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씨의 반전의 등판
서부 영화 중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옛날 옛적 서부에서)라는 영화가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걸작으로 꼽는 영화다. 명성에 걸맞게 상영 시간이 2시간 30분이 넘는 대작이다. 특히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역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다. 오프닝 장면에만 이 영화는 15분 이상을 할애한다. (첨부된 영상은 오프닝 15분 장면을 축약한 것을 퍼온 것이다)
서부 시대의 외딴 기차역, 세 명의 총잡이가 나타나 역무원을 감금하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대사는 없고 배경의 소품에서 나오는 소음들만 들리고, 지루하고 긴장된 시간들이 흘러가며 기차가 도착한다. 기차가 떠난 자리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몇 마디를 나누고 총격전을 벌인다. 총잡이들이 쓰러진다. 주인공인 하모니카맨의 등장을 위한 15분 동안의 오프닝이었다. 주인공은 배우 찰슨 브론슨이었다.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 씨가 등장하는 것이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을 닮았다. 좌익방송과 정권의 홍위병 방송들이 얼마나 광고를 해대었던가. 김건희 녹취록을 방송하겠다고. 민주당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본방사수하라며 국민을 선동했다.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폭탄들이 터질 것이라고 좌우 양측에서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시간들을 보냈다. 김건희가 윤석렬을 침몰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이런 길고 긴 터널의 오프닝을 거치면서 김건희가 등장했다.
'김건희 녹취록'은 대선 정국을 강도 높게 긴장시켰다. 김건희 녹취록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가 김건희와 6개월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7시간 가량의 통화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명수 기자를 공직선거법위반,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등 협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고, mbc를 상대로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런 난리법석을 떨며 김건희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방송을 탔다.
그러나 태산명동에 서일필, 김건희 녹취록은 국민의힘에게 불리한 내용도 없었고, 윤석렬에게 타격이 갈만한 내용도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김건희 씨를 둘러쌌던 각종 의혹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방송이었다. 김건희 녹취록이라는 예고편은 김건희를 단번에 매장 시킬 공포의 스릴러물로 광고했는데, 막상 본방송은 김건희의 스타 탄생을 알리는 역전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김건희 녹취록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가 간첩이 되어 김건희에게 의독적으로 접근하여 각종 정보를 캐내려 의도했던 녹취록이었다. 그러나 김건희는 이명수의 의도를 이미 간파했다는 듯이 이명수를 이리저리 요리하며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 자기가 해야 할 말들을 풀어놓았다. 김건희 녹취록은 김건희가 이명수의 덫에 걸렸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명수가 김건희의 덫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김건희는 김건희 녹취록 방송으로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김건희가 처음 언론에 등장하는 사진은 애교머리에 새침한 표정이었고 쥴리로 공격받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김건희는 정치에는 왕초보에 물정모른 아줌마였고, 혹시 유흥업소에 종사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녹취록에 등장하는 김건희는 그동안에 언론이 만들어줬던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반전의 김건희였다.
김건희는 남편과 가정을 보호하려는 대한민국 보통의 아줌마 심성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와 남편의 입장을 배려하며 자기를 희생하고 절제하는 사려 깊은 아내였고 정 깊은 딸이었다. 보통사람이면서도 보통사람보다는 조금 높은 정치적 시각도 갖고 있었다. 오히려 김건희는 윤석렬보다 더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보다 더 폭 넓게 좌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스럽던 김건희에서 믿어도 될만한 김건희, 영부인이 된다 해도 손색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김건희 녹취록은 줬다. mbc에 감사드려야 할 판이다. 김건희에 대한 걱정 하나를 덜어준 차원을 넘어서서 윤석렬의 승리에 대단한 공을 세운 mbc가 될 전망이다. 이참에 mbc도 윤석렬로 말을 갈아타기 바란다. 어디 기대할 곳이 없어서 전과 4범에게 기대한단 말인가.
김건희 녹취록에서 김건희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인터넷에는 김건희 열풍이 일어날 조짐이다. 김건희 팬카페에는 하루 사이에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덩달아 윤석렬 지지율도 이재명을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모두가 김건희의 힘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뜸을 들이고 무게를 잡은 후에 등장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김건희는 그렇게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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