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이라는 문가가 기념사를 통해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친일잔재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가는 "친일은 반성해야 하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친일잔재 청산"이라며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문가는 특히 "아직도 사회에서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강조했다.
이어 "(빨갱이라는 말은)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며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작 문가의 부친이 친일 관료가 아니었냐고 지적하고 있다.
문가의 부친 문용형씨는 흥남의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흥남시청 농업계장·과장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 함흥시청 농업과장이면 농산물 관련 고위직으로 일제의 쌀 수탈에 지대한 공헌을 한것으로 간주해도 대과가 없을 것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문용형은 가족과 함께 흥남 철수때 미군배를 얻어타고 월남해 문가를 낳았다고 하며,,,
그가 친일행적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그는 경남 거제에 정착한 뒤 공무원 경력을 인정받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했다고 한다.
** 미확인설에는 문용형이 인민군 대좌인지 무엇인지의 남침한 인민군으로 잡혀서 거제 포로수용소에 포로로 있었다고 하는 말도있으니,,,
좌빨들이 애용하는 친일파 기준에 대조하면 문가 애비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가 분명하고 ,,,
설대로라면 동족상잔 일키고 남침한 인민군 빨갱이가 되는것이다.
문가가 친일파 빨갱이라면 경끼를 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