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暴雪)
― 오탁번
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宇宙의 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한국문학
[吳鐸藩]
1943년 7월 3일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를 거쳐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되었고, 그 이듬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되었다. 1969년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기도 했다. 고려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작품으로 「강설(降雪)」(1969), 「하관(下官)」(1983) 등의 시와, 「가등사(加橙寺)」(1970), 「혼례」(1971), 「귀로」(1972), 「열쇠를 돌리는 법」(1981), 「언어의 묘지」(1983), 「달맞이 꽃」(1984) 등의 소설을 들 수 있다.시집 『아침의 예언』(197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1985), 『생각나지 않는 꿈』(1991), 『겨울강』(1994), 『1미터의 사랑』(1999), 『벙어리 장갑』(2002), 『손님』(2006), 소설집 『처형의 땅』(1974), 『새와 십자가』(1978), 『저녁연기』(1985), 『혼례』(1987),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1988), 『순은의 아침』(나남, 1992), 평론집 『현대문학산고』(1976) 등을 간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탁번 [吳鐸藩]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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