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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의 반미적 시각

작성자:

탈존

조회: 5070 등록일: 2018-06-28

오랜만에 한국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까지 수많은 관객들을 동원했는가 하면 상복(賞福)까지 터진 영화라기에 의무적(?)으로나마 감상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봉준호 감독은 2003년도에 제작된 ‘살인의 추억’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 인상 깊었었는데 ‘괴물’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적 반미주의와 기성세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을 적절치 못한 과장법으로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흠집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물리적인 ‘괴물’과 우리 머릿속의 괴물들을 만들어 나가는 그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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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미 8군에서 버린 독극물인 포르말린이 한강으로 흘러든다.
  2006년 한강 둔치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평화롭게 여가를 즐기던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매점을 경영하는 ‘박강두’의 중학생 딸 ‘현서’를 납치한다.
  당국은 희생자들을 합동분향소에 안치하는가 하면 괴물이 병원체를 옮기는 바이러스의 숙주로 단정, 괴물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과 ‘박강두’를 병원에 구금시킨다.
  병원에서 ‘박강두’는 ‘현서’의 구원요청 전화를 받지만 경찰과 병원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단정하는 바람에 온갖 혹독한 의학실험대상이 되고 만다.
  결국 공권력의 엄청난 방해를 무릅쓰고 ‘박강두’와 그의 두 동생, 아버지는 자신들의 힘으로 ‘현서’를 구출하러 나선다.
 
  <o:p></o:p>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든 나는 자연(自然)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 인간 역시 괴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괴물이 왜 생겼는가. 독극물을 한강에 버렸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괴물은 물리칠 수 있는 상대다.
  문제는 자연을 떠나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인식이다. 다리에서 청년이 투신자살을 하는데도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눈은 뜨고 있으되 내 관심사가 아닌 상황에는 장님이나 다름없는 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그야말로 괴물을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인식바탕이다.
  <o:p></o:p>
  무관심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합동분향소에서 울부짖는 유족들을 취재하기에 바쁜 기자들과 조사를 나온 공무원들의 태도가 터무니없이 형식적이고 권위적이다.
  기자나 공무원들에게는 이 위기상황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할 또 하나의 기회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괴물에게 희생당한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한강변에 나타난 괴물과 다름없는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의사들, 비상사태로 내려진 통제명령을 이용하여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 이런 풍토가 한강에 나타난 괴물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다.
  <o:p></o:p>
  과연 우리는 이웃사람들의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는 것일까.
  괴물에게 납치된 ‘현서’가 ‘강두’에게 구해달라며 모바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강두’의 하소연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강두’ 말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그 경찰은 귀머거리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없는 자는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가 없기에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다.
주위상황에 관심 없이 이어폰을 듣다가 괴물에게 먹힌 여자나 ‘현서’가 살아있다는 ‘강두’의 하소연을 듣지 못해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한 경찰관을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결국 ‘강두’ 가족은 병원을 탈출한다. 가족들은 ‘강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괴물을 물리칠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물리치는 과정도 그만의 시각으로 처리한다. 괴물을 물리친 사람은 공무원이나 미국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훌륭하다는 공무원들이나 경찰, 의사들, 기자양반들 역시 괴물이나 다름 아닌 인식을 지녔기에 오히려 괴물퇴치를 방해했을 뿐이라는 것일까.
  정작 괴물을 퇴치한 사람들은 한강 둔치공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좀 모자라는‘강두’가족과 노숙자(露宿者)였다. 높은 사람들은 그 길을 펼쳐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길을 열어줘야 할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길을 막을 때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o:p></o:p>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는 사랑이다.
  사랑에는 계산이 없다. 양궁경기가 끝나고 합동분향소로 찾아온 ‘강두’의 여동생은 ‘현서’의 영정 앞에 동메달을 전하며 오열을 터뜨린다. 새삼스레 ‘현서’의 죽음이 생각났다는 듯 울부짖는 가족들의 슬픔은 계산 없는 사랑의 발로다. 그런 사랑이 위험을 무릅쓰고 괴물과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현서’는 괴물둥지로 잡혀온 어린 거지소년을 만난다. 난리가 난 틈에 ‘강두’네 매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던 녀석이다. 시체들이 널려있는 괴물의 둥지에서 언제 괴물이 돌아와 잡아먹힐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탈출의 기회를 노린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기에 그런 것일까. 소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가름하지 못하고 자기를 보살펴주는‘현서’가 좋기만 하다. 자신도 그렇지만 소년을 살려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현서’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곧 사랑이 용기의 원동력이다.
  ‘강두’가족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에서는 바이러스를 박멸한다며 약을 살포하는가 하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데모를 하느라 난리들이다.
  쓸데없는 일에 매달리는 군중들 틈에서 결국 노숙자(露宿者)와‘강두’가족의 힘으로 괴물은 최후를 맞이한다.
  <o:p></o:p>
  ‘현서’가 죽고 괴물이 죽었다.
  과연 괴물이 죽은 것일까. 인간들이 양산해내는 괴물은 여전히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o:p></o:p>
  그러나 모자란 ‘강두’에게는 괴물이 없다.
  ‘현서’가 괴물의 뱃속에서까지 호흡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안아서 살려낸 소년이‘강두’와 함께 매점에서 살고 있다.
  딸 대신 아들을 얻은 것이다.‘강두’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며 소년을 깨운다. 밥을 먹는 소년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보기 좋다.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괴물과 다름없다.
  따라서 자연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잃는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화롭다. 자연은 늘 조화롭기에 그 근원은 곧 사랑이다.
  <o:p></o:p>
 
  이 영화에도 문제는 있다.
  괴물을 바이러스 숙주로 단정, 실효성도 없는 대책을 내놓는가 하면 근거도 없이 주인공 ‘강두’를 의학실험 대상으로 괴롭히는 장면이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영화‘괴물’ 전편에 걸쳐 사용한 과장(誇張)이 너무 지나쳐서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더구나 괴물과 접촉했다하여 ‘강두’를 비닐빽에 넣어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은 과장이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현실왜곡(現實歪曲)이다. 강아지 한 마리 옮길 때에도 그런 대접을 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인, 공무원, 경찰, 의사 등 지배계층 사람들 모두가 괴물처럼 느껴진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옥시 미국과 사회지배층에 대한 원한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지나친 표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혹 미국산 쇠고기를 대하는 촛불난동 인식이 영화 괴물이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왜곡시킨 것처럼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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