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프랑스 스위스와 독일 등을 포함한 갈리아를 정복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백만을 죽이고 백만을 노예로 삼았다. 그 시대 백만의 포로를 잡아 관리 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병력이 필요하다. 그 시대 로마 인구가 100만이 안 된 것으로 보아 정치적인 쇼맨십이 강한 카이사르가 자신의 전공을 부풀렸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역사 상 최고의 군인 중 한명으로 올려도 부족할 것이 없다.
인천상륙작전만 알려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카이사르라 부른다. 그만큼 맥아더는 탁월했고, 전무후무 한 전공을 세웠다. 1차대전과 2차대전, 한국전을 모두 치룬 현역 장성은 없을 것이다. 1차대전 때 프랑스 전선에 투입 된 맥아더 장군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며 초인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일년반 동안의 전공으로 훈장만 십수어개 받을 정도로 백전백승의 명장이 된다. 가히 이순신 장군의 전공에 필적할 만 하다.
1차대전 종전 후 은퇴한 맥아더는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다. 탁월한 군인으로서 그를 능가할 전쟁 지휘관이 없었던 미국은 1941년 진주만 공습이 벌어지면서 맥아더에게 다시 복귀를 요청하여 태평양 전쟁을 이끌었다.
세계 최고의 사관학고 웨스트 포인트를 역대 최고의 점수로 수석 졸업한 맥아더는 모든 것이 신기록이었다. 최연소 육군 사관학교 교장, 최연소 육군 소장, 최연소 육군 대장이자 육군 참모총장, 육군 원수 등 군인이라면 맥아더의 스펙을 쫒아갈 수 없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태평양 전선을 구축한 일본의 허를 찌른 개구리 뜀뛰기(Leapfrog) 전술로 병력과 물량에서 열세에 놓인 미국이 일본에 연전연승 했다. 태평양에 펼쳐진 전선을 격파하고 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전략을 바꾸어 개구리가 뛰듯이 주요 거점만 점령하는 모험적인 전술이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물량으로 압도하고 있는 일본의 전선을 격파했고 다시 필리핀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맥아더는 태평양 전쟁에서 총 87차례의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단한번의 실패도 없었던 태평양 전선의 상륙작전은 천재적인 맥아더는 모두 성공시켰고, 이러한 탁월한 전술적 능력은 모두가 반대하는 인천상륙작전을 5000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성공시켜 전쟁의 게임체인저를 만들었다. 이미 맥아더는 인천 상륙작전을 사전에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2개의 전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미 극동군 사령관이 된 맥아더에게 배정된 전쟁 물자는 유럽전선에 있던 패튼에게 배정된 물량의 5%에 불과했다. 병력과 물량에서 모든 것이 열세였고, 항공모함 전력은 절대 열세에 있었다. 개구리 뜀뛰기 전술로 맥아더는 최소의 비용, 최소의 인명피해로 최단의 시간에 전쟁을 끝냈다.
맥아더는 일본에 항복문서를 받기 위하여 적국 일본에 갈 때 측근 100여명의 대동하고 미주리호에 올라 항복문서를 받았다. 최소한 100만이 사망한 원폭 투하와 열도 대공습으로 증오가 극에 달한 일본을 상대로 맥아더는 측근 100여명만 대동하고 열도에 가서 일본을 굴복 시켰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도쿄 다이치생명보험 빌딩에 두었다.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는 패전국 일본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미국으로부터 부여 받아 일본 통치를 시작한다.
항복 몇 개월 전 미국은 도쿄에 네이팜탄을 쏟아 부어 10만명이 넘는 도쿄시민이 사망했다. 도쿄는 미국에 대한 증오가 넘쳤다. 일본점령군 사령관이 된 맥아더는 도쿄에 도착한 첫날 군용지프에 올랐다. 맥아더는 무장하지 않은 운전병과 부관만 대동하고 도쿄 시내를 곳곳을 돌아 다니며 시찰했다.
모두가 경악했다. 특히 맥아더의 측근은 전쟁으로 증오가 넘치는 점령지를 점령군 사령관이 운전병과 부관만 대동하고 테러의 위험을 안고 다니는 것은 위험을 자초한 것이라 걱정하며 다음 부터는 무장 군인의 호위를 받고 다녀 달라고 했다. 그러자 맥아더는 일본은 그러지 않는다 라며 걱정 하지 말라고 했다.
칼의 나라 일본은 숱한 전쟁 속에 승패에 대한 철저한 승복은 그들의 민족성이었다. 전쟁 패배국으로서 일본은 승복한 것이다. 항복문서를 받기 위하여 고작 100여명의 실무진만 대동한 것,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단독이다시피 도쿄를 시찰 한 것은 맥아더가 누구 보다도 일본의 국민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령군 사령관으로 절대적 권력을 쥐고 일본을 통치하게 된 맥아더는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없애는 것이었다. 국부 이승만이 분석한 태평양 전쟁의 원인이 된 천황을 현인신으로 생각하는 미카도이즘을 없애는 것이었다.
도쿄에 입성한 맥아더는 그를 환영하는 일본 군중을 향해 연설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입니다 경제문제는 군대문제입니다 군대문제는 정치문제입니다 정치문제는 정치가 양심의 문제입니다 양심문제는 도덕문제입니다. 도덕문제는 종교문제입니다 종교문제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그는 태평양 전쟁에서 하나의 측면을 종교전쟁으로 보았다. 즉 기독교 하나님과 아마테라스오미가미(천조대신, 일본인의 섬기는 최고의 신이며 현인신 천황을 의미하기도 한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천황을 전범으로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이 70%를 넘어가고 있었다. 백악관의 뜻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전범 재판소를 지휘하여야 할 맥아더는 고민이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장 17-19절)”
맥아더는 천황의 문제로 고심 끝에 용서를 베풀고 살려 두기로 했다. 천황을 처형하여 분노의 역사를 두는 것 보다 신격화 된 현인신 천황을 용서하고 한 명의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맥아더는 자신을 찾아 온 일본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쇼와천황을 군의관이 나가서 맞이하게 하였고, 방문한 천황과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키183cm의 맥아더와 키165cm의 천황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서 쇼와천황은 엄청 초라하게 사진이 찍힌다. 맥아더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명석한 두뇌를 가졌던 육사생도 시절 여자들의 로망이었다. 하루에 8명의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맥아더와 나란히 사진을 찍은 일본의 쇼와 천황은 초라했다.
두 사람의 동작 또한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쇼와천황이 차렷 자세로 바짝 긴장하고 서 있지만 맥아더는 짝다리를 짚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서있는다. 천황가의 모든 사생활이 극비에 붙여진 일본에서 이 한 장의 사진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다. 살아 있는 신으로 섬긴 쇼와 천황의 모습을 본 일본 국민은 충격에 빠진 것이다.
사진이 공개 되자 일본 여자들로부터 미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40만통의 러브레터를 받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맥아더는 일본 천황에게 신이 아닌 한명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1946년 1월 1일, 쇼와 천황은 “국운 진흥 조서” 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신(現人神 아라히토가미)”이 아님을 선언하는 인간선언을 발표하게 했다. 맥아더는 천황의 모든 사생활이 공개 하게 만들었고 천황의 모든 신성은 제거하여 일본을 제정일치의 미개한 사회에서 비로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다.
맥아더는 일본 헌법부터 정치, 사회의 모든 것의 개혁에 나섰다. 하다 못해 노동문제까지 개입하여 개혁했다. 화혼양제를 채택하여 일부 귀족이 있는 계급제 질서의 일본사회의 모든 계급을 폐지하였다.
태평양 전쟁의 승전국으로서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단 한푼의 전쟁 배상금을 받지 않았고 일본 부흥을 도왔고 막대한 원조를 통해 굶주리는 일본을 도와 주었다. 그렇게 미국은 일본을 용서했다.
맥아더에게 오늘의 일본은 감사를 표하고 있다.
"맥아더의 다양한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야말로 일본도 여기까지 부흥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6.25 사변에서 맥아더와 트루먼은 마찰을 일으켜 맥아더는 해임 당하고 국회에서 그 유명한 노병은 사라질 뿐이라는 고별연설을 했다.
“현재까지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대한민국만이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공산주의와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이 보여준 용기와 불굴의 의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기로 각오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한 마지막 부탁은 제발 태평양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쟁터에 여러분들의 아들들을 남겨놓고 막 떠나왔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모진 시련을 견뎌 왔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했다고 주저없이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들을 보호하고 시간적 손실과 인명의 희생을 최소화 하면서 이 야만적 전쟁을 명예롭게 끝내려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점차 증대되고 있는 한국전쟁의 유혈참극은 저를 깊은 고뇌와 비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용감한 젊은이들은 문득 제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며 언제나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52년의 군 생활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저는 20세가 되기도 전에 군에 입대했고 그것은 제 소년시절의 모든 희망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포인트 연병장에서 선서한 이래로 세계에는 수많은 변동이 일어났으며 저의 희망과 꿈도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저는 그 시절 중 가장 즐겨 부르던 군가 중 하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렴은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아주 당당하게 외칩니다. 그 노래 속의 노병처럼 이제 저는 군인생활을 마감하고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명을 깨달았으며 그 사명을 완수하려고 애쓴 한 노병으로 말입니다."
국회 연설을 마친 맥아더는 700만의 환영인파가 모인 뉴욕에서 카퍼레이드를 받으며 영광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그 시대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으로서 관심은 오로지 유럽이었다.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태평양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6.25 사변 후 소련은 50~60년대 태평양을 건너 공산주의 확산하려 했고, 일본은70~80년대 부흥하여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경제적으로 폭격했고, 90년대부터 중국은 태평양 진출을 위해 끊임없이 도발하며 남지나해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장하면서 노쇠한 대륙 유럽은 기울었고 문명의 진보는 태평양을 건넜다. 일본이 세계 열강의 반열에 들어가면서 서막을 올린 태평양시대는 현재까지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국부 이승만은 태평양의 중요성을 한성감옥 때부터 간파하며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이어 태평양 전쟁을 예견했고 일본의 패망을 예견했다. 그리고 이어질 공산세력의 태평양으로의 팽창을 내다보고 있었다.
맥아더는 국부 이승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퇴임 국회연설에서 태평양을 포기 하지 말 것과 장차 태평양으로 뻗을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아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시대를 내다 본 천재 이승만과 천재 맥아더는 온갖 음해와 시기 속에 살아야 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일군 이승만의 외교 독립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지력이 없었던 신채호는 이승만을 공격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맥아더 또한 온갖 음해와 비방 속에 살아야 했다. 평생 전쟁광, 불복종의 대명사, 과대망상증 환자, 마마보이, 오만한 사기꾼 지독한 거짓말로 중대한 실패를 감춘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에서 탄핵을 당하는 수모까지 감수해야 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 그들의 길은 외로웠다, 그러나 천재들로 인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시대를 뛰어 넘은 천재 이승만과 맥아더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보았다. 맥아더가 소령이었던 젊은날 한미협회 파티에서 만난 두천재는 평생 우정을 쌓았다. 그 우정의 근본은 너무나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1932년 육군 참모총장이 된 맥아더는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연설했다.
”평화주의와 그 동조자 공산주의가 미국을 둘러싸고 있다. ... 한국인들이 죽음의 비명을 지를 때 누가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는가?“
맥아더는 공산주의가 한반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뻗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상태에 있는 한국을 지키는 것이 곧 미국을 지키는 길임을 그 시대 역설하고 있다. 이승만은 변함없이 한국을 지키는 길이 곧 미국을 지키는 길임을 미국에 강력하게 질타했다. 미국은 맥아더와 이승만을 ”전쟁광“과 ”독립에 미친 늙은이“로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두 천재의 예견은 한치의 오차 없이 불행의 역사를 치유했다.
유명한 역사가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새로운 태평양시대 21세기의 주역이 되려면 첫째, 민주주의 수준 둘째, 도덕적 수준, 셋째, 생산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했다. 태평양 시대 폴케네디가 말한 세가지 조건을 갖춘 국가는 한국과 일본 두 국가만 충족했고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자유주의 민주국가로 만든 이승만. 제정일치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자유 민주국가로 만든 맥아더 천재들은 폴 케네디 보다 수십년 앞서 그 시대를 선도했다.
맥아더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깊었다. 러일전쟁이 촉발 되자 맥아더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는 조선에서 1년을 근무했다. 고종은 아서 맥아더를 극진히 대접하며 조선의 안위를 부탁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었던 맥아더는 아버지의 신앙심을 물려 받았다. 아서 맥아더는 유언으로 하루에 2장씩 성경을 읽을 것을 남겼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다.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읽지 않고 밤을 보내거나 잠을 잔 적이 없다”
이승만과 맥아더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들은 최초 공산주의 팽창과 맞선 영웅이었다. 두 영웅의 투혼은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더 이상 무력 침공으로 태평양을 건너 공산주의가 확산 되는 것을 막았다. 맥아더는 6.25 사변을 두고 자신의 사명을 밝혔다.
“나의 사명은 기독교를 위하여 아시아를 확보하고 공산주의로부터 막아서는 것이다"
신을 부정하는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종교는 인민 대중의 아편이며 모든 비판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 되며 무신론이 시작 되는 곳에서 공산주의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을 통해 출발한 현대문명과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곧 영적 전쟁이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는 십계를 들고 있는 모세가 정문 가운데 세겨져 있다. 이는 곧 미국의 헌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모세가 기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받드는 나라로 건국 된 것이다.
맥아더는 6.25 사변을 공산주의로부터 기독교를 지키고 기독교 위에 세워진 미국을 지키는 길로 보았다. 뉴욕에서 열린 맥아더 퇴임식 때 700만명이 몰려들어 맥아더의 카퍼레이드를 지켜 보았다. 맥아더는 충분히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 보다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것이 우선 이었고 대통령의 길을 포기하고 트루먼과 대립한다. 맥아더의 부관이었던 아이젠 하워가 트루먼에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해방을 맞이하고 조선으로 귀국할 길이 없었던 이승만에게 맥아더는 비행기를 보내 주어 귀국하게 하였고, 대통령 취임식 때 참석하여 든든한 신앙적 동료로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울 동지로서 다짐 한다.
만일 한국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침공을 받는다면 나는 캘리포니아를 방위 하는 것처럼 한국을 방위 할 것입니다
맥아더는 적화의 붉은 강에서 대한민국을 건져 준 은인이다. 그를 두고 강정구 같은 자는 “완전한 식민지총독” “3.8선 분단의 집달리”와 같은 욕설을 한다. 강정구의 역사 인식은 차치하고 교수로서 역사서라도 읽어 본 후 그와 같은 발언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 대학이 아무나 데려다 교수를 시키는 후진적인 교육기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통탄 스러울 뿐이다. 세상에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 한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다. 누가 한권의 책 밖에 읽지 못한 자를 이길수 있을까 싶다.
당대를 아울렀던 천재이며 각별한 신앙동맹으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었다.
오 주님, 우리 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연약할 때에도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두려울 때에도 자신을 직시할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정직하게 패배하였을 때 자신을 갖고 당당할 수 있게 하시고, 승리하였을 때 겸손하며 부드럽게 하소서.
우리 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 기도하오니, 우리 아이를 쉽고 편안한 길보다는 긴장의 길, 어려움과 도전의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 아이가 폭풍 가운데서도 바로 서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낙오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알게 하소서.
우리 아이가 자라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삶의 목적이 높은 사람, 다른 사람을 다스리기 전에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웃는 법을 알면서도 우는 법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 기도하오니, 이 모든 것 위에 유머 감각을 더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 아이가 언제나 신중하면서도 그 자신이 너무 심각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아이가 겸손하게 하시어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함에 있으며, 진정한 지혜는 열려진 마음에 있으며, 진정한 강함은 온유함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러면, 저는 그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제가 헛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맥아더의 아들을 위한 기도-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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