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의 내 기억은 50년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46년생이라고는 하지만 음력으로 12월생인데다가 솔직하게 말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까지의 기억은 그야말로 단편적斷片的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상황이야 어찌됐든 시골만이 아닌 도시에서도 이웃 간에 정이 있고 동네 어르신을 모실 줄 알았고 부모님 말씀을 공경할 줄 아는 시대가60년대까지였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화가 시작됐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게 됐고 대가족大家族을 이루며 살았던 우리네 삶이 본격적인 소가족小家族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따라서 예전에는 부모님이 바쁜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정교육을 통해 인성人性공부를 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전적으로 학교에 맡겨지기 시작한 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60년대 들어 간신배 이기붕이 연노年老한 이승만 대통령을 이용하여 국정을 농락籠絡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데 그치지 않고 부정선거를 획책하여 4·19를 불러옴으로써 시위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 덕분에 정권을 잡은 장면 내각은 끊임없는 정쟁政爭에 휘말려 무엇 하나 행할 수조차 없는 무능無能의 대명사가 되었고 거리는 무분별한 학생들의 시위대로 점령占領당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남북학생회담을 열겠다고 설치고 정부는 이들의 철없는 주장과 거리시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어쩌면 법보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기 시작한 풍토가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가 6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김대중을 비롯한 종북 빨갱들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했었다.
대신 자신들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어리석은 민주팔이 김영삼을 적절한 이용물로 활용하면서 소위 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 발붙이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던 때였다.
김대중을 비롯한 이들 빨갱이들에게는 5·16 혁명이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을 것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 1위로 삼는 강력한 혁명정부가 들어섰으니 말이다.
이들은 이때부터 민중의 인식을 흐리게 만들 언어적 전략戰略을 만들기 시작한다.
군인이 정권을 잡았다는 막연한 불만에 차있던 지식인 그룹들을 선동하여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말을 만들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대중 일파들이 남한의 공산화라는 확실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반면, 지식인들에게는 민주화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을 뿐이다.
이들,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에 힘입어 강력하게 추진되던 경제발전도,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조차도 군사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최면催眠에 걸려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네다리 벌리고 드러누운 김영삼, 김대중의 선동에 박수치느라 정신들이 없었을 뿐이다.
이 시기가 70년대.
당시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국가재건國家再建에 땀을 흘리느라 미처 가정을 돌볼 시간을 얻지 못하는 사이에 건설적인 일은 외면하고 오직 사회분란을 일으켜 자유민주주의를 박살내려는 목적을 지닌 남한의 붉은 세력들은 민주화, 국사독재 척결剔抉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어린 대학생들에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아버지들이 너무나 바빠서 우리 역사의 산 경험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이에 자유민주주의자들을 부정하는 뿌리를 심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작금의 종북 교사집단인 전교조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과연 빨갱이 세력들이 처음부터 ‘나는 김일성 추종자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내보였더라면 그 많은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민주화요, 군사독재타파 운동이라 생각했던 젊은이들에게 끈질기게 주입시킨 공산주의 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거짓 환상이 이들을 서서히 세뇌시켜나갔을 것이다. 같은 한민족이라는 달콤한 사상적 사탕을 앞세워서.
그래도 전두환 대통령 시대까지는 이들 종북세력들이 노골적으로 나서지 못했었다.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살아있었을 때니까.
노태우 정권부터 우리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극한투쟁을 시작하던 이들은 김영삼 시대에 이르러 사회 각계각층에 종북성향의 노조를 정착시키기 시작했고 마침내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그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대통령 스스로 국가정체성을 부정하고 종북 굴종정책을 펴는 김대중 세상에서는 굳이 데모나 폭력시위 따위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국가정체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평소 열심히 일만하던 보수성향의 국민들이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가 위기를 느낀 이 시기는 이미 늦어버린 때였다.
어둠 속에서 암약하던 종북세력들이 화려하게 국정 전반에 대거 등장했고 이제는 거리낌 없이 그 당시의 북한 수괴 김정일 찬양을 불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
일체감으로 무장된 그들이 지닌 특유의 폭력성은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깔아뭉개기 일쑤였다.
상대가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개새끼’라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살았고 젊은이에게 험한 소리 듣기 싫었던 어른들은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접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반역정권의 좌충우돌 깽판정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유지體制維持에 위기를 느낀 보수우익 인사들은 온갖 욕설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면서도 아스팔트우익이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만들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고군분투孤軍奮鬪를 했었다.
물론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종북반역정권의 실정에 진력이 난 국민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쾌거快擧지만 그간 끊임없이 분투했던 보수우익세력의 단체들과 인사들, 논객들의 노력이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어서 정권을 잡은 박근혜는 이상하리만큼 빨갱이 세력들에게 유화적이었다. 그리고 보는 바와 같이 빨갱이들과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배신자들로부터 누명을 쓰고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빨갱이 세상이 되어 노골적으로 이 나라를 적화통일 시키고자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작이 없는 것이다.
이들 빨갱이들이 망친 것은 이 나라의 정체성뿐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들이 지니고 있었던 가치관, 말하자면 장유유서, 효도, 양보, 등등의 미풍양속은 종북반역세력의 준동이 시작 이래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만큼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이렇듯 타락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해방 이후 지속된 부정적이었던 정치 환경, 워낙 바쁘기만 했던 산업화 과정에서의 가정교육 실패, 소가족제도로 변화함에 따라 자기편의自己便宜 위주爲主의 사고방식 팽배, 조부모의 영향권에서 탈출 등등,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원인 중에 가장 책임을 느껴야할 사람들이 종북세력들과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종북분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준 자들이 언론인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언론까지 싸잡아 거론하는 것이다.
이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자들이 어린 학생들을 길거리에 내몰아 나라의 어른이신 대통령을 저주하는 판국에 장유유서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왜곡하고 심지어는 박정희 대통령까지 친일파로 몰아버림으로서 존경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 환경에서, 더더구나 전교조의 반역적 거짓 세뇌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할 마음인들 생기겠는가.
심지어는 6·25까지 북침이라 세뇌시키는 자들이니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자신과 노선이 다르면 저주라도 퍼부을 만큼 우리 청소년들과 이미 성인이 된 젊은이들이 변질變質되지 않았다고 어찌 자신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된다면 나라야 어찌되든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어린학생들을 꼬드겨 길거리로 내몰았던 김대중을 추종하는 빨갱이 세력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론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종북세력들이 내세우는 민주화, 언론자유, 민족통일, 군사독재 등등의 구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았든 몰랐든, 지금의 종북세력을 키워준 자들이 언론인이었다면 무리한 주장이라 할 것인가.
소위 진보라는 용어, 종북 빨갱이 반역세력을 좌익이라는 용어로 희석시켜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흐리게 만들었고 정치꾼 민주팔이들이 득세하도록 여론을 유도한 주범들이 언론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기에 언론이 종북세력을 키워주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계라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종북세력들과 전교조에게 세뇌당한 일부 젊은이들이 적정수준의 교육을 받고 신부, 목사, 스님이 되었기에 그 자들 편에서 신도들에게 혹세무민하는 종교인들이 생긴 것이 아니겠나 싶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명박 시대에 종교의 현실참여를 부르짖으며 정당까지 만들겠다고 나선 적이 있을 만큼 이기적인 정쟁政爭에 골몰하는 정치인들의 휘하에서 정권까지 창출하는 판이다.
과연 그것이 신자들의 영적안내자의 역할이라는 것일까.
여하간 종북 빨갱이들이 저지른 죄악은 효도와 어른공경 등, 우리의 미풍양속을 무너뜨렸다는데 있다. 하긴 북한에서는 제 아비가 당에 불리한 언행을 했을 경우 고발토록 세뇌한다고 하니 공산주의가 원래 효도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던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더러운 자들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이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국민들이 종북 빨갱이들과 국회의원 배지에만 관심 있는 자들을 가릴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종북분자들의 꼬임에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치인을 투표로 제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헌데, 이제 대부분의 투표권자들이 전교조의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아닌가.
우리 모두 종북세력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 되찾기부터 시작해야할 터인데, 그 일을 해야 할 주역들이 전교조의 세뇌를 받은 세대라면?