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왕의 통치는 처참하게 참혹했다. 무능과 무기력으로 인한 정치력의 부재는 논외로 하고, 고종과 민비의 씀씀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황현이 기술한 매천야록에 "대원군이 10년간 모아 놓은 국고를 민비는 단 일년에 탕진했다"라고 적고 있다. 국가 예산이 480만냥일 때 민비가 릴리어스 언더우드 여사에게 준 축의금을 자신의 저서 조선견문록에 100만냥이라고 적고 있다.
고종은 즉위 40년 칭경식과 51세 생일을 축하 하기 위하여 100만원을 썼다. 그 해 국가예산이 759만원 이었다. 참으로 비싼 생일상이다.
밑 빠진 독이 된 국고는 이내 바닥이 났고 고종과 민비는 자신들의 낭비벽을 충족하기 위하여 매관매직을 한다. 그 어느 역사에서 왕과 왕비가 나서 벼슬을 팔은 기록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고종과 민비는 낭비벽을 채우기 위하여 벼슬을 군밤 팔들이 팔았다. 어느 한해 호조판사는 24번을 팔았다.
구한말 조선은 고종의 개인 소유에 불과한 가산제 국가였다. 명품에 중독 된 그래서 끊임 없이무엇인가를 사들여야 하는 쇼핑중독에 걸린 가장이 고종이었다. 가산제 가부장국가 조선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민주주의 국가를 선언한다.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를 완벽하게 표현한 링컨의 문구를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생은 배우고 기억 해야 한다.
"국민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종교개혁의 시초로 평가 받는 영국의 존 위클리프가 있다. 위클리프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이 독점한 라틴어 성경을 일반인이 읽거나 소지만 하여도 화형을 시키던 시대였다. 그 시대 위클리프는 죽으면 죽으리라 대중에서 성경을 돌려 주기 위하여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번역한 책 표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This Bible is for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링컨은 이를 인용하여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국립묘지에서 연설을 했다.
존 위클리프의 제자 존볼은 말을 남긴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길쌈 맬 때 누가 귀족이었던가?
존 볼의 저 한마디는 영국에 거대한 파장을 남겼고 농민봉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종교개혁의 도화선은 불타 올랐고 종교개혁으로 성경 위에 군림한 교황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개신교도를 통칭하는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의 16세기 종교 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개혁교회 성도를 통칭한다. 프로테스탄트는(Protestant) 항의하다(protest)를 어근으로 만들어진 어휘로서 항의하는 자를 의미한다. 종교를 통해 배를 불리고 착취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로마 가톨릭이나 교회에 반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저항정신은 선교사를 통하여 조선에 전해졌고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당시 개신교는 조선 백성의 1%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 참여했다. 그토록 왕에 대한 충성으로 살아가는 성리학자나 선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고종 개인의 나라에 불과한 가산제 국가 조선에서 백성은 군주와 양반에게 그저 빼앗기고 뜯기며 사는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개신교는 주권재민의 주인의식을 심어 주고, 하나님 아래 인간 모두는 평등하다는 자존감과 불의에 저항하는 의식을 심어 주었다.
최초의 양의사 였던 박서양(봉출)의 아버지는 백정 박성춘이다. 어느날 갑자기 콜레라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무어 선교사가 세운 곤당골 교회에 다니던 박성춘의 아들 봉출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무어 선교사에게 하소연하였고 무어 선교사는 고종의 주치의였던 에비슨을 데려와 박성춘을 살려 준다.
가축만도 못한 취급도 받지 못한 백정 박성춘은 임금의 주치의가 치료를 해주는 그 사랑에 감화 되어 곤당골 교회를 찾아가 스스로 교인이 된다. 그리고 아들 봉출은 아버지를 살려 준 에비슨이 고종에게 백정도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청원하여 면천을 받고 박서양 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제중원의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제1회로 졸업생이 되어 최초의 의사가 된다. 박성춘은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며 만민공동회에 출석하여 연설을 하는 등 천대 받는 백정이 아닌 존중 받는 한명의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한다.
단군이래 최초로 투표가 이루어진 곳은 교회의 장로선출이었다.
백정인 박성춘이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자 어디 감히 백정이 양반과 예배를 볼 수 있냐며 반발했다. 양반들의 반발 속에 박성춘은 투표를 통해 백정 자격으로 장로가 되었고 교회 시무를 맡는다. 곤당골 교회는 이름을 바꾼 승동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다. 백정인 박성춘이 장로로 선출 되자 백정 장로 밑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며 양반 이여한, 황기연 등이 승동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는 안국동에 한옥을 매입하고 안동교회를 설립한다.
양반들은 승동교회를 떠났지만 박성춘은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도우며 수 많은 백정들을 전도하여 교회를 가득 채웠다.
몇년 후 승동교회가 불이 나서 소실 되자 분리되었던 안동교회와 합쳤다. 도저히 배합 될 수 없어 보이는 백정교회와 양반교회는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하나가 되었다.
개신교의 복음은 억압받고 착취 당하며 희망 없는 조선 민중을 깨웠다.
예수님의 4대사역을 짊어지고 이 땅을 찾은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치료하고, 먹였다. 그것은 조선 민중에게 삶과 주권재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가르쳤고 구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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