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완연하진 않지만 이제야 이곳 천등산자락은 봄이 무르익고 있는 듯 하다. 갑자기 집안에 핀 꽃들을 사진에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꽃들에 들이 대었다. 접사도 해 보고 풍경으로도...
가장 먼저 집 앞에 전개되는 천등산 지류를 찍어 보았다. 희끗 희끗 산 벗 꽃이 만개를 했다. 다음은 꽃 잔디, 그리고 솔직히 매년 화사하게 피는 꽃이지만 이름을 모르겠다. 그 다음이 자두 꽃, 배꽃(梨花)이다.
난 이 배꽃을 볼 때마다 시 한 수가 늘 생각난다.
이조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아주 오래 전 배꽃을 보며 위의 시를 흥얼거리자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기억력 좋다고 할 때 잠시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ㅎ,,
맨 마지막 찍은 것이 도화(桃花) 즉 복숭아꽃이다. 집안에는 두 종류의 복숭아가 있다. 소위 개 복숭이라 불리는 산 복숭아 그리고 정식 과일 복숭아가 있다. 꽃은 개 복숭아가 더 아름답다. 더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과일 복숭아꽃은 약간 백색에 가까우나 색깔이 보다 홍조(紅潮)를 띠는 것이 더욱 자태(姿態)가 요염한 듯 하다. 복숭아 사진 평을 하고보니 문득 옛 얘기 한 자락이 생각나 덧 달아 본다. 첨언한다면 아래의 얘기 도화부인은 자태가 요염한 개 복숭아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며....
춘추시대 진(陳)나라 군주인 장공(莊公)에게는 절색의 두 딸이 있었다. 특히 둘째 딸은 천상의 선녀가 내려온 듯 달나라의 항아 같은 미모였고 이름을 규씨라 했다. 두 딸은 성장하여 큰딸은 채(蔡)나라의 애공(哀公)에게로 시집을 갔고 둘째 딸은 식(息)나라 임금에게 시집을 갔다. 어느 때인가 식 나라 왕후인 규씨가 친정 방문을 하며 마침 언니와 형부도 볼 겸 채나라를 경유하게 되었다. 천하절색인 처제를 소문으로만 듣고 처음 본 채애공은 처제의 미모에 맛이 간 나머지 끔찍하게 접대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나치게 오버하고 나아가 음담패설을 마구 날리며 요즘으로 치면 성추행을 하고 말았다. 이에 뚜껑이 열린 처제 규씨는 자리를 박차고 그 길로 친정으로 갔고, 친정을 다녀오며 형부의 나라에 들리지 않고 우회하여 본국으로 돌아온 뒤 형부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과 성추행을 낱낱이 남편에게 일러바쳤다. 자초지종을 들은 식 나라 임금 역시 뚜껑 열리기는 마찬가지였고, 얼굴 모르는 손윗동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었다.
당시 남방에는 신흥강국으로 초(楚)나라가 득세를 하고 있었다. 식 나라는 강국인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으나 채나라는 초나라를 변방 오랑캐국가로 치부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빌미하여 식 나라는 초나라를 꼬드겨 채나라를 치게 했고 결국 약소국인 채애공은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겨 죽을 위기에 있었으나‘육권’이라는 초나라 충신의 간언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니 자신이 그러한 처지가 된 것은 손아래동서인 식나라 임금의 농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제를 성추행한 잘못은 있지만, 나라가 망할 정도의 보복을 당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뚜껑이 열리는 일이겠는가. 동서와 처제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다.
원래 초나라 초문왕(楚文王)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호색한(好色漢)이었다. 처제의 미모에 반하여‘히야까시’좀 했다가 전쟁포로로 전락한 채애공은 처제의 미모가 천하절색이라는 사실을 초문왕에게 고해 바쳤다. 이에 호색한인 초문왕은 채애공과 밀계를 나눈 뒤, 식나라로 쳐들어갔고 식나라 임금을 포로로 잡아 그를 살려준다는 명목으로‘규씨부인’을 초나라로 데려와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결국 식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규씨의 눈언저리가 도화 같다고 해서 그 후로 그녀를‘도화부인’이라고 했으며 오늘날도 한양부 성밖에 도화동이 있고 그곳에 도화부인의 묘와 사당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후일담이지만, 초나라로 간 도화부인은 초문왕을 냉대 하였으나 초문왕의 힘을 빌려 채애공을 죽이고 채나라가 망한 후에야 초문왕의 정식부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반강제에 의해 초 문왕의 부인이 된 그녀는 두 아들을 낳았으나 억지로 두 남편을 섬긴 스스로가 수치스러워 평생 입을 다물고 살았다고 한다.
후일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한유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식부인을 추모했다고 한다.
막이금시총능망구일언(莫以今時寵能忘舊日恩):지금 사랑을 받는다 해서 옛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간화만안루불공초왕언(看花滿眼淚不共楚王言):꽃을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 초왕과는 말도 나누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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