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인생 얼마일가 ? 생각해 보니,
부운[浮雲]같은 인생살이 힘겹게 겁없이 살아오다 보니, 어언 인생사[人生史]가 팔순의 나이가 내일모래이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냥 속절없이 세월 흘러 가는대로 모진 세파에 부 닥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오직 가족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맡은 식구들 밥은 굶기지 않고 살도록 해야만, 그래도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은 면할 것이란 강박감에 살아온 세상살이를 지내보니 꿈만 같다. 소시 적에는 가난이 무엇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기는커녕 보리밥 조당수[좁쌀로 끓인 죽] 나물죽도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자고새면
어떻게 주린 배를 채울 것인가에 골몰[汨沒] 했고, 하루 해가 빨리 지고 배고프고 힘든 세월이 빨리 가길 바란 적도 많았지만, 이제 벌어 놓은 돈은 없어도 쌀밥에 고깃국도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로 야사로[夜思盧]은 입맛 때문에 지난 고생스러운 시절에 비추어 보면 죄받는 일이 아닐 가, 생각도 든다. 가진 돈은 십 원도 없고 가진 땅이 단 한 평 없어도 나라에서 알아서 식사나 잠자리를 구해주는 복지혜택과 나같이 병신이 된 만신창이도 병원가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통증 주사와 약값을 일부분만 지불해도 약을 타 먹을수가 있으니
이런 세상이 천국과 극락이 아니고 무엇인가 ? 허나, 우리들이 간과[看過]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복지혜택이 사실은 우리들이 젊은 시절 가정과 사회, 국가를 위해서 멸사봉공[滅私奉公]한 댓 가라고 의심치 않는다. 안동 촌 노가 젊은 시절에 사실 나의 몸을 돌 보지 않고, 항상 우리 마을과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선두에 나서서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새마을 사업 전선에서 나의 혼신[魂身]을 바친 것은 사실이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살던 초막집의 담벼락과
아랫체의 부속건물을 헐고 농로를 확장하는데,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지 않고 마을에 희사[喜捨]를 했고, 마을의 대소사나 경조사[慶弔事]라면 아무리 우리 집에 일이 바빠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앞장서서 해결했던 것이 지금 나의 마음속에는 즐거움으로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60 년대 초, 열 네 살의 어린나이부터 시작한 농촌 4-H 운동을 필두로 새마을 지도자 농촌 지도자 농민후계자와 말단 공무원 18 년으로 시작해서 나의 일생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자조 근면 협동의 새마을 정신과 지덕노체[智德勞體]의 4-H 정신을 나의 마음속에 깊이 아로 색이면서
아직도 그 정신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의 서제 방구석 상단 벽면에는 내가 받은 표창장만 해도 수십 장이 벽면전체를 도배하다 십이 걸려있고, 액자에 다 걸지 못해서 나의 앨범에도 백 여 장이나 되는 표창장과 상장들이 앨범에 수록이 되어 있다. 이것을 걸어 놓은 이유는,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표창장을 받을 당시에 그 마음으로 변함없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친한 친구가 나의 방을 들어와 보고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네는 “정말 바보같이 인생을 살아 왔 네” 라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그 친구가 나에게 한말이 건방진 욕으로 들리겠지만, 그 친구의 말은 사실이다. 남을 속이고 남을 질시하고 원망하면서 자기의 일신을 방종과 교만으로 살아왔다면, 그 많은 표창장과 상장이 나에게 주어질리 없을 것이고, 사회에서 그래도 욕먹지 않고 법을 지키면서 올곧게 열심히 살아온 증거가 바로 나의 방, 서제 한쪽에 걸려있는 표창장들이 아니겠는가 ? 남들은 공무원 재직 중에 단 한 장도 받기 힘들다는 모범 공무원상과 청백리상과
효 자상 까지 받았으니 나에게는 사실 시련의 댓 가였지 만, 가문의 영광이고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아비로서 책무를 다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죽어도 미련은 없다고 본다. 다만, 지금 나라의 정치가 개판이어서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어제는 안동 시내 지인[知人]이 운영하는 인쇄소에 가서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앞면[全面]에는 내가 평생 다섯 번째 입어보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메고서 찍은 사진에 “논 객 넷” 이란 이름까지 색이고, 뒷면[後面]에는
내가 그동안 집필한 저서[著書]의 목록까지 기록하여 두었다. 책도 책 같지 않은 것을 여러 권 집필하다가 보니, 책 제목도 아리송해서 저서의 주제 밑에 책 목록의 제목까지 넣고 보니 그래도 안동 시골마을 송현 초등학교 제 12 회 졸업생 87 명중에 85 등 꼴 지로 3 등을 했던 필명 안동 촌 노[安東村勞 ] 김 성복이가 그래도 출세는 했구나, 하는 뿌듯함에 후인들에게 전할 말은 세상사[世上事]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이름있는 미국 하버드대학을 나오 고, 서울대학을 수석졸업하면 무슨 소용인가 ?
자기의 인생사[人生史] 중에 책 한권 내지 못하는 선비라면, 그 것은 꽁생원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사는 공짜가 없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날 뿐이다. 젊은이들이여, 올바르게 희망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시라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