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는 광주 5.18에 대해 사과한 것이 사실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끝났다.
노태우가 생전에 광주 5.18, 등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는 말을 그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 노태우의 회고록을 읽지는 않았으나 그의 회고록을 읽었다는 사람을 통해 노태우가 생전에 사과했다거나 그런 뜻이 있었다는 사실은 회고록에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회고록에 없는 내용을 왜 언론에 발표한 것일까.
그런 발표는 5.18에 대한 그의 언행을 통해 대략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노재헌 변호사는 광주 5.18을 방문 머리 숙이는 모습이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됐다.
또 5.18 당시의 상황실장 박남선 씨를 몇 번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으며
박남선 씨는 노태우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면서 국가장에 문재인이 조문 오지 않은 것을 못마땅해했다고도 한다.
노태우가 직접 사과를 했다면 그의 자유의사를 누가 문제 삼겠는가.
그런데 변호사인 아들 노재헌이 아버지 노태우를 대신해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평소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왜 회고록에는 그런 표현이 없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유언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5.18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금도 살아 있는 이 시대의 역사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 서로 각기 다른 주장을 하면서 힘없는 측에게 입을 열지 못하게 강제하는가 하면, 법적 소송전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현실이며 실제로 무더기 소송으로 다른 주장에 핍박하고 있다. 이는 힘센 일방의 주장만을 강제하는 것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성격을 달리하지 않을까.
또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1980.5.18. 광주사태는 불순세력 반정부인사에 의한 사회 혼란을 일으켜 그 틈을 이용 집권세력을 뒤엎어 권력을 차지하려다가 실패한 김대중의 내란 사건으로 규정 종결된 일이었다. 그러나 1997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특별법을 만들어 완전 180도 뒤집는 판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의 판결을 보면 전혀 민주화 운동으로 볼 수 없는 중무장으로 교도소를 습격하고 방송국에 방화 악성 유언비어 난무 등을 볼 때 김일성의 손이 뻗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들 체제 전복 세력을 준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압한 정부 계엄군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순전히 김영삼 정권이 김대중에게 추파를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처지를 반영하여 아전인수로 해석 판결함으로써 전형적인 이현령비현령 판결이라는 실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순수한 민주화 운동으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많지만, 기억을 따라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겠다.
1) 1980.5.18. 광주 나들목을 통과하는 20사단 지휘부를 괴멸시킨 괴 정체의 민주화 세력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 특수 군인가. 아니면 고도의 정보력을 갖춘 비정규전 북한군인가.
2) 이들은 지휘부를 괴멸시켜 탈취한 기동력으로 아세아 자동차 공장의 장비 등을 탈취하고 전남지역 44개 무기고를 털어 계엄군에게 대항하고 같은 시민을 공격한 무리가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3) 광주 전남대 교문을 지키고 있던 계엄군에게 가방에 숨겨온 돌멩이를 던지고 줄행랑친 자들은 누구인가. 민주화 세력이라면 당연히 여기 있소. 라고 해야 맞지 않나.
4)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고 교도소를 습격한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한다면 반란 쿠데타도 혁명도 민주화 운동이 될 것이다.
5)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경상도 군인들이 환각제를 먹고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세력이 민주화 운동 세력이 될 수는 없다.
6) 전쟁과도 다름없는 상황에서 여러 연출되고 기록된 연기는 사전에 기획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데 이러한 연출은 시민군이 즉흥적으로 연출했다는 것인가. 이 연출 유공자는 왜 말이 없는가.
7) 전남도청에 TNT를 장치한 시민군은 무슨 이유로 전남도청을 폭파하려 했나 이들은 누구인가 이것도 민주화 운동이란 말인가. 이 폭약 장치를 목숨을 걸고 해체한 사람은 계엄군이디. 계엄군을 표창해야 옳지 않나.
8) 사태에 비해 적은 희생으로 조기에 평정 수습한 것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공로 아닌가.
9) 1980.5.17. 김대중이 정부에 선전포고와 자신의 내각명단을 발표한 것을 볼 때 1980년의 김대중내란 사건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과 부합한다. 내란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180도 뒤집은 것은 정략적 선택으로 원위치로 환원해야 옳을 것이다.
위의 이런 사실을 노태우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광주 5.18, 사태에 대해 무슨 이유로 사과할 뜻을 갖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1980년 판결을 새로운 사실에 근거해 1997년 재심 판결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유언을 남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정략적인 발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유언을 아무런 검증 없이 언론에 노출하는 것은 위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20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