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주사파들의 만행의 끝은 어디인가 ?
소위 여러 논장에서 되먹지 못한 잡설일망정 좌우 당파와 사상과 이념을 가리지 않고 여려 논장을 찾아다니면서 무식한 글 질을 한지가 어언 햇수로는 15 년만이다. 옛날 같으면 십년이면 강산이 한번 반 바뀌었겠지만, 지금 같으면 강산이 조석지변으로 분초단위로 바뀌어 진다. 이곳 시골에서 조그만 스쿠터를 타고 시내를 나가다 보면 양편에 보이는 길가에는 낯모를 건물들이 지어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각양각색의 모습들로 휘황찬란하게 보여 진다. 그리고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 하교 시에
배가 고파서 길가 양지바른 곳 산비탈에 잔대와 도라지 쐬기를 빼먹고 질레를 꺾어 먹던 곳이 이제는 간곳이 없고 그곳에는 무슨 공장 무슨 상점으로 하루가 모르게 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지인이 고향을 떠 난지 오십년 만에 자기의 고향인 우리 마을을 찾아오니 강산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다는 옛시조가 무색 하리 만큼, 과거 자기가 살고 있던 집과 터는 간곳이 없고 우렁찬 낯선 건물이 자기집터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간판도 큼지막하게 색 여 져 있고 자기가
오십년 전에 보았던 옛 친구들은 백발이 성성하게 허리가 굽어 진채로 지팡이를 짚고서 오래 살려고 마을 주변을 운동이라 고, 볼품없이 어정거리는 것만 보일 뿐이고 그래도 과거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니,” 아무개 아니냐 ? 로 첫마디부터 “야” ! 오랜만이다. 라고 인사를 건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래서 인생무상이란 것인 모양이다. 육십년 전 우리들이 어릴 적에는 학교를 마치고 꼴망태 가득 채우고서 끙끙 거리면서 집에 갖다 놓고서
저녁 일직 먹고 달밤에 체조하듯이 요즈음처럼 공이 없어서 돼지 밥통에 바람을 잔득 넣어서 공차기를 하고 그것도 구하기 어려워서 새끼를 꼬아서 둥글게 공처럼 만들어서 작물수확이 끝난 밭에서 양쪽에 그림을 그려 놓고서 이쪽은 너 그들 꼴 대, 저쪽은 우리들 꼴 대라고 이름을 지어 놓고 편을 갈라서 겨울철이지만 비 오 듯이 땀을 흘리면서 축구경기를 하던 그때 그 시절의 얘기를 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부모님들이 자식들 보고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학교를 갔다 오면 우선 소 먹이풀부터
배어오고 외양간 거름 쳐내는 일부터 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래서 공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고, 기말 시험 시간에는 거의 낙제점을 받을 정도였고, 선생님들의 매서운 꾸지람과 함께 손바닥이 빨갛게 부르트게 맞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막내라서 국민 학교 육학년 졸업할 때까지 교복을 새로이 맞추어 입어본 적이 없었다. 다섯 분 형님들이 입고 다 떨어진 교복을 얼금얼금 지어 입고 학교에 가면 여학생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 힘든 세월을 겪은 것이
어찌 나만의 세월이 엇을 가 ? 그나마 나는 4 킬로의 거리에 있는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 소주 만들고 남은 술 찌꺼기라도 사카린에 타서 먹고 배고픔을 해결 했지만, 우리 보다가 더 먼 오지의 동기들에게는 그것도 꿈일 뿐이다. 그렇게 힘든 모진 세월을 겪은 우리들이 박정희 같은 성군을 만나서 4-H 지덕노체의 이념을 배웠고, 새마을 운동의 자조 근면 협동이란 기치 앞에 고작 그 당시 일인당 지 엠피가 40 달라 였던 최빈국이 지금은 전 세계 200 여 개국의 나라에서 이제는 당당하게
종합 순위 4 위권까지 치고 올라왔다. 거기다가 교육수준은 선진 미국 보다가 높다. 우리는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 ! 라는 구호아래 밤과 낯을 모르고 열심히 일하면서 우리 마을과 지역과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해서 멸사봉공했다. 포탄이 빗발치는 월남 전선에서 우리 동기들은 자유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목숨 바쳐 충성했다. 그리고 서독의 지하 수천 미터의 숨이 콱콱 막히는 막장에서 우리는 피땀 흘려 외화를 벌어왔고, 젊은 여성들은 간호사로 피 걸레를 빨아가면서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고
우리의 후배들은 중동의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중동의 건설에 참여했고, 오대양 육대주에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이제는 펄럭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유 민주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런데 소위 진보좌파라 하는 사람들은 가짜 민주화를 입에 외치면서 저들은 우리의 산업경제 발전과 새마을 사업 현장과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나라가 망한다고 소리치면서 고속도로 현장에 들어 누었던 역적 김영삼 김대중과 그들을 따라 밥만 먹으면 데모나 하던 친일파 빨갱이 후손들은 지금도
호의호식하면서 돈과 권력을 가지고서 우리 힘없는 국민들을 농락하고 있다. 경제는 10 위권이고, 산업경제 국방기술 종합순위 4 위가 무색할 정도이고 아직도 국민 지 엠피가 1 천 달러도 안 되는 저들 종 북들의 마음의 고향인 북조선 김일성 주체사상을 그리워 하는 자들이 전체 국민 오천 200 만 명 중에 무려 350 만이란다. 김대중이가 태어난 전라도는 아직도 김대중을 신으로 받들어 모신다. 김대중이가 새마을 운동을 했는가 ? 밥을 굶어 보았는가 ? 허기 사, 다이어트 하려고 고의적으로 단식이란 쇼는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김영삼 김대중이가 건설현장에서 농촌의 논과 밭에서 괭이와 삽을 들고 땀을 한번이라도 흘려 본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인민들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천인공노할 김일성 삼대 세습체제를 신봉한 주체사상파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리고 저들의 후예들이 지금 광화문에서 전라도 광주 무슨 동네에서 민주화 시위한다면서 단 한 개라도 국가의 표상인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 한 소절이라도 부른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이런대도 어째서 저들이 애국자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라고 할 것인가 ? 전 통진당 애들은 무슨 회의를 할 적마다 인공기와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걸어 놓고 김일성에게 충성 명세를 하고, 노동가 적기 가를 부른 자들이 어째서 민주화 투사인가 ? 정신이상자를 시위대 앞에 세우고 얼굴가리고 붉은 완장차고 붉은 깃발 흔들면서 경찰을 두들 켜 패다가 저들이 불리하면 휘발유 뿌리고 분실자살이라고 하면서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하여 보상금 몇억식 받고 몇 백만원의 연금까지 받는 자들이 과연 애국자인가 ? 그렇게 저들에 마음의 고향인
북조선이 좋으면 가족들 데리고 북한으로 모두 올라가면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남한의 자유가 좋은 북조선 인민들은 한국으로 내려오면 전쟁도 없을 것이고, 남북통일과 민주화가 자동으로 될 터인데 참으로 가소로운 놈들이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