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빨갱이들, 曰曰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다
<종북-친중 망국세력이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하다>
국가유공자는 나라를 위하여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 순국선열, 애국지사, 전몰군경, 상이군인,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한 특별 공로 순직자 등이 해당한다.
그러나 소위 민주화운동가라는 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고부터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여 법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 특별법이나 재심을 통하여 모두 민주화유공자가 되었다. 민주화유공자 Mass Production 시대 도래!
그들은 독립운동가나 6.25 참전 국가유공자를 능가하는 과도한 대우를 받는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국가안보와 반대되는 일을 하여 이제 국가보안법이 실종된 것과 같다. 국가보안법이 혼비백산하였으니 국가 절멸은 시간문제다. 휴전선도 뚫렸고, 개인정보는 물론 국가기관의 정보도 줄줄 새고, 재벌의 기밀도 반국가 세력과 산업 스파이의 노리개가 됐다.
애국자들을 위협하는 국가유공자들이 위력을 발휘하여, 진짜 위대한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깨고 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몰아 백선엽 장군 사후에 그가 국립묘지에 들어가서는 안 되며, 심지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무덤까지 파내야 한다고 미친 개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죽고 싶은 막가파 종자들이 끝판에 하는 개지랄발광이다. 원래 발광은 욕심이 지나쳐 사기행각을 하고, 성격이 난폭하여 남을 폭행하고, 부녀자를 강간하고, 국가 전복을 꾀하고, 사회를 교란하려고 설치는 범죄자, 깡패, 양아치, 시정잡배들이 하는 행동모형이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군 최초 대장·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 편입된 사실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종북. 친중 세력이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여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국립묘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종북세력은 한국이 6.25에 패배해야 적화통일이 가능한데, 미국과 유엔군이 개입하여 적화통일을 막았고, 특히 백선엽 장군은 적화통일에 방해되는 나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짜 영웅 백선엽 장군을 증오하는 것이다.
중국은 조선의 숙적이었고, 북한. 러시아. 중국은 6.25 전쟁 도발. 협조자로 한국의 분명한 주적이다.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민주화유공자가 대량생산되어,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과 독립운동가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무덤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자들이 어찌 이런 독설을 할 수 있으며, 백선엽 장군이 이런 대우를 받도록 분위기를 용납한 우유부단한 껍데기 애국자들을 한국인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는 애국자 씨가 말랐는가? 국가영웅을 적으로 규정하고, 위대한 스승을 파렴치한으로 만든다면, 국민의 영혼이 어디로 산화했다는 말인가! 이름 난 인간들 중, 백선엽 장군의 장례일에 누가 참석하고, 어느 놈이 안 가는 가를 보면 빨갱이 감별은 자동으로 될 것이다.
주: 曰曰은 개짖는 소리의 의성어
<이데일리 기사>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4분께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내가 물러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부하들 후퇴를 막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이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1952년 12월 참모총장 재임 당시엔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직접 브리핑해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미 8군사령부는 전쟁 당시 업적을 기려 2013년 고인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군 내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 나섰고, 그 인연으로 1960년 대장 전역 뒤 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지휘했다.
좋아하는 고사성어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인데 이는 ‘기동력 있게, 겸손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백 장군은 설명한 바 있다.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0년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명예 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불발됐다.
고인은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