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에서 만난 어느 민초 이야기
지난 토요일( 10월31일 ) 경기도 양평쪽의 용문산엘 갔었다 1115미터의 산인데 몇 주전 한번 시도했다가 산 중턱에서 배낭끈이 꾾기는 바람에 그냥 내려왔었다가 두번째 도전이었다 천미터가 넘는 산은 만만치가 않다 특별히 습관을 따라 맨발산행을 하느라 속력을 내기가 쉽지 않아 등산화를 착용한 경우보다 시간이 좀 더 소요 된다
이 산 입구에 용문사란 절이 있고 천백년 됐다는 은행나무가 있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노란 은행잎으로 덮힌 나무는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몰려 나무주변 가득! 행운을 비는 각종 쪽지글들이 즐비했다
힘들게 산 정상에 올라가서 60대 중반의 어떤 아저씨와 대화하게 됐다 이 분은 아주 자기 인생살이에서 힘들었던 부분들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정상에서 시작해 하산길 내내 듣느라 지루한줄 모르고 하산했다
이분은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데다 워낙 집이 가난해 학교공부를 중학교 1학년 밖에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 때 이런저런 잡일을 하다가 모 호텔에서 웨타노릇 하게 됐는데 그 호텔의 사우나가 재벌들 전용이어서 이건희 김우중 정주영 회장 등을 보게 됐는데 이건희 회장의 면모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매번 수고비를 20만원씩 줬다고 추억한다 들어올 때 인사하면 20만원주고 또 무슨 심부름을 하나 시키면 그때마다 20만원을 다시 주는데 예로 수건 하나 더 가져다드려도 20만원, 추가로 무슨 심부름 하나 더해도 20만원을 합해서 꼭 챙겨준다
이렇게 한분은 이건희 회장 한분이고 정주영 김우중 회장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 어느날은 정주영회장의 옷을 챙겨드리는 아줌마가 그만 실수로 옷을 바닥에 떠러뜨려서 그 아줌마가 어쩔줄 몰라 매우 당황했는데 정회장이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넘겨줘 참! 대인의 풍모를 느꼈다고도 했다
웨타생활을 하면서 여러 재벌회장들을 봤는데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지 보통으로는 회장들마다 여자를 탐해 이런저런 일들이 있는 걸 듣게 되곤 했는데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작은마누라 하나 얻은 것 뿐이고 그 외의 여자문제가 없어서 장수하신 것 아닌가 하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일생 살아보니까 남자들이 보통 술 담배 도박 여자 이런 것들로 망가지거나 힘들어지는데 자기는 워낙 배운 게 없고 돈도 없다 보니까 이런 걸 할 능력도 재주도 안 돼서 그저 일다니고 먹고사는데만 올인한 게 도리어 마누라와 가정에 부끄럽거나 미안한 게 없어 편하다고 했다
주변에 보면 젊어서 마누라 속 썩혔다가 나이먹고 나니까 복수당해 기가 죽어있는 경우들 보는데 이런 사람들은 배운 것도 있고 한가락 할 게 있어서 그랬지만 자기는 워낙 행세할 게 없다보니 고생은 했지만 오히려 나이먹고는 떠떳하다고! 술담배는 워낙 못하는 데다가 뭐 신세가 초라하다 보니 말빨이 없어 어디 나대지도 못하니 이게 도리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줬단 얘기였다
이분은 청년 때 웨이터 생활 하다 나이 좀 드니까 동대문시장서 지게로 짐나르고 상하차 돕는 일을 한평생 하게 됐단다 그 일을 너무 오래 하다가 무리가 됐는지 관절통이 와서 나중엔 일도 못하고 악화일로!
다리를 펼 수도 없고 조금만 디디면 통증으로 아주 누워있거나 다리를 편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돼 병원이란 병원 다 실려 다니고 줄기세포니 수술이니 연골주사니 안 해 본 거 없이 다 했지만 도무지 안 돼 진통제 주사 맞고도 알약진통제 10알을 더 먹어야는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그런사람이 지금 1천미터가 넘는 높은산의 정상엘 와 있지 않은가 사연을 들어봤더니 이분이 이제 "나 인생 끝났나보다 " 하는데 어떤 글을 보다가 ,
<산은 모든 병을 고쳐주는 좋은 의사다 어떤 병도 산에 가면 산이 다 품에 안고 고쳐준다 의술로 안 되면 무조건 산으로 가 걸으라! >
라는 글을 보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일어서 서있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고민하고 있다가 그래도 그냥 있다 말라 죽느니 "움직여보자" 결심하고 진통제 대량을 먹고 집에서 <기어다니기 >시작을 했다
마루에 메트를 깔고 계속 무릎으로 기어다녔다 기고 또 기고! 그렇게 매일 움직이니까 조금 발을 딛게 되고 서서 좀 움직일 수 있게 돼 조금씩 조금씩 걷기를 시도!
끈질긴 결심으로 지팡이에 의지해 집 밖에 나가 절룩거리며 동네를 조금씩 걷고 또 걷고 그렇게 1년여를 하니까 산엘 가 볼 수 있는 정도가 돼 그때부터 매일 동네 야산을 걷고 또 걷곤 해 3년쯤 걸으니까 날로날로 좋아져 진통제 병원 모두 끊고 계속 행진! 조금씩 높은 산을 오르면서 지금은 천미터급의 산도 넉넉히!
이분의 발걸음은 가벼워 맨발인 필자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이분은 관절통을 고친 그 기쁨에 하루 쉬고 다음날은 산으로! 이렇게 이틀에 하루를 산에서 산다고 했다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학산 1400미터를 오르내리는가 하면 천미터 이상급의 산들을 자유자재로 즐긴다고!
중학교 1학년 중퇴, 부모로부터 받은 것 없음! 단신으로 고생고생 하다 관절통으로 인생 좌절! 절망 중 새로운 결심으로 <기어다니기>에서 <천미터급 산>을 넘나들기까지의 과정은 집념 프러스 인내 더하기 투지였을 것이다
이 분은 이제 산을 사랑하다 인생 마치려는가 산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힘들게 살았지만 딴 짓이나 남 해치는 것 안했기에 와이프와 두 딸이 모두 좋아하고 화목하단 걸 유일한 스팩으로 자랑 또 자랑한다 어떻게 보면 이게 영광된 스펙 아닐까
하긴 특별 스펙을 자랑하는 민초들이 있다 어느 공원에 가면 자기 아들의 석사학위증을 품에 넣고 다니는 아저씨가 있다 이분은 시골에서 어릴 때 서울에 와 학교를 다녀보지도 못하고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해 집도 장만했는데 마침 아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보냈다 아들따라 며느리도 좋은 학벌의 며느리가 들어왔다 이 아빠는 그게 너무 자랑스러워 아들의 석사학위증 사본을 코팅해 갖고 다니다가 어르신들끼리 자기 살아온 얘기 하고 과거 날렸던 얘기 나올때면 그걸 꺼내 " 나 이런사람이야! 내 아들이 이 대학 석사야! " 딱! 내민다
자기는 못먹고 못입고 고생고생 해 아들을 명문대 보내 석사를 만들었다는 게 그리도 영광인 아빠의 프라이드! 어쩌면 오늘의 부강한 자유대한이 이런 민초들의 땀으로 이룩한 것 아닌가!
오늘의 주인공 관절통을 이겨내고 1천미터급 산을 누비는 아저씨도 이런 영광의 스펙을 쌓은 주인공일 것이다
이분은 부모 때부터 골수 불교집안이라고 했다 교회와 복음을 권했더니 반응이 없었다
어느덧 하산길에 어둠이 깔렸다 천백년된 은행나무 아래서 작별하고 해어졌다 천미터산을 타고도 버스시간 맞추려 잽싸게 달려가는 그의 몸은 민첩했다
우리 인생살이에 꼭! 맞는 격언이 있다면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일 것이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니!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2020.11.2 안티다원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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