 되게 역사적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글쟁이가 이리 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 그것은 글쟁이가 아니라 사기꾼입니다. 어제는 안동에서 안동시 4-H 인 전진대회를 안동시 모 호텔에서 경북의 각 기관장님들과 안동의 기관장님들이 함께하시고, 4-H 본부회원들과 지역회원들과 안동농업 생명 고 학생회원들과 지도교사님들과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신 가운데
영광스럽게도 저와 최 동균 후배와 나란히 안동 고전 문화의 상징인 취타대의 웅장한 연주 속에 입장하는 영광과 탁 상훈 본부회장님과 손 진수 지역 4-H회장님의 화환까지 받고 보니 감동이 격해서 눈물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안동 촌 노 김 성복의 60 년 4-H 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는 크나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4-H 활동이 안동의 행사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과거 60 년 전처럼 들불같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살리는 대 변혁의
물결이 일어나길 저의 진정한 바람이고, 우리 4-H 인들의 바램 일 것입니다. 우리의 썩어빠진 정치가 지덕노체 4-H 이념에 백분의 일이라도 딸아 온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최고의 선진 대국이 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다는 정치인들이여 ! 그대들이 진정 우국충정의 정치 지도자라면 우리 4-H 인들의 지덕노체를 가슴깊이 아로 색이고 국태민안의 길라잡이가 되라 ! 국민을 하늘같이 알고 민심에 순응하는 정치인들이 되고 올바른 양심을 지켜 달라 !
이글은 전국의 350 만 선후배 4 - H 회원들과 먼저가신 동지 여러분들께 올립니다.
* 바쁜 일정에도 어제 행사를 빛내주신 국민가수 진성님께도 고맙다는 인사올립니다.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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