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폭투하로 맞은 해방과 동시 일본, 만주, 중국에서 출항한 귀국선에 오른 250만명의 세계인은 스스로가 조국 건설의 동량지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씨조선이 500년간 말살시킨 세계화의 유전자를 살려 낸 진정한 독립투사였으며 그들에 의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태어나게 된다. 일찍이 세계인으로서 조선독립을 고민했던 국부 이승만께서도 귀국길에 만감이 교차되고 있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서라벌은 조선의 한양을 5배를 능가했고 서역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국제도시였다. 인도의 공주가 가야의 왕비가 되고, 백제인은 일본의 도래인으로 고대국 국가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항해술이 뛰어난 신라는 해상무역의 중심이 되어 당나라에 신라인의 자치주를 건설했고, 서역에까지 인삼을 비롯한 무역품을 수출했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한반도는 세계와 소통하며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자 서역으로가는 출발점이었으며 당나라와 전쟁을 하여 승리하는 등 국제질서의 중심에 있었다.
고려시대 세계와의 소통은 더욱 활발해졌고 무역은 더욱 활발하게 발전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 또한 인구 50만에 이르는 거대 국제도시였다. 고려의 무역은 신라시대보다 발전하여 당시 교역품의 최첨단 상품을 수출했다. 특히 고려의 종이는 세계 최고의 품질이었다.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 조차 고려지가 광택이 나고 질겨서 누에고치로 만든 것으로 오해를 하여 불을 태워 진위를 확인하는 일까지 있었다. 송나라 한자창(韓子蒼)은 고려 종이에 대하여 “왕경이 나에게 선물로 준 삼한지라는 종이는 비계를 끊어 놓은 듯이 반질반질한 빛이 책상에까지 비친다.”라며 시를 지어 감탄 했다. 송나라로 역 수출 된 고려청자는 필리핀에서까지 발견 되고 있다. 고려의 나전칠기 또한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 되는 주요한 교역품이었다. 종이, 도자기, 나전칠기는 당시 최첨단 제품으로서 종주국인 중국을 압도하며 역수출 되었고, 그 명성이 서역세계에 알려진 상공업이 발전 된 최첨단 산업국가였다.
이러한 고려의 활발한 무역과 경제적 발전은 부국을 통한 강병까지 보유한 강국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동북아 국제질서의 중심이 된다. 고려의 국력에 압도당한 송나라는 고려사신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소동파는 오죽하면 고려와 국교를 단절할 것을 황제에게 건의할 정도였다. 고려의 팔관회에는 송나라를 비롯하여 여진, 일본, 서역국가들이 앞 다투어 사절을 보냈고 조공을 했다. 고려의 전성기엔 현종 때 조공을 하기 위하여 고려를 찾은 사신단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기유일. 여진말갈(女眞靺鞨)의 목사(木史)가 부락민들을 데리고 와 입조하므로, 작위와 의복과 기물을 내려주었다.
신축일. 송나라 천주(泉州) 사람 임인복(林仁福) 등 40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계묘일. 송나라 강남(江南 : 지금의 중국 푸젠성 일대) 사람 왕숙자(王肅子) 등 24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병신일. 송나라의 천주(泉州) 사람 이전(李) 등 30여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을묘일. 동여진 추장 아로대(阿盧大)와 서여진 추장 아개(阿盖) 등이 와서 입조했다
무진일. 철리국(鐵利國) 임금 나사(那沙)의 사신인 아로태(阿盧太)가 와서 토종말을 바쳤다.
경인일. 동흑수국(東黑水國) 추장 구돌라(仇突羅)가 와서 토종말과 병장기를 바쳤다
병자일. 탐라(耽羅)에서 특산물을 바쳤다
갑인일. 대식국(大食國) 의 열라자(悅羅慈) 등 백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이슬람제국)
신사일. 대식국(大食國)의 만하(蠻夏)·선나자(詵羅慈) 등 백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계축일. 탐라의 세자(世子) 고오노(孤烏弩)가 입조해 왔으므로, 그에게 유격 장군(游擊將軍) 벼슬을 주고 예복 한 벌을 내려주었다.
세계와 소통하며 세계와 교류하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여 오히려 종주국을 압도하던 고려시대의 강인함과 창조력은 조선시대 미개하다 못해 천한 성리학이 자리 잡게 되면서 조선은 쓰레기 국가의 표본이 되었다. 고려청자라는 당대 명품을 만들 때 15세기 일본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 조차 생산하지 못했다. 쓰레기 성리학이 남긴 폐해는 비참했다. 대한황실에서 쓸 품격 있는 도자기를 생산하지 못해 일본에서 도자기를 수입하여 황실 그릇으로 쓰는 처참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문명개화의 신천지를 만난 일제 시대 조선의 깨어 있는 자는 선구자 수백만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공부하며 문명개화의 선진문물을 익혔다. 특히 새롭게 건설 되는 만주국의 건국에 참여한 조선인은 새로운 국가건설에 대한 영감과 열망을 주었다. 만주국의 발전은 경이적이었다. 새롭게 건설 된 도시는 현대문명을 총아였고 비행기 공장을 비롯한 첨단산업 공장은 일본의 힘을 상징했다. 일제 패망 후 만주의 공업생산력은 중국 전체 공업생산력의 90%를 점했다. 만주국 건설에 참여한 조선인의 경험은 대한민국 산업화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된다.
조선인으로서 일본군에서 정식 코스를 모두 밟아 장군이 된 사람은 2명이다. 그 중 한명이 일제에 나라를 돈 받고 팔아 넘긴 고종의 후손 영친왕 이은과 자수성가한 홍사익 장군 2명이다. 빨갱이 놈들이나 씹선비들은 홍사익 장군을 친일파라고 염병지랄들 하고 있지만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분이 홍사익 장군이다. 홍사익 장군은 만주국 건설에 조선인이 일본인과 차별 없이 동등하게 참여할 것을 주장하여 관철 시켰다. 홍사익 장군을 친일파라고 욕하는 놈들에게 고한다. 너희 조상들은 일제 시대 독립운동하다 총맞아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 시대에 순응했기 때문에 너가 지금 이세상에서 대한민국의 혜택 속에 살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따라서 홍사익 장군을 친일파라 하고 싶다면 너희 조상 무덤을 파낸 후 부관참시 후 주둥아리 놀리기를 바란다.
육당 최남선 선생님께서 만주국 건국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최규하 전대통령이 만주국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관료로 만주국 건설에 참여했으며, 강영훈 전 총리가 건국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 군인과 관료가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의 경험과 지식을 습득하며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를 이끄는 파워 엘리트로 테크노크라트가 되어 대한민국 건설의 주역이 된다.
훗날 김대중은 만주 건국대학교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다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두가 거짓말이고, 인생자체가 거짓인 도요타 다이쥬의 진가는 다음의 한마디로 종결 된다.
“저는 일생에 거짓말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이것은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 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 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하고는 다릅니다”
김대중이 뻥을 치며 팔아먹을 정도로 만주국 건설에 참여한 엘리트의 활약은 대단했다.
대한민국이 번성한 것은 수출이라는 세계와의 소통에서 시작 되었다. 즉, 일제시대 육성 된 세계인의 경험은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이어지며 세계를 보라고 했다. 반토막 난 반도국가가 세계 5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기적의 역사는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역사이다. 그 어떤 역사적 사건도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와의 소통은 대한민국이 투혼의 산업화를 걸을 때 위기의 순간 마다 구원하여 주었다. 독일로 간 간호사와 광부의 눈물은 가난한 나라의 현실을 깨닫게 하여 주었고, 월남전 참전은 산업화의 시드머니를 만들어 주었으며, 중동건설의 오일머니는 오일쇼크를 극복하는 밑천이 되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수출이었다.
세계와 소통했던 신라와 고려의 발바닥도 따라가지 못하는 개조선을 보면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빨갱이 새끼들과 씹선비들은 짱깨 똥구멍을 빨지 못해 안달이다. 구한말 미개한 죽창부대 씹선비 의병을 빨며 이미 썩어 냄새 펄펄 나는 중국 공산당을 빨며 개조선 씹선비로 회귀하자고 한다. 이런 무식하고 미개한 미친놈들은 사회적 격리 밖에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짱깨 역병에 그토록 혼나고 있음에도 짱깨 똥구멍 빠는 놈들은 제발 짱깨역병으로 폐가 썩어 죽기를 소원할 뿐이다.
대법관까지 나서서 국가적 거짓말을 하고 있는, 국가가 나서 왜곡하고 있는 거짓말의 정점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이다. 쓰레기 조선사회에서 벗어나 문명개화의 신천지가 펼쳐진 일제 시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 수천명 수만명 수십만명이 해마다 일본과 만주로 갔다. 그들은 징용을 간 것이 아니라 미개 조선을 벗어난 세계와 소통한 선구자들이었다.
일제 시대 징용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경 전후로 시작 된다. 그 이전에는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봉건조선, 이씨조선의 악습과 폐습만 난무했던 당시 조선은 배울 것이 없었다. 신분상승의 꿈을 가졌든, 돈을 벌기 위함이었든 그들의 몸부림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 열망을 품게 해준 일제 시대는 최소한 노예경제로 지탱하는 씹선비의 개조선 보다는 위대하고 고마운 시대였다.
중일전쟁으로 시작 된 징용도 강제성이 없었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인력 중개업자를 통해 일본으로 취업을 간 것을 강제징용이라고 거짓의 역사를 쓰고 있다. 다만 태평양 전쟁 막바지 1944년 9월 이후 전쟁 막바지 전시동원에 따라 조선인 일본인 모두 강제징용 되었다. 그러나 조선인 강제징용은 미국의 잠수함이 현해탄을 막게 되면서 몇 개월에 불과했고 강제징용 되어 동원 된 인력도 미비한 수준이다.
자발적 징용이든 강제징용이든 일제는 조선의 노예경제처럼 수탈을 하지 않았고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했다. 1940년,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탄광부들의 월수입은 조선에 있는 남자 은행원의 2.4배, 면직공의 5.2배였다. 1944년, 일본 남성의 초임에 비교하면, 대졸 사무직과 순사에 대해 각각 2.2배, 3.7배였다(낙성대 연구소에서 발췌). 이러한 노동의 제공은 최소한 개조선 씹선비의 악질적인 수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계약에 의한 정당한 거래였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급 받은 징용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미지급 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하지 못했다. 역사왜곡에 대한 일말의 양심이 남았는지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다. 아무리 국가적인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노동의 댓가를 정상적으로 지급한 일본에 그 이상의 생떼는 쓰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건너간 조선인은 일본에서 사업을 하여 부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열심히 수학하여 일본내 지식인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홍사익 장군 같이 군장성이 되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기업가가 소개 되어 조선인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소중화에 미쳐 짱깨 똥구멍 빨기에 급급했던 손바닥 만한 세계관을 벗어나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장차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은 소중한 시대가 일제 시대였다.
일제 패망 당시 조선의 인구는 2,500만 정도였다. 그 중 귀국선에 몸을 실은 세계인이 250만이었다. 실로 어마 어마한 세계화 된 인재의 규모이다. 귀국선에 오른 숫자가 250만명이었으면 일제 시대 배출 된 세계인은 몇배를 상회했을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는 고스한히 대한민국 산업화에 녹아 들었고 세계를 개척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영어를 쓰지 않는 국가의 수도인 서울이 세계화 지수 10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대한민국은 인구 비율 대비 가장 많은 해외 활동 인구를 가진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 개조선 씹선비로 회귀하자는 빨갱이와 씹선비들의 난동을 보며 일찍이 세계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건국한 국부 이승만께서 통곡하고 계실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빨갱이 정권 신물이 올라온다. 빨갱이와 씹선비가 설치는 미개한 개조선바라기를 보며 어쩌면 거짓말 하는 더러운 조센징의 피는 어쩔 수 없는 지병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