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통해 식민지에 불과한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조선과 통상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미국은 조미통상수호 조약을 체결했다. 그 일환으로 조선은 미국에 보빙사를 보낸다. 보빙사에는 민씨척족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여 부대신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최경석, 변수 등으로 꾸려진다.
당시 고종은 조선에 상주하고 있는 위안스카이로부터 조선 합병의 위협 또는 권좌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을 대신할 상국을 찾는 중 미국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이후에도 일본의 위협이 이어지자 중국을 대신할 상국으로 미국에 의존하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결국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한반도에 훗날 공산세력의 맹주 러시아를 끌어 들이려 했다. 나라가 나라를 지켜주는 역사는 없고 국가 간에는 냉혹한 힘에 의한 국제질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조선을 지켜줄 나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고종의 판단과 자존감 없는 역사에서 무지와 무능에 대한 통탄과 비애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제질서에 대한 고종의 무지는 보빙사가 다녀온 후 훗날 방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방한 한 앨리스는 무례함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앨리스는 민비능을 찾아 능을 장식한 동물상에 올라타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앨리스의 무례함과 기행으로 미국에서까지 비난이 이어져 뉴욕타임즈까지 나서 앨리스를 비난한다.
“앨리스 공주는 한국의 전통과 한국 황실의 역사와 존재를 전혀 개의치 않았던 오만무도한 미국의 공주였다”
앨리스가 남긴 회고록에 당시 고종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는 고종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전반적으로 다소 연민을 자아내는 분위기였다. … 식사를 하러 갈 때 키 작은 황제는 다정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그의 팔을 잡지 않았다. … 서둘러 비틀거리며 매우 좁은 계단을 내려가 평범하고 냄새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고종의 절박함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오찬은 황제가 주관 했지만 일본인이 황제를 통제했다. 고종 황제는 필사적으로 네바다주 출신 상원의원 뉴렌즈를 옆으로 불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한국을 구해달라는 말을 해주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자 뉴랜즈는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적법하게 요청하라며 비웃는 투로 답했다.“
일개 국회의원의 팔꿈치를 잡고 늘어지는 고종의 무지와 절박함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의 수준을 갈음하는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사절단은 한 국가의 지도자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사절단이 신하가 군주에게 예를 표하듯 큰절을 올렸다. 오랜 중국의 지배에 익숙하여 신하의 나라로 예를 올린 것이다.
당시 사절단의 위생상태와 공중도덕에 대하여 알렌의 일기에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그들은 여객선 일등석 티켓을 5장만 가지고 있었지만 다 같이 일등석 객실에서 머물렀고 객실에서 식사도 같이했다. 나(알렌)는 하는 수 없이 일등석 티켓을 두 장 더 구입해야 했다.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강진희와 더러운 사내(dirty man) 이상재는 하인에게 식사를 타오게 해서 박정양 공사와 함께 객실에서 식사했다. 번역관 이채연은 얼간이였고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나마 이하영과 이완용이 일행의 나쁜 인상을 상쇄시켜 주었다. 일행은 항상 선실을 어지럽혔고, 징 달린 신발로 심하게 바닥을 긁고 다녔다. 몸에서는 똥 냄새가 풍겼고 선실에서 줄담배를 피워댔다. 일행의 선실은 씻지 않은 몸 냄새, 똥 냄새, 오줌 냄새, 조선 음식 냄새, 담배 냄새 등이 어우러져 무시무시한 냄새가 났다. 승객들은 매우 친절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공사 일행이 사라져 준다면 매우 감사해할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박정양 공사의 방을 찾아 인사를 했지만, 악취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1887년 당시 미국은 전기로 대표되는 도시의 밤이 대낮처럼 밝아지는 2차산업혁명기였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운둔의 땅 조선이었지만 한국가를 대표하는 외교 사절단이라 하기에는 문명세계와 너무 떨어져 있었다.
감리교 아시아 선교를 주도하던 존 가우처 목사는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민영익을 비롯한 보빙사를 만나게 된다. 갓을 쓴 민영익과 대화속에 가우처 목사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가우처 목사는 감리교 아시아 선교를 주도하고 있었으며 러블리 레인 담임목사로 재직하며 가우쳐 대학의 전신인 볼티모아 여자대학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보빙사절단을 만난 가우처 목사는 뉴욕에 있는 감리교본부에 연락하여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을 제안한다.
기차 안에서 조선 보빙사를 만난 가우처 목사는 조선선교를 위한 준비에 나선다.
가우처 박사의 조선 선교에 기름을 부은 것은 조선인 성경번역가 이수정이었다. 임오군란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리 된 민비를 무사히 탈출시켜 충주로 피신하는데 공을 세운 이수정은 민비가 환궁한 후 벼슬을 내리고자 했으나 이수정은 벼슬을 마다하고 일본으로 보낼 신사유람단 2진에 합류하게 되고 박영효의 비수행원으로 일본행에 오르는 특혜를 받는다.
이수정의 친구였던 안종수는 이수정 보다 먼저 일본에 간적이 있다. 농학자였던 츠다센(津田 仙) 박사는 서양의 농업기술을 배워 도쿄에 농학교를 개설하고 서양 채소와 과일 농사법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츠다센 박사를 찾은 안종수는 우연히 거실 한편에 걸려 있는 한문으로 된 족자에 쓰여진 신약성경의 산상수훈 팔복을 보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귀국 후에도 족자구절이 잊혀지지 않았던 안종수는 자신의 벗인 이수정이 도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츠다센 박사를 만나 볼 것과 거실에 걸린 족자를 살펴 보라고 당부하기에 이른다.
일본에 건너간 이수정은 츠다센을 찾았고 거실족자 속에 적힌 동양고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산상수훈 말씀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 츠다센은 감리회 교회 교인으로 아오야마 가쿠인대학의 설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저명한 기독교 농학자이였다.
당초 농학공부를 위하여 츠다센을 찾은 이수정은 족자의 말씀에 빠져들면서 농학이 아닌 성경 말씀과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츠다센은 이수정에게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 한 권을 선물했다. 이수정은 신양성경을 탐독하며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며 회심을 하고 1883년 4월 29일 로게쓰초교회에서 야스가와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첫 조선인 개신교 신자가 탄생했다.
이수정은 개신교 신자가 되면서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 및 선교부와 교류 하게 되었다. 미국성서공회 선교부 총무 헨리 루미스는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이수정에게 제안하여 성서번역에 나선다. 그리고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수정은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직접 미국 선교부에 조선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게 된다. 이수정의 편지는 1883년 12월 13일자 선교잡지인 미셔너리 리뷰(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크리스마스 아동란”에 실렸고 이어 주간지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ly〉의 1884년 1월 26일자에 ‘The Gospel for Corea’라는 제목으로 게재 된다.
조선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가우처 목사는 이수정의 편지를 보고 조선 선교는 사명으로 받아 들이게 된다.
가우처 박사는 조선선교 자금으로 5,000달러를 기부하고 일본에 있는 로버트 새뮤얼 매클레이에게 연락하여 일체의 비용을 보내주며 조선의 사정 및 선교 가능성을 타진 할 것을 부탁한다. 매클레이 선교사는 오랫동안 중국과 일본에서 선교에 투신하고 있어 동양사정에 밝았었다.
가우처 목사의 부탁을 받고 조선으로 건너 온 매클레이 선교사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개혁교회와 칼빈주의 신학이 퍼지는 도화선이 된다.
매클레이 선교사가 조선에 건너 온 때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쇄국정책과 8,000명을 처형하는 광기의 종교박해가 있은지 15년이 지난 때였다.
보빙사와 가우처 목사, 이수정과 매클레이 선교사로 이어지는 과정은 역사의 우연이 아닌 톱니바퀴 맞물리듯 물려 돌아가는 절대자 개입의 현장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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