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썩은 동태가 된 참여연대인가 ?
저는 한 때 참여연대 회원으로 몸담은 적이 있고, 삼성 교보 대한 생명사와 교통사고 보상 건 때문에 법정소송으로 무려 두 번에 걸쳐 8 년이란 긴 시간 끝에 저 혼자서 삼대 보험사 재벌들에게 승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개 촌부로서 대한민국의 최대재벌사인 보험사들과 소송이란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지만, 막상 억울하게 당하고 보니 오기도 생기더란 것이고, 결국은 저가 먼저 재벌 보험사에 소송을 걸었지만,
대한민국 어느 변호사나 로펌에서도 삼성과 교보 대한이란 이름 앞에는 선 듯, 소송을 대행해줄 법조인은 없더란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 섯 번이나 진정서와 탄원서를 보내었고, 그래도 답변이 없자, 권 양숙 여사와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문 재인씨에게 역시 진정서와 탄원서를 보냈지만, 그 역시 돌아오는 답변은 금감원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답변을 미루어 버리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억울하여 청와대 정문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퇴진운동을 나 혼자서 벌였고, 전국 노동자와 사회단체가 모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35 만 명이 모인 아이엠에프 결사반대 집회 장소에서 나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저가 직접 자작한 “국민들에게 보내는 글” 이란 제목의 사행시 2 만장을 노무현 국정원직원들과 검찰, 경찰 정보과 형사들 몰래 새벽에 아는 후배 지인의 인쇄소에 부탁해서, 민 노당 차로 아이엠에프 결사반대 집회 장소인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싣고 가서, 그곳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에게 일 일 히 나누어 준 것입니다. 아마 저가 쓴 사행시 원본 전단지를 보관하고 계시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쉽게도 단 한 장도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사실 민 노당과 참여연대에 저가 입당과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 재벌들의 횡포와 힘없는 저의 억울한 사정을 살펴달라고 청와대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올린 것이고,
그것도 청와대에 일곱 번이나 올렸지만, 직접 노무현 대통령과 비서실에서는 단 한 번도 저에게 답변을 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국정원직원들과 검찰, 경찰 정보팀을 저의 집주변과 저의 지근거리에서 감시하고, 심지어는 전화 도청은 물론 휴대폰 감청까지 시도를 하다가 저에게 여러 번 현장을 들킨 적이 있었지만, 노무현 검찰에게 고발을 했으나 그것도 오리무중이었고, 오히려 저와 저의 가족들과 지인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이 심했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낯모른 사람들의 전화가 오면서 저에게 까불면 죽여 버리겠다. 가족들까지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공갈 협박의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저에게 오는 겁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던 저의 뒤를 수사관들이 따라 다니면서 심지어는 지역의 파출소장과 경찰 정보과장이란 사람들은 내가 참석하는 집회를 가지 못하도록 설득은 물론이고, 상부의 지시라고 하면서 은근히 공갈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대 검찰청장과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고함을 치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저에 대한 신변의 위협을 감지하고 나도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에서 그 당시 박 근혜씨가 당 대표로 있던 한나라당에 저의 신변 보호 요청을 했지만, 노무현이 선거 운동했다고 아예 외면을 하더군요. 그러던 차에 민 노당과 참여연대에서 저에 대한 신변보호를 해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결국은
그때만 해도 빨 갱 인줄 모르고, 그곳에 당원에 가입하고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가 소송을 한 재벌 보험사들에 대한 법률적 자문과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지금은 공정거래위원장이 된 김상조 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나서 재벌사의 횡포를 막아주고, 이번 소송에서 참여연대가 대신 좀 맡아 달라고 했더니 김 상조씨가 하는 말인즉 ~ 김 선생님, 다른 곳은 몰라도 삼성은 저희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참여연대도 지금 삼성을 상대로 소송한 건이 몇 건 되지만 승산이 없습니다. 더욱이 김 선생님의 소송 건은 개인적인 소송이기 때문에 저희들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도 몇 번을 만났지만, 참여연대에서는 저의 소송 건에 대하여 난색을 표 했고, 박 원순 위원장도 여러 번 만나서 얘길 했지만, 역시 개인적인 것이라서 ~ 라며 말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오기가 생겨서 안동지방법원
법정 1 심에서 삼년간 끌었지만, 원고 패소란 딱지를 가지고 결국 서울 서초동 뒷골목 허름한 곳에 이름 없는 변호사를 찾아가서 사정얘기를 하고, 당신들은 명의만 빌려 달라 ... 나머지 모든 준비서류와 교통사고 보험 건에 대한 법률적 서류에 대한 것은 내 가 책임지고 도와줄 것이니 소송을 맡아 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간신히 김 모 변호사를 저의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변호사를 선 임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이름 있는 변호사나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를 찾아갔지만, 삼성 교보 대한이란 이름에는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이건을 보면 당연히 승소를 해야 할 것이지만, 자기들로서는 저들과 붙어서는 절대 승산이 없다는 것이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에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 심도 안동 지방법원에 소송 할 적에 자신만만했던 변호사도 결국은 재벌사의 로펌에게 매수되어 버리면서, 저가 지치길 바라면서
시간끌기로 들어가더군요. 육 개월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란 소송이 무려 삼 년동안 질질 고무줄 늘이듯이 사람의 피를 말리면서 결국은 패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이름 없는 서초동 뒷골목 변호사를 선임하여 그것도 2 년을 질질 끌면서, 결국은 저가 승소를 하긴 했었어도 원래 보상 가에는 30% 만 판결을 받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청렴 강직한 집단들이란 참여연대도 이기지 못한다고 포기한 재벌과의 소송에서
안동 촌놈인 제가 무려 1 심에서 2 심까지 5 년이란 기나긴 소송 끝에 우리나라 최대 재벌사들과의 소송에서 이긴 것입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법률가들이 모인 124 명의 삼성 김 용철 로펌을 이긴 것입니다. 2 심에서 이기기 했어도 억울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여 대법에서 일 년 반 만에 저가 판례하나 새로이 남기고 승소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렴 강직한 집단이라는 참여연대 출신들이
문재인 정권에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 상조씨는 재벌의 킬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경제이론에는 빠삭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김 기식이도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만인의 우상이었던 참여연대 출신들이 수신제가도 하지 못하면서 치국평천하 한다고, 문재인 정권은 저들을 중용[重用]하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때는 불의와 맞서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던 참여연대 수장인 박 원순씨와 김상조 김 기식이가 저렇게 썩은 동태가 되었을 줄, 예전에 미 쳐 몰랐습니다. 옛 말에 양반은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고 했고,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참여연대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어시장 뒤 골목처럼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